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인공지능(AI)을 '발명자'로 세계 최초 인정..한국은?
[경향신문]
인공지능(AI)이 발명을 한 뒤 관련 기술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은 진보성이나 혁신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기존 기술과의 차별성이 뛰어나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됐다. 그렇다면 이 기술 특허권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특허권은 AI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AI를 개발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AI를 구동시킨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정답일까. 혹은 AI에게 특허권이 가야할까.
■AI가 실제로 발명을 했다는데
최근 이런 고민을 해야할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다.
미국의 AI 개발자인 스티븐 테일러 교수는 자신의 AI인 ‘다부스(DABUS, Device for the Autonomous Bootstrapping of Unified Sentience)’가 자신도 모르는 발명을 스스로 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등 전세계 16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테일러 교수가 자신의 AI가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발명품은 ‘식품 용기 및 개선된 주의를 끌기 위한 장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AI 프로그램인 ‘다부스’가 일반적인 지식에 대해 학습한 뒤 식품 용기 등 2개의 서로 다른 발명품을 스스로 창작했다”고 주장했다. 출원인 측은 ‘용기 결합이 쉽고 표면적이 넓어 열전달 효율이 좋은 식품 용기’와 ‘신경 동작 패턴을 모방해 눈에 잘 띄도록 만든 빛을 내는 램프’가 이 발명품의 핵심이라는 설명도 달았다.
■한국·미국 “AI는 발명자가 될 수 없다”…호주는 인정
이에 대해 한국을 포함해 미국·영국·유럽 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현행 특허법상 자연인만 발명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AI가 발명자로 기재된 테일러 교수의 특허 출원을 거절했다. 국내 특허법과 관련된 판례는 자연인만 발명자로 인정하고 있다. 자연인이 아닌 회사나 법인, 장치 등은 발명자로 표시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특허청은 AI는 발명자가 될 수 없다는 판단했다.
호주에서는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당초 호주 특허청도 AI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호주 연방법원은 독특한 호주 특허법 규정과 유연한 해석을 통해 AI를 발명자로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을 내렸다. 항소기간은 이달 29일까지로, 현재 호주 특허청에서는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호주 연방법원이 AI를 발명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는 관련 법에 AI는 발명자가 될 수 없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아닌 발명자를 배제하는 조항도 없다는 점이다. 발명자를 뜻하는 단어인 ‘inventor’가 ‘엘리베이터(elevator)’ 등과 마찬가지로 발명하는 물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특허청의 경우는 AI도 발명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생략한 채 형식적 심사만을 거쳐 지난 7월 특허를 부여했다. 남아공은 다른 나라와 달리 특허등록 전에 특허청에서 실체 심사를 하지 않는 특이한 제도 때문에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특허청, 전문가 협의체 구성해 대응
특허청은 AI가 만든 발명에 대한 특허 인정 문제가 앞으로도 주요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AI 발명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다고 11일 밝혔다. 12일 오전 10시 첫 회의가 온라인으로 열린다. 협의체는 AI를 발명자로 인정할지, AI가 한 발명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줄지, AI가 한 발명은 어떻게 보호할지 등을 다각적으로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AI 발명자와 관련된 사안이 국제적인 이슈로 급부상함에 따라 AI 발명을 특허로 보호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협의체 구성 배경을 설명했다.
협의체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법제, 기술, 산업 분과로 구분하고, 분과별로 15명 내외의 AI 전문가로 구성했다. 법제 분과는 논문 발표 등 AI 발명에 대해 식견이 높은 교수, 판사, 변호사 등 법학 전문가로 구성했다. AI 발명자 인정 여부와 AI가 한 발명의 특허권은 누구에게 귀속해야 하는지 등 법률적 쟁점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기술 분과는 AI를 개발하고 있는 대학·연구원 등의 전문가로, 산업 분과는 AI를 상용화하고 있는 기업의 전문가로 각각 구성했다. 앞으로 AI의 기술수준, AI가 스스로 발명할 수 있는지 등의 기술 쟁점과 AI가 한 발명의 보호가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김지수 특허청 특허심사기획국장은 “AI에 의한 발명의 보호 방안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선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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