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전술 펼치는 北..한미훈련기간 도발수위 높일수도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앞두고도
핵무력 과시하며 협상력 제고 시도
對美 유리한 협상 입지 확보 위해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 가능성
경제난에 내부통제 강화 의도도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사전 연습 개시에 반발해 남북 통신연락선을 이틀째 단절한 11일 남한을 향해 “잘못된 선택으로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 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국내외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통신선 차단에 이어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나아가 북한이 국경 봉쇄, 식량난, 수해 등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다시 ‘벼랑 끝 전술’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은 조선 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온 겨레와 내외의 한결같은 기대 속에서 힘들게 마련했던 반전의 기회를 외면하고 10일부터 전쟁 연습을 또다시 벌려놓는 광기를 부리기 시작했다”며 “남조선과 미국이 변함없이 우리 국가와의 대결을 선택한 이상 우리도 다른 선택이란 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북남 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 손으로 날려 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해 똑바로 알게 해줘야 한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중단 없이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실제 전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경고성 발언 직후 북한의 즉각적인 조치가 뒤따른 바 있다. 앞서 김 부부장도 지난 10일 개인 명의의 담화에서 “거듭되는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 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한 채 시행하는 데 불만을 품은 북한은 담화를 발표한 당일 오후 413일 만에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을 단 14일 만에 다시 차단했다.
이에 따라 김 부장의 경고성 발언이 추가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는 서울경제와의 서면 답변을 통해 “북한은 서울의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간절함을 이용해 한미 동맹의 약한 지점을 공략하고 있다”며 “앞으로 계속 강도 높은 비난과 도발, 심지어 협박이 한미 간 어떤 협의를 더 끌어낼 수 있는지 다양하게 시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남북 연락 채널 가동 중단이 1단계 조치라면 2단계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 긴장을 단계적으로 고조시키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금강산관광국 등을 폐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김 부부장은 3월 15일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담화에서 9·19 군사합의 파기, 조평통 폐지, 금강산국제관광기구 정리 등 세 가지 조치를 거론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 추가 도발을 감행해도 이는 결국 북미 대화와 남북 관계에서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청와대는 북한의 남북 통신선 불통과 경고에도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별도로 소집하지 않았다. 통일부 역시 “한미연합훈련이 방어적 성격으로 적대적 의도가 없다”며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우리 정부가 상대와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다음 협상 카드를 내미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이미 경험한 데 따른 반응이다. 과거 북한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회담에 앞서 2017년에 핵무력을 과시하면서 협상력 제고를 시도했다. 2017년 상반기에는 화성-14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 발사가 수차례 반복됐고 9월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6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11월 29일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하지만 돌연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내비치며 대화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이후 북한은 4월 27일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5월 24일에는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공식 폐쇄했다.
북한의 이번 훈련 중단 요구도 이와 같은 벼랑 끝 전술을 펼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금 북한의 행보는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북미 대화의 조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사전 정비 작업”이라며 “특히 올 1월부터 경제난·제재 장기화에 맞서는 내부 단속에 들어갔지만 한계를 느끼고 긴장 조성을 통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유호열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을 압박해 북미 대화에서 원하는 대화 조건이나 협상 기반을 닦고 있다”며 “언제든 중국에 손을 내밀 수 있기 때문에 백신이나 인도주의 지원도 벼랑 끝 전술로 가장 좋은 조건으로 받아내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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