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자본주의인가 한탕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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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판에 PDR(Price to Dream Ratio, 주가꿈비율)이란 용어가 있다. 주식의 전통적인 가치평가법인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로는 해석할 수 없는 높은 주가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우스갯소리다. 대표적인 PDR 기업이 바로 테슬라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무려 7백26조에 달한다. 삼성전자보다도 2백50조원가량 높다. 물론 매출, 영업이익 등 실적은 삼성전자가 테슬라를 한참 상회한다. ‘언젠가 화성에 갈끄’라는 테슬라의 꿈에 사람들이 매료됐다는 설명 외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가다.
얼마 전 한국에서 테슬라의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PDR 기업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게임사 크래프톤이다.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종합 콘텐츠 기업이 아니라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만들어 아이어맨 수트를 입겠다고 해도 꿈은 어디까지나 꾸는 자의 자유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시무식이나 회식 자리에서가 아니라 상장 과정에서 자사의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도구로서 꿈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이미 상장돼 있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시가총액이 곧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비상장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통상 동종업계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을 바탕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상대비교법을 통해 기업 가치를 추론해낸다. 적절한 피어그룹(비교 회사) 선정이 적절한 기업 가치 평가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비교가치법은 PER이다.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누면 PER 배수가 나온다. PER 배수가 작을수록 시가총액에 비해 돈을 많이 버는 알짜 기업으로 볼 수 있다. PER 배수가 높으면 순이익 대비 시가총액이 높다는 얘기이므로 기업이 과대평가된 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 탁월한 미래 성장성을 시장이 인정한 기업의 경우에는 PER 배수가 다소 높게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래프톤도 상장 과정에서 PER 상대비교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도출해냈다. 문제는 비교 기업군이었다.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을 크래프톤과 유사한 기업으로 슬쩍 끼워 넣었다. 이들의 PER 배수가 높은 것은 당연지사다. 크래프톤의 지난해 연매출은 1조7천억원으로 워너뮤직의 5조원에 크게 못 미친다. 한 해에 75조원어치를 파는 월트디즈니와 비교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다.
실적보다 잠재 투자자들을 더 들끓게 만들었던 건 두 회사를 비교 기업으로 끌어안는 서사에 있었다. ‘배틀그라운드’로 영화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해보면 우리도 종합 콘텐츠 기업이 될 수 있다. 과장을 좀 했지만 본질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동석 나온 단편 영화 찍는다고 크래프톤이 월트디즈니가 될 수 없는 건 명확하다. 졸업 작품 하나 찍어놓고 술자리에서 칸을 논하는 졸업 준비생과 큰 차이가 없다. 월트디즈니의 충격이 너무 컸기에 일렉트로닉아츠(EA), 테이크투인터렉티브, 액티비전블리자드 등 글로벌 게임사들을 피어그룹으로 넣은 것에 대해선 지적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는 게 게임업계의 반응이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이례적으로 금융감독원이 크래프톤의 상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감원은 주가는 시장에 맡겨야 된다는 원칙을 따라 기업 공개 과정에서 웬만하면 태클을 걸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오죽했으면’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크래프톤 상장일 유통(거래) 가능 물량은 약 33%로 추산된다. 여기에 상장 이후 3개월이 지나 보호 예수(판매금지)가 해제되는 물량도 약 5.5%에 달한다. 자칫 잘못하면 ‘따상’을 바라보고 크래프톤 주주가 된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이 수익 실현을 위한 꾼들의 매도 물량을 받아내는 ‘쩌리’로 전락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크래프톤은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국내 대표 게임 3사에 펄어비스를 포함시켜 피어그룹을 재구성했다. 월트디즈니, 워너뮤직은 물론 2K, 블리자드 등 해외 게임사들의 이름도 사라졌다. 피어그룹 선정 이유에 대해 금감원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고 나서자 크래프톤은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금감원의 개입이 기업들의 상장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상장이란 서로 한탕 해먹고 빠지려는 도박판이 아니다. 기업은 투자금을 유치해 자본을 확충하고 주주는 기업의 성장을 도우며 이익을 나눠 갖는 것이 주식시장의 취지다. 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몸값을 부풀리는 기업을 견제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의 논리다. 정보 비대칭과 비이성적인 인간의 한계로 인해 수요와 공급 논리만으로 자본주의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세계 대공황을 위시한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디즈니 묻고 더블을 외치는 크래프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크래프톤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사야 하는 쪽이었으면 마찬가지 목소리를 냈을지. 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하는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수많은 투자 전문가들의 돈이 크래프톤에 묶여 있다. 적게는 수년, 많게는 10여 년 동안 버린 셈치고 묻어둔 돈이다. 크래프톤의 전신인 블루홀은 사실상 파산 예정인 기업이었다. ‘배틀그라운드’ 대박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상장 규모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주관사(증권사)도 한 배를 타고 있다. 사모펀드, 벤처캐피털, 증권사 이 중 어느 누구도 크래프톤의 피어그룹 선정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내지 않는다. 코스피, 금감원이 언제부터 한 번 찔러나 보는 감이었나. 이것은 자본주의인가 한탕주의인가.
EDITOR : 정소진 | WORDS : 신진섭(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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