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앞에선 달라진 이재명·이낙연·정세균의 '공정'
지난 9일 법무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가석방하기로 결정하면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후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김두관·박용진·추미애 후보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이재명·이낙연·정세균 후보 등 여권 ‘빅3’는 재벌 총수의 가석방에 찬성하는 모습입니다. 세 사람 모두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하나같이 ‘공정한 경제’ ‘공정한 사회’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재벌 총수의 가석방 앞에서 이들의 ‘공정’은 슬쩍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들이 그동안 강조해온 ‘공정’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들은 왜 ‘불공정’에 침묵하는 걸까요?
가장 극적으로 태도 변화를 보인 사람은 이재명 후보입니다. 이 후보는 지난 201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재벌체제의 해체까지 거론했습니다. 그는 당시 “이재명 정부에서는 박근혜와 이재용의 사면 같은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삼성 가문과 싸워 자기 손상을 감수하면서 이겨낼 사람이 누구인지 국민이 선택할 것으로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유죄가 확정되면 이재명식 리코법(조직범죄 재산몰수법)으로 불법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번 대선 출마 선언에서도 이 후보는 ‘공정’을 7차례나 언급했습니다. 그랬던 이 후보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결정된 다음 날 “가석방도 대상이 되면 굳이 배제하는 불이익을 줄 필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법무부가 지난달 가석방 심사기준을 ‘형기의 60% 이상’으로 대폭 완화한 것이 이 부회장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에는 침묵했습니다. 이 후보의 발언은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SK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과 관련해 “기업인이라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한 발언과 판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낙연 후보도 지난달 5일 출마선언을 하면서 ‘공정’을 유달리 강조했습니다. 그는 “청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불공정에 항의한다”며 “상처받은 공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 일을 제가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낙연 후보는 민주당 대표 시절인 지난해 10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자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얼마 뒤엔 재벌개혁 법안인 ‘공정경제 3법’을 민주당 주도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낙연 후보 또한 이 부회장의 가석방엔 “이재용 부회장은 국민께 다시 한 번 빚을 졌다”며 “대한민국의 코로나19 위기극복과 선진국 도약에 기여함으로써 국민께 진 빚을 갚기 바란다”고만 언급했습니다. 역시 시민사회에서 제기하고 있는 ‘불공정’ 논란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기업인 출신으로 ‘강한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정세균 후보는 ‘빅3’ 가운데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가장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그는 가석방이 결정되기 전부터 ‘경제 활성화’ ‘국민 여론’을 들어 가석방에 찬성 의견을 밝혔습니다. 정세균 캠프의 총괄본부장인 이원욱 의원은 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필요성이 강력히 존재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 후보도 지난 2012년 대선 출마 당시에는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기업집단법 제정 △독과점 지위를 악용한 과다이익 규제 도입 등을 정책으로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번 출마선언에서도 그는 “국민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며 “모든 불평등의 축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과거 ‘공정’과 ‘재벌개혁’을 강조해왔던 여권의 유력 주자들이 유독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꼬리를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도층 확장’과 ‘대통령 눈치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여론이 높기 때문에 중도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원론적으로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를 반대하고 나서면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운영 지지도가 40%를 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인 판단에 반기를 드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재용 부회장과 각을 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것으로 보이는 부담감이 훨씬 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가석방도 사법정의 훼손한 측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싶었다”(11일 민주당 대선 경선 TV 토론)는 이낙연 전 대표의 말이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태도 변화는 ‘소신’이라기보다는 ‘지지율’을 깎아 먹지 않기 위한 계산인 셈입니다. 이들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공정한 경제’,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요?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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