[취재썰] "셰프만 보면 울렁거려" 폭언 시달린 LA 총영사관 요리사
최근 외교부는 박경재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의 비위 의혹에 대한 진정을 접수하고 감찰에 나섰습니다. 지난 2~6일 미국에서 박경재 총영사 부부를 직접 면담하고 직원들의 증언과 사진·녹취 등 자료를 확보한것으로 취재됐습니다.
외교부는 박 총영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비자 부정 발급 의혹과 함께 부인 조모씨의 폭언·갑질에 대한 제보도 접수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JTBC가 입수한 녹취파일에는 요리사 A씨에 대한 부인 조씨의 폭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최근 계약이 종료된 요리사 A씨는 지난 1년 동안 조씨에게 지속적인 폭언을 들어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조씨는 시종일관 반말로 A씨를 강하게 쏘아붙입니다.
“내가 뭐라 그랬어?”
“엿 먹으라는 거야 뭐야?”
A씨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가시돋친 표현으로 몰아세우는가 하면
“대단한 성격이야, 대단해.”
비꼬기도 합니다.
“정리정돈도 못 하고 물건 사는 것도 제대로 못 한다”며 업무 능력을 문제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도 안 돌아가냐? 기본이 없어. 더 화나는 건 전혀 잘못이 없다는 표정이다”며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이어갑니다.
“계약기간이 1년이니 쫓아낼 수 없어. 개인 레스토랑 같으면 사장이 쫓아내지 않겠어? 기분이 나쁘면?”
위협적인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주로 듣고만 있던 A씨가 “맞습니다”라고 수긍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조씨는 “'맞습니다'는 뭐야? 진짜 기분 나쁘거든? 미안한 표정이 하나도 없어”라며 되레 목소리를 높입니다. 끓이지 말라는 북엇국을 끓였다며 “셰프만 보면 울렁거린다”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듯한 소리로 들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또 다른 행정직원들이 외교부 본부에 감찰을 요청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직원 B씨는 A씨에 대해 “다른 영사님들은 평가를 매우 좋게 했던 친구였다. 요리도 잘 하고 1년 동안 100회 넘는 행사를 실수 없이 잘 이끌었다”며 조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A씨는 1년 동안 성실히 일을 하며 징계위에 회부되는 등 문제를 일으킨 경우도 없다. 하지만 사모는 개인적인 악감정을 가지고 폭언을 하고, 공적으로 일하는 공간에서 본인의 감정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여긴 정말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휴가 내고 지인 만찬에 출장 요리 가라" 업무 외 지시도
A씨는 수 차례 부당한 지시에도 시달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 4월 조씨는 A씨의 요리실력이 부족하다며 주말에 '김치 장인'이라는 지인들을 불러 함께 김장을 시켰다고 합니다. A씨는 조리 전문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다수 보유했으며 셰프 경력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당을 신청하지 말라”는 지시도 수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박 총영사의 지인인 한인회 유력인사의 개인 만찬에 출장 요리를 가라는 지시도 여러 차례 내렸다고 합니다. 총영사 부부가 “주말에 일을 하고 용돈을 받는 개념으로 좀 갔다 와라” “평일엔 휴가를 내고 다녀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수 차례 요구했다는 겁니다. A씨는 “나랏돈을 받고, 공관 안에서만 일할 수 있는 신분”이라고 항변했다고 합니다.
이후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오자 조씨는 또 다른 실무직원에게 A씨의 사직서를 받아오라고 압박했고 결국 A씨는 퇴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관저 요리사, '갑질' 사각지대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관저 요리사의 업무 범위는 외교부 지침에 명확히 정해져 있지만 '사모의 마음에 드냐 안 드냐'라는 오랜 악습 때문에 요리사들이 '특별한' 노동까지 떠맡아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영사관, 대사관의 부인이 마치 과거 왕비처럼 직원을 대하는 관습이 남아 있다”며 “한국사회가 많이 바뀌었지만 해외 공관은 여전히 악습에 젖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사원은 2018년 5월 공개한 '재외공관 및 외교부 본부 운영실태' 보고서에서 “공관공무원은 상급자의 위력으로 행정직원을 공적인 업무가 아닌 자신의 사적인 일에 동원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외교부 훈령인 '재외공관 행정직원 규정'에 따르면 관저 요리사도 '일반직 행정직원'에 속합니다
하지만 관저 요리사는 다른 일반 행정직보다 계약 조건 등 기본 처우가 열악하고, '특수 노동직'으로 인식돼 '갑질'에 더욱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립된 관저에서 일을 하고, 공관장의 부인과 접촉이 잦다는 점도 사각지대로 꼽힙니다. 공관장과 달리 부인은 민간인이기 때문에 부당 행위를 공식적으로 문제삼거나 신고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A씨는 “스트레스가 많지만 타지에 나와 있다 보니 상담을 받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괴롭다”고 동료들에게 토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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