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주한미군 철수 주장' 담화의 의미는
[경향신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발표한 담화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은 2018년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처음이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 무력과 전쟁 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며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 이후 자제해왔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최고 지도자의 위임에 따라 다시 펴기 시작한 것은 향후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하는 동안에는 주한미군 문제를 직접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주한미군이 남북 충돌을 막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위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며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북한이 주한미군 인정 가능성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1992년 뉴욕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이었다. 당시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미국과 수교할 수 있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도 2018년 9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과 상관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1월 백악관을 방문했던 김영철 당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이후에도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궁극적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북한의 변함없는 기본 입장이다. 북한이 2016년 7월 공화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제시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5대 조건에도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돼 있다.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금지’나 ‘한·미 군사훈련 중단’ 역시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북·미 협상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관철시키고 이를 위해 핵위협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남겨두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담화를 계기로 주한미군 철수를 공식적이고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이 같은 변화는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향후 북·미 대화가 다시 열리면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보다 더 근본적인 주한미군 철수를 비핵화 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면서 “비핵화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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