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선 복원' 北 저의는 한미훈련 취소?..반색했던 정부 '당혹'

송영찬 2021. 8. 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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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인사이드
北, 이틀째 文정부 맹비난
김여정 "배신" 이어 김영철 나서
"엄청난 안보위기 느끼게 해줄 것"
무력도발 가능성 시사하며 협박
북한이 11일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 개시를 비난하며 우리 측에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기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 평소처럼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이틀 연속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적대행위’로 규정하고 맹비난했다. 지난 1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에 이어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11일 “잘못된 선택으로 하여 얼마나 엄청난 안보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며 향후 무력 도발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지난달 27일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이 2주 만에 다시 끊어지자 연합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청사진을 쏟아내던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북한이 연합훈련 취소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무력 도발과 대미(對美) 협상의 지렛대로 삼기 위해 통신선 복원에 동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北 “적대행위 대가 알게 할 것”

김영철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내고 “남조선 당국은 반전의 기회를 외면하고 우리 국가를 적으로 간주해 진행하는 전쟁연습을 또다시 벌려놓는 광기를 부리기 시작했다”며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해 똑바로 알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한 북한의 비방 담화는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다. 김여정은 지난 1일과 10일 담화를 내고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했다. 특히 이틀 연속 나온 북한의 담화는 ‘선제 타격 능력 강화’ 등을 강조하며 무력 도발 의지를 드러냈다.

김영철은 “남조선 당국에 분명한 선택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라며 정세 악화의 책임을 한국에 돌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난해 6월 4일 김여정이 대북전단 비난 담화를 발표하자 같은달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과 13일 장금철 당시 통전부장이 김여정의 담화와 결정을 지지하는 담화를 발표한 것과 비슷한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김여정 담화 후 남북 통신선을 차단했다.

 통신선 복원 ‘청구서’ 내밀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의도적으로 연합훈련 실시 직전 통신선을 복원한 뒤 훈련 취소를 압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신선이 복원된 지난달 27일 미군 요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훈련이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북한은 이를 잘 알면서도 훈련 규모 조정이 아니라 취소를 압박한 것은 도발을 위한 ‘명분 쌓기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이 한국 내부 갈등과 미국과의 갈등을 조장하는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북 간 통신선 복원의 암묵적인 ‘상응 조치’에 대한 눈높이가 달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은 ‘12분의 1토막’ 규모의 한미연합훈련이면 북측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준 것으로 판단했지만 북한은 ‘취소’를 기대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통신선 복원 과정에서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한 남북 물밑 협상 의혹을 제기한다. 김여정은 전날 담화에서 지난해 6월 이후 14개월 만에 ‘배신적 처사’라는 말을 썼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통신선 복원이 남북 정상 간 수차례의 친서 교환을 통해 합의된 사항이라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북한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향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은 이런 의혹에 가세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단절된 통신선 복구를 하면서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북한과 이면 협의한 내용이 있냐”고 질타했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며 “한반도 평화 안정과 발전을 위해 남북이 서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북한에 휘둘리는 대북 정책

정부는 이날 “남북 당사자 간 대화가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2주간 북한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연합훈련 규모 축소는 물론 통일부는 통신선 복원 3일 만에 지난해 9월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 직후 중단했던 민간 대북지원단체 두 곳의 물자 반출을 승인했다. 이르면 이달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어 100억원 규모의 남북 협력기금을 대북 민간단체들에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오는 26일 연합훈련이 종료된 뒤 본격 무력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연락채널 가동 중단이 1단계 행동 조치라면 2단계 행동 조치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함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관광국 폐지 등 예고한 대남부서 폐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열병식에서 각각 공개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를 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향후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내밀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18년부터 주한미군을 언급하지 않던 북한이 3년 만에 공개적으로 철수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박원곤 교수는 “그동안 주한미군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향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이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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