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너머 농사'는 틀린 말이더라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 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새벽에 잠이 깼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메케한 흙내가 뜨거운 하루를 예고한다. 우당탕거리며 한바탕 쏟아진 새벽 소나기에 풀더미 속에서 올라오는 냄새도 신경을 거스른다. 그래도 남매간 이야기를 들으니, 지그시 웃어지네.
십년 전, 날이 뜨거워지는 7월 초순에 이사를 했다. 팥시루떡과 ‘감사합니다’ 문구를 새긴 맞춤 수건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어. 집집에 안 계셔서 만나는 분에게 옆집, 앞집 인사도 같이 부탁드렸다. 인사를 받은 동네 분들이 순차적으로 찾아오시는 걸음이 뜸해질 즈음, 한여름의 복판이었다. 농사지을 밭도 갈아놓기 전이어서 오롯이 뙤약볕 아래, 동네에서 들어오는 구불구불한 길을 바라보며 지냈지. 그때 도서관에서 시리즈로 되어 있는 법정 스님의 산문집을 쌓아놓고 읽었다. 스님은 바위에게 말을 걸고, 나무와 바람의 숨결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신다더라. 비우면 맑아진다고, 꽃향기를 들어보라고. 어느 순간, 새소리가 또랑또랑 들리고, 어스름 달빛에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편안했단다. 꼭 ‘지긋한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야지’ 마음먹었었다. 그해, 여름을 뜨겁지 않고 분주하지도 않으며 곱게 다독일 수 있었던 건 스님 덕분이었다. 해가 바뀌고 농사일이 시작되면서 소원해지고 잊히긴 했지만 말이다.
농사를 지으며 알게 된 ‘농부’들이 많다. 농부들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농사에서 비롯된다. 농부로서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뼛속까지 농부구나’ 내심 감탄한다. 벼농사를 필두로, 소도 대여섯 마리, 씨앗을 넣어 모종을 키우고, 이른 채소를 내기 위한 비닐하우스도 몇 동씩들 감당하시더라. 무릇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바람의 순환이 중요해서 하우스도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여닫아야 하고 상토에 넣은 씨앗은 아침저녁 빠지지 않고 물을 주어야 한단다. 농사는 게으름을 허락하지 않아. 농부의 두툼한 손끝은 대개 갈라져 있으며 진한 갈색의 흙물은 가실 날이 없다.
농부들은 도시에서 온 귀농자들과 함께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으며, 새 농부를 키우고 있었다.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일을 지치지 않고 시도한다. 10여년의 노력 끝에 친환경 농산물을 위한 가공공장을 설립하여 일자리도 만들어 냈단다. 귀농인이 밭농사를 시작한다는 사실만으로 반색하고, 사소한 농법을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는데 싫은 내색이 없다. 존경스럽고 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하지만 사실 따라가기엔 버겁다. 옆에서 지켜보는 누군가 이야기하더구나. 요즘같이 바쁜 농사철엔 처참하게 산다고.
이번에 밭농사를 지으며 깨달았던 건, 농사도 꼭 공부해야 한다는 거야. 훌륭한 농부들을 본보기 삼아도, 열심히 배우지 않고 그저 어깨너머로 따라 하는 농사는 망치기 일쑤다. 양배추가 나겠거니 하며 심은 모종에서 콜리플라워가 나오고, 수확 시기를 잠깐 놓치는 바람에 꽃이 핀 농산물은 어디에도 내놓을 수가 없어.
밭 한켠에 기른 배추에서 배추벌레가 퍼졌다. 청벌레를 수도 없이 잡아주었지만, 팔랑팔랑 온 밭이 흰나비로 뒤덮였어. 나비들이 대수겠냐 내버려뒀는데 깻잎까지 망치는 것을 보며 헛웃음이 터졌다. 그나마 유기농 기능사 자격증을 딴 네 아빠가 있어 참깨농사는 훌륭히 되고 있다. 가을 태풍이 오기 전에 무사히 수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고라니가 순을 다 따먹는 바람에 다시 심어야 했던 고추도 아래쪽부터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이제 곧 참깨도 베어내고, 고추도 첫물을 따야 한다. 햇살이 따가운 8월에 수확을 해야 하는 고추 농사 역시 만만치가 않겠어. 숨이 턱턱 막히는 더운 날이라도, 뜨거운 뙤약볕 아래 고추가 익어갈 생각에 흐뭇하기도 하단다. 일하기는 힘들고 고되어도 수확의 기쁨은 쏠쏠하다.
그런데 수확도 끝은 아니다. 고구마밭 한쪽에 꾹꾹 눌러 심어 키운 호박을 따서 로컬 매장에 갔더니, 이미 부지런한 농가에서 수북이 내어놓았더구나. 되가지고 온 호박을 지인들과 나눔 할 때, 파는 기쁨보다도 주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양배추도 수확이 꽤 많이 되었지만 이미 잘 아는 후배가 물건을 내고 있어. 옆자리에서 경쟁 붙기 싫어서 그저 주변에 틈틈이 나눠주고 있다. 이 또한 배우는 과정이겠지.
밭작물 농사 계획을 촘촘히 하지 않고 무작정 시작했으니 한편의 ‘실패’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라. 옥수수 사이사이에 서리태와 팥을 심었다. 불쑥 올라온 순이 풀하고 엉켜 하나하나 손이 가야 한다. 심어 놓은 서리태 반은 새가 파먹었는지 빈자리도 수두룩하다. 다시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우는 농사가 돼 버렸다. 그런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언젠가 아들딸이 내려왔을 때 내가 농사멘토 노릇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기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우습지?
벌레 물린 자리가 가라앉았나 싶으니, 이번엔 땀띠가 기승을 부리는구나. 고비고비 몸이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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