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위한 시사 뉴스레터 넘어서겠다"
아침부터 밤까지, 각양각색의 뉴스레터가 메일함에 쏟아진다. 2000년대 초반, 한차례 인기를 끌었다가 스팸메일의 범람으로 외면받았던 뉴스레터가 최근 다시 인기다. 신문, 방송사가 만들어내는 시사이슈 뉴스레터는 물론, 스타트업이나 여러 브랜드가 만드는 트렌드 리포트, 유명한 개인 칼럼니스트가 발행하는 레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다시 불고 있는 뉴스레터 열풍의 시작은 1994년생 김소연(27) 대표가 창업한 뉴닉이다.
뉴닉은 “우리가 시간이 없지 세상이 안 궁금하냐”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8년 12월 출발했다.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 반째인 이달 현재 구독자는 35만여명에 이른다. 고객 이탈에 수년째 고심 중인 기존 신문, 방송사들도 뉴닉에 관심을 보이고 때론 배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김 대표와 만나, 먼저 가본 뉴스 콘텐츠 서비스의 길에 대해 들어봤다. 뉴닉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사랑받는 시사 뉴스레터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하는 준비에 한창이었다.
■미국 친구들과 대화하려면 뉴스 이해가 필수, 뉴스레터가 한줄기 빛
김 대표가 뉴스레터를 처음 접한 건 2017년 미국 워싱턴DC 로버트케네디 인권센터에서 인턴생활을 할 때였다. 사무실 동료들은 틈만 나면 시사이슈를 두고 이야기했다. 대화에 끼려면 미국 뉴스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미국 뉴스를 쉽게 볼 방법을 찾던 김 대표에게 그의 상사가 추천해준 것은 뉴스레터 ‘더스킴’이었다.
“더스킴을 본 뒤로 점심시간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읽자마자 완전 반했죠. 아주 짧은 시간을 들여서 이슈의 전반을 빠르게 파악하기 좋더라고요.” 당시 미국에서는 더스킴 말고도 뉴스를 쉽게 보는데 도움을 주는 뉴스레터 서비스가 여럿 떠오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김 대표는 한국에서는 어떻게 뉴스를 봤는지 돌아봤다. “‘뉴스를 봐야 하는데’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상이 바쁘니 마음먹은 만큼 기사를 보기 어려워했죠. 이런 필요를 긁어주는데 이메일 뉴스레터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더스킴으로 경험했잖아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해보자 싶었습니다. 마침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 일을 시작할 때였는데 사회생활에선 이메일 기반 서면 커뮤니케이션이 기본이니 저와 비슷한 수요층에 이메일이란 방법도 적합할 것 같더라고요.”
2018년 초, 귀국한 김 대표는 한국판 더스킴을 시도했다. 처음엔 주변 친구들 열댓명에게 더스킴 뉴스레터를 번역해서 보내주는 실험을 했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뉴스레터가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고 김 대표는 힘줘 말했다. “미국에서 더스킴 뉴스레터를 너무나 좋아했던 제 자신을 보고 한국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상대로 ‘정말 필요한 서비스다’, ‘계속 보내달라’며 반응이 좋았어요. 규모가 점점 커졌고 미디어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현 소풍)에서 초기 투자 4천만원을 받아 본격적인 창업으로 이어졌어요.”
■ “쓰는 사람보단 읽는 사람을 생각하며 만듭니다”
뉴닉은 6개월간의 시범 서비스를 거쳐 2018년 12월 정식 런칭했다. 뉴닉을 받아보려면 이메일 주소와 닉네임을 구독신청 창에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일주일에 세 번(월·수·금요일 아침) 발송하던 뉴스레터는 지난 9일부터 주 5일(월·화·수·목·금요일 아침)로 늘렸다. 지금까지 495번 뉴스레터를 보냈다. 현재 19명의 에디터와 개발자들이 뉴닉을 만들어가고 있다.
뉴닉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세상이 궁금하지만, 세상과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타깃 독자다. 어느 정도로 이슈를 풀어야 할까, 무엇을 다뤄야 할까, 뉴스레터를 만들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의 판단 기준이다.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어디에 맞춰야 할까 고민되는 순간이 오죠. 입장이 첨예하기 나뉘는 이슈를 다룰 때, 균형을 최대한 유지하더라도 ‘누구 편이냐’는 공격을 양쪽에서 다 받곤 해요. 그런 순간에 이 기준을 계속 되새깁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람, 한쪽 입장을 이미 가진 사람들은 뉴닉의 타깃이 아닙니다. 입장을 갖는 건 당연히 나쁘지 않지만, 뉴닉은 신념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만들지 않아요.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죠. 이런 기준이 명확해야 글이 담아야 하는 내용도 깊이도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거든요.”
‘이슈선정 기준표’도 있다. 뉴닉에게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 독자의 피드백을 충족하기 위한 방향 등을 정리한 표다. 충분히 어렵고 복잡한 이슈인가, 뉴닉의 독자층과 관련성이 있는 이슈인가 등이 주요 기준이다. “엔터테인먼트 이슈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뉴닉에 기대하는 건 이런 게 아니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뉴닉에겐 기사 한두개만 읽으면 파악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라 어렵고 복잡해서 장벽이 느껴지는 이슈를 풀어주길 바란다더군요. ‘얼마나 복잡한가’ 기준이 생긴 배경입니다. 세입자, 사회초년생 등 독자들의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이 들리는 이슈인지, 직접 영향을 받는 사안인지도 고려하죠. 이런 기준들에 대해 점수를 매겨보고, 뉴닉 에디터들의 의견이 나뉘는 사안은 토론을 해서 결론을 냅니다. 토론해서 결정한 내용은 다음에 참고할 수 있도록 차곡차곡 쌓아두죠.”
