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하명법'도 아예 하나 만들라 [여기는 논설실]
현 정부들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책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어이없고 분노를 유발하는 게 바로 대북정책이다. 현 정부가 북한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고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것은, 그 의도는 차지하고 일단 그럴 수 있다다치자.
문제는 대북관계가 우리는 늘 일방적으로 구애를 하고 북한은 자기들이 원할 때는 이런 화해 제스처에 응하는 듯 하다가 또 뭔가 자기들이 필요하면 갑자기 우리측을 향해 막말을 해대며 모든 대화와 교류를 중단하는 식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웃기는 것은 북한 2인자라고 하는 김여정의 말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6월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하루 만에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해 12월 14일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강제 종료시키고 재적 의원 180명 전원 찬성으로 강행 처리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의 별칭이 '김여정 하명법'이 된 것도 그래서다.
올들어서 김여정의 하명은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상반기 연합훈련이 실시되자 김여정은 담화를 내고 "9·19 남북 군사합의도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5월 문재인 대통령은 8월 연합훈련에 대해 “코로나로 인해 과거처럼 많은 병력이 대면 훈련을 하는 것은 여건상 어렵지 않겠느냐”며 “연합훈련 시기·방식·수준에 대해서는 추후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여정은 이달 1일에는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해왔다. 그러자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은 군사훈련을 하지 말자고 연판장에 서명하는 촌극을 빚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와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10일부터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됐지만 대폭 축소된 지난 3월보다 더 축소돼 진행된다. 작전사령부급 부대의 현재 인원만 훈련에 참여하고 사단급 이하 부대도 참가를 최소화하고 당초 상정했던 병력의 10~20%만 동원한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완전한 운용능력 검증(FOC)도 불가하다. 김여정의 하명이 또 한번 위력을 발한 셈이다.
한미연합훈련은 가공할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훈련이다. 그런데 그런 군사적 위협을 제공한 당사자인 북한이 이 훈련을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하고 이에 정부 여당 관계자라는 이들은 어명이라도 받들 듯, 호들갑을 떨며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떨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남북관계 개선 내지는 북한비핵화지만 문재인 출범 4년간 북한이 보여온 태도만 봐도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에 나설 가능성은 '0'라는 건 상식이다. 천하가 다 아는 이 사실을 정부 여당만 모른다는 말인가. 남북관계 개선이니 대화니 김정은 답방이니 하는 이벤트를 유도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정치적 계산이라는 걸 이제는 많은 국민들도 알고 있다.
절대 다수 의석을 토대로 야당이 반대하든, 국민들이 원하지 않든 상관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법으로 만드는 게 지금의 여당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씌워 자신들의 실정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고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친정부 성향 언론들에게만 언론자유를 인정해주겠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조만간 일방적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원하는 건 뭐든지 법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아예 '김여정 하명법'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어차피 하명이 떨어지면 그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니 이런저런 핑계대지 말고 아예 까놓고 법안 발의하고 숫적 우위로 일사천리 국회 통과시키면 될 것 아닌가.
김선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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