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차기 외교원장 "주한미군 1만명 감축 제안" 과거 발언 논란

김은중 기자 2021. 8. 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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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익 차기 국립외교원장이 지난해 세종연구소 영상 브리프에서 얘기하고 있다. /세종연구소 유튜브 캡처

한미연합훈련 관련 북한에 내용을 알려주자고 말한 홍현익(62·洪鉉翼) 국립외교원장 내정자가 과거 “주한미군이 과다하게 배치돼 있어 약 1만명 정도는 철수해도 우리가 받아들이겠다고 해야 한다” “(미군 감축이) 남북관계나 한중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외교원은 외교관 양성·교육과 중장기 외교전략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책 싱크탱크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발탁된 홍 내정자가 12일 임기를 시작할 예정인 가운데, 그의 인식을 놓고 외교가와 정치권에서 ‘자격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洪 “주한미군 병력 과다… 1만명 감축 좋다고 제안해야”

홍현익 차기 국립외교원장이 지난해 작성한 보고서 일부. /세종연구소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출신인 홍 내정자는 지난해 8월 30일 ‘미·중갈등과 한국의 외교안보 대응전략’에 관한 보고서와 영상 브리프에서 “한국이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을 능가한다는 차원에서 국방력 향상을 감안하면 주한미군 병력이 과다하게 배치되어 있으므로 2만8500명 중 1만명 정도는 감축해도 좋다고 제안해야 한다” “우리가 받아들이겠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홍 내정자는 또 “(주한미군 1만명 감축이) 미국의 부담을 줄여주고 한국군의 임전무퇴 자세를 보다 강화하고 남북관계·한중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 “우방인 미국의 부담을 줄여주지만 우리의 자주성은 늘이면서 방위비분담금은 증액해주지 않는 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고 했다. 주한미군 감축과 함께 외교의 ‘자주성’을 거론한 것이다.

홍현익 차기 국립외교원장. /조선일보DB

홍 내정자가 이같은 발언을 했을 당시는 한미 방위비 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과도한 인상 요구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국’이라며 비난했고, 실제로 독일 등에선 미군 감축이 현실화되기도 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종의 레버리지 차원으로 ‘미군 감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싱크탱크 고위 관계자가 주한미군이 과다 배치됐다는 인식을 드러냄과 함께 “미군 철수 고려”를 공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홍 내정자는 또 미국의 반중(反中) 노선 동참 요구 관련 “(미국이) 자꾸 종용하고 중거리 미사일(INF) 배치까지 시도하고 있는데 이를 배치하면 중국과 러시아를 타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보다도 훨씬 더 심한 중국과 러시아의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미동맹 관련 “북한의 남침과 도발 억지를 위해 설립된 것으로 이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미국의 독단적 이익 추구에 동참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했다.

◇ 洪, 내일 임기 시작… 자격 논란은 계속

한미연합훈련을 놓고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5일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에서 미군 자주포와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내정자가 12일부터 정식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그의 자격과 과거 발언 등을 놓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홍 내정자는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미연합훈련 관련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53분의 1” “하지 않아도 된다” “북한에 (내용을) 간접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어 10일에도 CBS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가 훈련하는데 북한은 훈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며 북한의 미사일·장사정포 도발 가능성을 거론했다. 북한이 한미 훈련에 반발해 무력 도발을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들릴 수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이와 관련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태도가 비상식을 넘어 반(反)국가적” “문 대통령은 외교를 망가뜨리고 국격을 무너뜨리는 내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했다. 윤희숙 의원도 “차기 국립외교원장이라는 분의 주장에 우리나라 현직 외교관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지인에게 물어보니 ‘정규분포를 그려보면 보이지도 않는 왼쪽 끝점일듯’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홍 내정자는 여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가까운 학자 출신이다. 경기연구원과 경기도 평화정책자문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며 이 지사의 국제 관계 조언 역할을 맡아왔다. 2019년 선거법 위반 재판을 받던 이 지사가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활동도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홍 원장이 세종연구소에서 동북아 국제정치와 한반도 안보 전략을 연구해온 외교 전문가”라고 발탁 이유를 밝혔지만, 야당은 “친이재명계 인사를 차관급에 앉힌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홍 내정자 임명을 놓고 직업 외교관들, 이른바 커리어 디플로맷(diplomat)들 사이에선 “국책 싱크탱크가 ‘코드 인사’로 점철됐다”는 불만섞인 반응이 나온다. 국립외교원은 1963년 6월 외무부 소속기관으로 설치된 외무공무원교육원이 그 전신으로, 2012년 3월 1일 외교안보연구원을 개편해 발족했다.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전문성을 겸비한 외교 인재의 교육·양성 및 국가 중장기 외교정책 연구 개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있다. 원장은 차관급 정무직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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