명확한 기준은 내부 구성원들이 지난한 토론을 이겨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뉴닉 팀원들은 ‘세상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미션을 달성할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을 만든다’는 명제에 모두 동의합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거나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온 힘을 다해서 토론하고 부딪힐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명확한 비전을 향해 움직이다 보니 직원들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일합니다. 일과 삶 분리가 안 될 정도로.”
기존의 신문, 방송사의 뉴스를 뉴닉이 대체하게 될까? 김 대표는 뉴닉과 기존 뉴스는 역할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뉴스레터를 보다가 경제신문 구독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뉴닉 독자들의 피드백 중에도 ‘뉴닉 덕분에 종이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꽤 있죠. 뉴닉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동안 뉴스에 다가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뉴스에 다가가게 하는 것이 뉴닉의 역할이고,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면 신문이나 시사잡지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참고서에도 여러 단계가 있듯, 뉴닉과 신문, 방송 뉴스는 단계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경쟁 치열해진 뉴스레터 시장…“앱 만들어 독자·수익 확대 시도할 것”
2년 반, 뉴스레터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고민거리도 여럿 생겼다. 뉴닉은 최근 뉴스레터 시장의 경쟁이 증가하면서 구독자들의 ‘메일함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관심 있는 주제의 뉴스레터를 발견하면 의욕적으로 구독신청을 하지만 그렇게 뉴스레터가 하나둘 쌓이다보면 뉴스를 못 봐서 느끼는 부채감을 뉴스레터에서도 똑같이 느끼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피로감 때문에 구독자들이 뉴스레터로부터 멀어지는 일을 어떻게 막을지 지금 뉴닉은 고민하고 있다. 독자를 잡아두려면 뉴스레터를 얼마나 오랫동안, 어디까지 읽었는지 등 세세한 데이터 확보가 필수이지만 이메일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면밀히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뉴닉은 다음달 중 '뉴닉 앱'을 출시해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준비 중이다.
“이메일은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까운 공간이라는 장점이 명확하지만 프라이버시 정책을 준수하다 보면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의 한계도 명확해요. 구현할 수 있는 형식도 제한적이죠. 앱 서비스를 하면서 이런 아쉬움들을 해소해보려 합니다.”
‘밀레니얼을 위한 시사 뉴스레터’라는 뉴닉의 첫인상을 넘어서는 것도 뉴닉 앱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다. 김 대표는 “밀레니얼, 시사, 뉴스레터” 세 가지 항목에서 모두 도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뉴닉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세대와 상관없이 세상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많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시사 콘텐츠를 성실히 다룰 것이지만 시사에만 갇히고 싶지 않고요. 뉴욕타임스의 쿠킹 콘텐츠가 인기를 끌듯 다양한 콘텐츠 분야를 건드려 볼 생각입니다. 이런 시도를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앱이나 웹에서도 해보려는 것이죠.”
뉴스 콘텐츠로 수익을 내는 방법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풀무원과 채식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세이브와 청소년 성 인식 전환 콘텐츠를 만드는 등 광고 수익모델을 시험했다. 앞으로는 주식과 환경 분야를 시작으로 유료 구독 모델을 시도해 볼 계획이다. “광고 수익모델을 검증해보니 직원 월급을 줄 정도는 수익이 나긴 했어요. 하지만 광고 수익모델 하에서는 돈이 안 되거나 돈이 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콘텐츠는 뒷전으로 밀리기에 십상이에요. 환경 분야가 대표적이죠. 뉴닉의 고객이 광고주인가 독자인가 고민했을 때, 현재 뉴닉의 고객은 독자라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고객인 독자들이 꼭 알고 싶고 후원하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고 이런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서 독자의 지갑을 열어보는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뉴스 콘텐츠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 지향점
뉴닉을 창업하면서 김 대표는 학업은 잠시 미뤄두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창업한 뒤, 아직 졸업은 안 했다. 한동안은 학업을 마치기보단 뉴닉을 키우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제가 쉽게 생각할 수 있던 졸업 후 진로 선택지는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로스쿨 등 대학원에 진학하는 길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선택지들은 늘 어딘가 아쉬운 느낌이 있었어요. 대학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창업은 제가 믿는 가치를 세상에 보여줄 좋은 선택인 것 같아요.”
김 대표는 뉴닉으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뉴스 콘텐츠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끊임없이 연결하고, 이런 서비스를 만드는 건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김 대표의 목표다. “뉴닉을 통해 알게 된 세상 이야기로 힘을 얻었다는 구독자분들이 계세요. 미국의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심리적 압박을 호소하며 기권을 선언한 이야기 등 최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소식을 전했을 때도 그랬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나만의 세계에만 갇히고,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것 같아요. 그럴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넓은 세계의 이야기가 일상을 살아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뉴닉을 운영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자꾸 뉴닉을 더 키우고 싶어요. 뉴닉은 처음부터 저널리즘적 소명보단, 개개인이 외로워지고 동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생긴 것이니까요. 뉴닉의 콘텐츠로 구독자와 구독자가, 구독자와 세상이 계속 연결됐으면 좋겠습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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