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의 '마녀사냥', 뒤늦은 무죄 판결에도 사과는 없었다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박홍 총장은 기자들 앞에 성경을 들고 나와 그 위에 손을 올린 뒤,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존경받은 신부에 명문대 총장이 성경까지 들고 나와 이야기를 하니, 그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고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민주화 시대'의 대표적인 마녀사냥으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이렇게 시작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우리는 대통령을 친여 대의원들이 체육관에서 뽑던 유신헌법의 유제를 폐기하고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그러나 민주 야당의 김영삼, 김대중이 분열하면서 12.12 쿠데타와 5‧18학살의 공범인 노태우가 승리했다. 정치인들의 탐욕으로 어렵게 싸워서 얻은 민주화의 성과를 죽 쒀서 개 주고 만 것이다.
이어진 총선에서 대구경북, 부산경남, 호남, 충청의 지역 4당이 경쟁하면서 지역주의가 심화됐지만, 그 결과로 여소야대가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억눌렸던 민주화의 요구가 분출했고 1989년 문익환 목사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방북을 했다. 위기감을 느낀 노태우 정권은 김영삼, 김종필을 회유해 1990년 초 3당 통합을 단행했다. 정국의 주도권을 쥔 노태우는 민주화운동에 대해 강력한 공권력으로 대응하는 등 공안정국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가 '1991년 분신정국'이다. 그 단초는 공안탄압에 더해 정권의 대형 비리인 수서 사건이 터지면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 중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경찰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분노한 대학생 등은 연이은 분신 등으로 저항했다. "죽을 일이 있으면 우리가 대신 죽겠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새날이 올 때까지 살아서 싸우는 것만이 진정한 투쟁의 길이다." 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들의 모임인 유가협이 학생들의 자제를 호소했다. 이번엔 경찰의 토끼몰이로 성균관대학생 김귀정이 압사했다. 노태우 정권은 정권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무언가 반전이 필요했다.
갑자기 그전까지 민주투사였던 김지하 시인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공안통치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도 목숨을 던지는 운동권을 질타하는 '얼치기 생명사상'에 기초해 보수언론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러나 3일 뒤 다시 분신이 일어났다. 운동단체인 전국민주민족연합의 사회부장인 김기설이 서강대학교 본관 5층에서 분신 후 투신해 사망한 것이다.
국민들이 충격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등장한 것이 바로 분신 장소인 서강대학교의 박홍 총장의 '어둠의 세력' 발언이었다. 박 총장을 모시고 있던 한 간부는 김기설의 죽음이 우연한 자살이 아니라 사전에 일사불란한 계획에 의해 여러 사람이 합동하여 저지른 것이라고 한 술 더 떴다.
기다렸다는 등 보수언론들은 일련의 죽음이 계획된 것이며 순번이 정해져 있다느니 하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분신은 '잘못된 선택'이다. 그러나 '순수한 동기'에서 행한 자기희생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과 노태우 정부는 이를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에 의해 기획된 것으로 몰고 갔다.
"단순하게 변혁운동의 도화선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역사의 이정표가 되고자 함은 더욱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맑은 현실과는 다르게, 슬프게, 아프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 속에 얻은 결론이겠지요. 노태우 정권은 퇴진해야 합니다. 민자당은 해체되어야 합니다."
특히 공안당국은 옥상에 남겨진 김기설의 2장짜리 유서에 주목했다. 김기설의 친구인 강기훈이 잡혀 왔고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과수의 필적 검사에 의해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해준 것으로 몰고 가, 그를 자살방조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보수 언론들도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을 대서특필했고, 노태우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 여론은 민주화운동의 부도덕성을 비판했고 노태우 정권은 위기를 넘겼다.
강기훈은 '독재정권의 주구'와 다름없었던 사법부에 의해 3년형에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 받고 꼬박 3년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 사건에 대해 <1991년, 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권경원 감독의 표현대로,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경찰, 검찰, 법원이라는 "사법공동체가 만든 블랙코미디"에 다름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강기훈 씨는 감옥에서 나와서도 '운동을 위해 친구를 죽게 만든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낙인을 안고 20년 이상 살아야했다.
박홍 신부의 마녀사냥은 김기설 분신 사건에서 끝나지 않았다. 1994년 국내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우르과이 라운드 비준에 농민과 학생들이 격렬하게 반대 시위를 하자, 그는 "시위 배후에 주사파(주체사상파)가 있고 주사파 배후는 김정일이다"는 발언으로 또 다시 공안정국을 유도했다. 이에 대해 증거를 대라고 하자, 그는 "고해성사에서 들은 내용"이라고 이야기해, 고해성사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은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강기훈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한 성직자에 의해 짓밟힌 한 청년의 꽃 같은 청춘과 무려 24년이 지나 그의 나이가 오십이 넘은 뒤에야 뒤늦게 정의가 실현된 것이다. 얼마 뒤 서강대학교 민주동문회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강기훈은 박 전 총장과 서강대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다.
"박홍 총장은 당시 '운동권이 조직적으로 분신을 사주하고 있다'고 했고, 서강대 총무처장은 '이번 변사 사건은 우연한 자살행위가 아니라 사전에 일사불란한 계획을 수립하여 여러 사람이 합동하여 저지른 엄청난 것으로 판단됩니다'라고 주장했다. (…) 십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홍 전 총장과 서강대에 '우리는 요구한다'. (…) 더 늦기 전에 거짓을 참회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라. 이것만이 서강대 동문들과 재학생들의 불명예를 씻고 역사를 바로세울 유일한 길이다."
무죄판결에도 담당 검사와 필적 감정을 한 국과수 문서감정실장이 사과를 하지 않자, 강기훈은 국가와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추상적인 국가의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개인들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고, 강 씨는 2018년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특히 강 씨는 감옥 생활 등으로 생긴 간암으로 최근 3번이나 수술을 하는 등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2년 이상 감감 무소식이다. 답답한 일이다.
게다가 당시 수사팀의 일원으로 강압수사 논란에 휘말렸던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잘 나가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촛불 이후 검찰개혁을 위해 만든 검찰과거사위가 이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 사과를 권고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다른 사건들과 함께 포괄적 사과를 한 것, 그리고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이 촛불항쟁 덕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기훈 유대 대필 조작 사건은 특히 내가 일했던 서강대학교에서 생긴 일이라 가슴이 아프다. 물론 이 사건은 내가 서강대에 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한 때 서강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강기훈 씨, 그의 가족 등 이 사건으로 고통 받은 분들, 나아가 국민들에게 사과를 드린다.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 등을 통해 우리 민주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박 신부의 죽음의 세력 발언으로 무고한 한 인간을 고통으로 몰고 갔고 부도덕한 독재정권의 민주화운동 탄압을 도왔다. 비극의 현장인 서강대 본관을 올려다보고 있자, 1901년 제주에서 일어난 신축민란(이재수의 난으로 더 많이 알려진)를 기념해 서귀포 대정에 세워진 삼의사비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이에 대해서는 '손호철의 발자국' 1. 모슬포 신축민란, <한국일보>, 2020년 8월11일자 참조).
"여기 세우는 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없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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