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대선 후보들의 말투
말실수보다 소통 거부하는 화법이 더 문제
이기는 게임 아닌 설득하는 노회찬 화법 필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진실한 메시지다. 처음 원고는 백인들을 규탄하고 방어적인 언어였는데 연설 직전 꿈을 이야기하는 자기 확신형의 말로 수정했다고 한다. 진실함을 최우선 가치에 놓고 언어를 정리한 것이 그를 지도자로 바꾼 순간이었다.
이처럼 사회지도자나 정치인의 무기는 언어다. 그들의 말은 칼보다 날카롭고 초콜릿보다 달콤해야 한다. 듣는 이의 마음을 열어 세상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요즘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의 말은 되레 자신들마저 찌르는 흉기다. 말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사과하고 넘어가곤 하나 사실 이는 정치의 본질인 소통 능력을 드러내는 사건이고, 대통령에 올라 어떻게 소통할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말실수는 그렇다 해도 후보들의 말투까지 듣고 보면 의사 앞에 선 환자의 무력감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정보전달에 치우친 이들의 기능적인 화법도 비정하고 소통을 거부하는 것 같다.
생전 노회찬 의원은 소통을 잘하는 정치인에 꼽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를 언제 누가 무엇을 보냈는지 증명하는 ‘배달증명’에 비유했다. 이야기하고 발표하는 것보다 어떻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토론의 경우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어야지 상대를 말로 이기는 게임은 아니라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쉽고 감동적으로 전달되게 말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지율 상위인 이재명 윤석열 이낙연 후보만 따져도 비수처럼 꽂힐 말들을 자주 던졌다. 말실수가 잦은 윤 후보가 현장과 소통하지 않은 떠돌아다니는 얘기를, 그마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전하는 것은 차가운 의사의 말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해온 기존의 관성에서 계속 정치적 자산을 구하며 방어적인 말을 하는 것도 보기에 답답하다.
이재명 후보의 듣는 이를 놀라게 하는 욕설은 과거 발언이라 해도 ‘바지 발언’은 대표적인 자기방어형 대응이다. 스캔들 의혹에 대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라고 받아친 것도 여론의 광장을 떠난 응수였다. 이낙연 후보의 경우 ‘백제 발언’과 관련해 방송 진행자에게 “그렇게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되물은 것이 불통 이미지를 부각시킨 대표적 사례다. 3명의 후보가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20%와 10%대 박스권에 갇힌 데는 이런 언어의 한계도 큰 이유이다.
후보들은 검증이란 혹독한 관문을 통과하는 중이다. 인격 살인에 가까운 진흙탕 싸움과 네거티브 공격을 견뎌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 탓에 공격이 가해지면 자기방어의 언어부터 튀어나오고, 잘못을 지적당하면 부인하고 되받아치는 게 공식처럼 돼 있다. 잘못으로 지적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었다는 확신형의 말을 했다면 여건은 달라졌을 것이다. 오히려 서로 오염된 언어로 불신의 감정선을 건드릴 때는 과연 이들에게 국가를 맡겨도 될지부터 걱정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자신이 쓰는 언어의 한계는 그가 아는 세상의 한계라고 한다. 말 잘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게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선 역대 제일 말을 못하는 후보 셋이 경합했었다. 2017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진정성으로 평가받은 사례다. 4월 보궐선거에서도 오세훈 후보는 자신이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10년이나 쉰 오 후보보다 자신이 낫다고 말한 경쟁자들은 그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선을 209일 남겨둔 지금은 능력과 자질보다 바람의 아들을 찾는 분위기 속에 일부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후보들의 말을 차곡차곡 새겨듣는 국민들은 누가 진짜 별이 될지, 잠시 깜박이는 유성이 될지 가름해줄 것이다.
이태규 논설위원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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