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민노총의 황혼
이신우 논설고문
한국경제 상위 포식자 민노총
청년·비정규직 몫까지 빼앗아
더 이상의 횡포 방관할 수 없어
‘바세나르 협약’에 합의 못하면
英·美가 택한 노동개혁 불가피
物極必反 교훈 되새겨야 할 때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이 외치는 사회 정의 구현이 열매를 맺은 것인가, 아니면 특정 정치권력의 홍위병 노릇과 그에 따른 보상 때문인가. 지난달 민주노총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집회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떼로 몰려다니며 방역 당국의 호소를 정면으로 깔보았다. 며칠 후에는 강원 원주시에서 또 다른 집회를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침묵했다. 놀랍게도 “지자체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말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다. 귀를 의심할 만했다. 청와대 위에 민주노총이 있음을 확인해주는 순간이었다.
민주노총 주력인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임단협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3년 연속 무분규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합의안 내용은 놀라울 정도다. 기본급·성과급·격려금·주식 지급 등으로 1인당 1800만 원에 이른다. 고용 보장 조항들까지 돈으로 환산하면 인상 규모가 우리나라 저소득층의 ‘연봉’에 필적한다. 그러지 않아도 노조원 임금 수준이 평균 1억 원인 마당이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과거 노동자의 고임금에 대해 “도지사만큼 받으면 안 되냐”고 일갈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필자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임금 세상을 꿈꾼다. 다만 대기업 정규직을 독점한 귀족 노조가 비정규직과 취업 준비생들의 몫까지 갈취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대기업이 하청 기업을 착취하는 것에 얼굴 붉히는 자들이 정작 자기보다 약자를 착취하는 데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을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과거 광우병 시위나 탄핵 촛불집회 등에서 특정 정치권력의 전위 세력을 자임해왔다. 그 덕분인지 현 권력은 자기네가 무슨 짓을 해도 건드리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는 듯하다. 관공서를 점거하거나 공무원들에 대한 손찌검도 사양치 않는 등 민주노총의 폭주는 멈출 기미가 없다. 그럴수록 진실을 봐야 한다. 그들은 겉보기와 달리 대한민국 노동자 중 소수일 뿐이다. 300인 이하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2% 미만이고 100인 이하 사업장은 0.6%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98%와 99.4%가 왜 이들의 들러리 노릇을 하며 희생당해야 하나. 대기업들은 엉뚱하게도 이들 소수집단에 목줄 잡힌 채 철밥통을 떠받들고 있다. 그게 힘에 겨워 비정규직이나 취업 준비자들은 외면하는 중이다. 이렇게 왜곡된 고용 구조가 사회를 짓누르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이제 더 이상 민주노총이라는 존재를 허용할 수 없는 단계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청년과 비정규직에도 좋은 일자리의 기회가 활짝 열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네덜란드가 경제 기적을 이룬 데는 빔 콕 전 총리가 있었다. 그는 노조 지도자 출신이다. 바로 그가 노동자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기업이 일자리를 늘린다는 ‘바세나르 협약’을 완성한 주인공이다. 지금의 민주노총에 바세나르 협약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노동개혁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레이건은 복귀 명령을 거부한 항공관제사 전원을 해고하는 조치로 노동운동의 변곡점을 이뤘다. 대처는 과거 정권들이 하나같이 무릎을 꿇어온 탄광 노동자들과 1년여 결전을 벌인 끝에 영국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 사회의 난폭한 상위 포식자가 된 민주노총과의 싸움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처와 레이건의 예에서 보듯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장을 본다는 결기가 요구된다. 다행히 대선을 준비하는 야권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청년 취업을 가로막는 노조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워 청년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하겠다”(최재형 전 감사원장)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 정치의 변화 흐름을 감지하건대 결코 가볍지 않은 공약들이다. 사물이나 현상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동양에서는 이를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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