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3>제2차 과기진흥 5개년 계획 확정, '과학기술은 국력의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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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7월 29일. 정부는 이날 박정희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을 의결했다.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 첫 장에 '붙이는 말'을 실었다. 박 대통령은 붙이는 말에서 “인류 문명의 역사는 바로 과학기술 발달사이며, 국력의 척도”라면서 “과학기술이 국가 경제와 사회·문화 발전을 선도하고, 나아가 국력 배양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는 과학기술을 가장 먼저 진흥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경제 발전과 더불어 국가계획으로 실천해야 한다”면서 “계획이 국력 배양의 원동력이 되고 과학기술 개발의 길잡이가 돼 이 나라 역사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과학기술진흥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강력한 실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이 전담해 작성했다. 2차 계획안은 1차에 비해 작성 과정이 체계적이고 치밀했다. 사전에 세부 작성 지침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계획작성 합동위원회를 구성했다. 계획안은 단계마다 국내외 전문가 자문과 검토 과정을 거쳤다. 제목도 1차는 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이었지만 2차는 과학이란 단어를 넣어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으로 작성했다. 과학기술 범위도 크게 확대해 연구개발 부문을 2차 계획에 추가했다.
경제기획원은 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의 기본 목표를 △창의력 원천인 인간 두뇌와 생산성 근원인 기술개발을 극대화한다 △연구 활동 촉진으로 과학기술 자생 능력을 배양한다 △선진 과학기술의 효율적인 도입으로 산업발전과 과학기술 능력을 제고한다 △과학 풍토를 조성해 사회생활과 사고방식의 과학화를 추진한다 등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1개 산업기술 부문과 6개 기초과학 부문에 대한 부문별 달성 목표를 제시했다. 11개 산업은 광업기술과 금속기술, 기계기술, 조선기술, 화공기술, 섬유기술, 전기기술, 원자력기술, 토목건설기술, 의약과 보건위생기술, 농림수산기술, 기초기술 등이다. 6개 기초과학 부문은 △응용수학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각 대학에 응용수학강좌를 개설하며, 전자계산기 운영에 필요한 기술 인원을 양성한다 △물리학의 선진 연구 능력을 습득할 수 있도록 연구 수준을 높인다 △화학 각 분야의 연구 능력을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높인다 △생물학은 농축산물 우량 품종의 육종과 유기미생물 등을 연구개발한다 △천문학은 표준시간 기준을 정하고 국내 각 지역의 경위도를 정밀 측정한다 △기상학은 단기예보 적중률을 85~90%로 높이고 어업기상 예보법을 연구한다 등이다.
경제기획원은 목표 달성을 위해 △인력개발 △연구개발 △선진기술 협력과 도입 등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5개년 계획 기간에 실업고교·전문대학·이공계대학 등의 질적 향상을 지원하고, 기능공 양성을 위해 직업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정부는 연구개발 분야에서 산업현장에 활용할 과학기술은 자체 개발하고, 기술개발에 시일이 오래 걸리거나 개발비가 많이 필요한 분야는 외국 과학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기 분야는 전력과 전기기구공업, 전자응용, 전기 통신 등으로 구분해 기술을 개발키로 했다. 전기통신의 경우 전기기류 스위치류의 생산과 전자식 교환기 조사, 케이블 생산기술과 절연체 생산기술, 트랜지스터 저항류 축전기류의 설계기술과 생산기술, 수상기 생산기술 등을 개발키로 했다.
기술협력은 국내 개발이 불가능한 기술과 국내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 해외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해외 훈련생 파견, 용역계약 등 방식으로 외국과의 기술협력을 추진키로 했다. 기술 도입은 국내에서 확보하지 못한 첨단기술의 경우 공업소유권과 기술을 도입해 과학기술 능력을 향상하며, 가능한 한 원자재 도입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경제기획원은 인력개발과 첨단 분야 연구개발, 자원조사 등에 대규모 과학기술 투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인력개발 사업으로 실업계 고등학교 시설 확충과 교과 개편, 실업교사 재교육, 해외연수, 직업훈련, 공인 직업훈련소 개소 등을 추진키로 했다.
실업계 고교의 실험실습용 자재와 시설 확충에 5년 동안 23억1500만원을 투입키로 했다. 이공계 대학 시설 확충을 위해 40억5300만원을 투자하고, 서울에 중앙직업훈련소를 1967년에 개소키로 했다.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4개 지역에 공공 직업훈련소를 설치하고, 수출산업 기능공과 건설 기능공도 양성키로 했다.
연구개발 사업으로는 산업기술조사 연구, 토목건설 신공법연구, 전기통신연구, 전파연구, 공업연구, 공업표준시험연구, 계량검증, 기상시설 현대화, 철도기술, 농업과 수산기술 등에 예산을 투입키로 했다. 전기통신 분야는 당시 일부 국산화한 통신기기도 있었지만 거의 외국산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시설 유지보수비로 매년 막대한 외화를 지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기통신시설의 조속한 국산화를 위해 전기통신 연구를 본격화하고 부품 국산화와 보수유지 방법을 표준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사업에 5억7000만원을 투입키로 했다. 또 날로 증가하는 전파 수요에 대비해 3억5800만원을 투입, 전파 연구에 집중키로 했다. 정부는 자원투자 사업으로 해양조사와 국토조사 등을 실시하는 한편 과학기술 정보 활동, 국립과학관 시설 확충, 의료기술 발전도 추진키로 했다.
경제기획원은 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해 국무위원을 수장으로 하는 과학기술행정기구의 설립과 과학기술예산 조정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경제기획원은 국내 기술용역 육성, 공업표준화 제도, 공업소유권 제도, 과학기술자에 대한 인사제도 개선, 과학기술단체 육성 등도 추진키로 했다. 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작성했다. 경제기획원은 5개년 작성 지침을 마련하고 각 부처로부터 자료를 받아 계획안을 작성했다. 이어 국내외 전문가 자문과 검토, 종합조정 단계를 거쳐 최종 계획안을 확정했다.
박 대통령은 5개년 계획을 작성하면서 경제개발계획 평가교수단을 구성, 매 분기 정부 계획과 정책을 평가했다. 분기 평가 자리에는 박 대통령이 반드시 참석했다. 평가교수단의 일원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당시 서강대 교수)의 회고록(경제개발의 길목에서) 증언이다. “평가교수단은 5개년 계획과 중요 정책에 대한 평가 분석 결과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나도 개발 계획과 금융 정책 등에 관해 보고했고, 정책 문제점도 가감없이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전문가 의견을 존중했고,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경제기획원은 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 작성을 앞두고 1965년 8월 10일 경제기획원 회의실에서 '제2차 계획작성 합동위원회'를 열고 계획안은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으로 작성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방침에 따라 경제기획원은 1966년 2월 1일 각 부처에서 작성한 2차 계획안 작성 개요를 접수했다. 기술관리국도 이날 오전 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 작성 개요를 합동위원회에 제출했다. 당시 이 위원회는 오전 10시 30분에 회의를 시작해 '10시반 회의'로 불렸다.
그해 7월 16일. 경제과학심의회의(이하 경과심)는 이날 오전 9시 경제기획원이 작성한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에 관한 건을 논의해 의결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상근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 등 4명이 참석했다. 경과심은 이에 앞서 5회에 걸쳐 2차 5개년 계획 작성 경위와 부문별 세부안 등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했다. 이어 7월 26일. 정부는 이날 오후 국무회의에서 경제기획원이 마련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제2차 과학기술진흥에 대한 평가교수단의 종합 의견을 들었다.
교수단은 이 자리에서 인력 개발은 산업별 성장 속도에 맞춰야 하며, 기술자 수급계획에서 자연도태율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시설 확충에 역점을 두고 있는 교육정책은 교수진 확보 같은 질적 개선책이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수단은 연구개발에서 연구소 간 협력과 기술교류 방안을 강구하고, 국립공업연구소 시험검사 기능을 강화해 산업체의 신상품 개발과 생산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공계 대학 시설 확충은 서울과 지방을 안배해야 하고, 에너지 고갈에 대비해 원자력 대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평가교수단은 변형운·박진환 서울대 교수, 남덕우 서강대 교수 등 27명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공로자를 초청해 다과를 베풀고 이들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는 장기영 경제기획원장, 김학렬 차관 등이 배석했다.
그해 초가을 어느 날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실 전화가 울렸다. “네 전상근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공화당 정책연구실입니다. 내일 오전 10시 이곳으로 와서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시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인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회고. “집권당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에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브리핑 차트를 만들어 이튿날 공화당사로 갔습니다. 넓은 회의실에는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과 정책위원들이 모여 있더군요.” 이들은 이날 과학기술 행정 전담기구 설립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과학기술정책에 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과학기술 후진국 한국에 '과학기술 봄'이 오고 있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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