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싱크홀' 김성균 "'내가 이런 곳에서 연기를?'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었어요"
배우 김성균의 연기 스펙트럼은 무한하다. 카리스마 있는 악역부터 익살스러운 코믹 연기까지,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오롯이 그 인물과 하나가 된다. 그런 그가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을 자신만의 색깔로 그려내며 극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김성균은 최근 영화 ‘싱크홀’ 개봉을 앞두고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며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장르”라고 말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섭렵한 그가 단숨에 매료됐던 ‘싱크홀’의 장르는 재난 블록버스터. 11년 만에 서울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동원(김성균)이 청운빌라로 이사 온 뒤, 빌라 한 동이 통째로 싱크홀에 떨어져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김성균이 연기한 동원은 티격태격하던 청운빌라 주민 만수(차승원), 그리고 집들이를 왔다가 함께 고난을 겪게 된 직장 동료 김대리(이광수), 인턴사원(김혜준)과 원팀을 이뤄 탈출하기 위해 힘쓴다.
“큰 재난 상황에 맞닥뜨린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고생스럽게 역경을 헤쳐나가는 재난 영화 속 인물들이 멋져 보였거든요. 개인적으로 SF영화나 재난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싱크홀’을 통해 원 없이 찍은 기분이에요. 처음에는 싱크홀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어떻게 구현해내야 할지 걱정이 많았는데, 시사회 때 완성본을 보고 다행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여건에서 최선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 안심하게 됐어요.”
‘싱크홀’은 재난 영화이지만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매 순간 유머가 강조돼 유쾌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차승원, 이광수 등과 함께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한 그도 처음에는 이런 색다른 접근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 역시 흔히 생각하는 재난 영화로 해석했다가, 김지훈 감독의 피드백을 거치며 캐릭터를 잡아갔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이 있지만 유쾌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호흡이 가라앉다 보면 한없이 가라앉게 되니까 유쾌하고 희망적인 부분으로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디렉션을 주셨어요. 제가 영화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싱크홀’과 ‘엑시트’를 비교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재난 상황에서 유쾌함으로 풀어내는 부분에서요. 그런 영화처럼 재난은 재난일 뿐이고, 인간은 유쾌함이라던가 유머를 잃지 않는 본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캐릭터에 유머가 깔려있지만 무작정 웃기기만 한 코믹형은 아니다. 김성균이 연기한 동원은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 그가 시나리오를 보며 느낀 동원의 첫인상은 교과서에 나올 법한 평범한 가장이다. 그런 부분에 포커스를 두고 연기하긴 했지만, 문득문득 캐릭터성이 강한 차승원과 이광수의 역할이 탐나기도 했다.
“이광수가 연기한 김대리 같은 캐릭터처럼 얄밉게도 하고 싶고, 차승원 선배님이 맡은 만수 역처럼 강한 남자의 느낌을 내고 싶더라고요. 그런 욕심이 보이면 감독님이 많이 눌러주셨어요. 제가 욕심을 낼 때마다 감독님이 ‘무서운 눈빛이 나온다. 착한 인물로 가자’고 하셨죠.”(웃음)
평범한 동원 캐릭터가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이유는 부성애가 돋보이는 인물이기 때문. 동원이 어린 아들 수찬(김건우)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상황에 뛰어드는 장면은 울컥하게 만든다. 김성균은 수찬을 안고 탈출하는 과정이 실제 아들을 구하는 것처럼 느껴져 몰입하게 됐다고.
“(김)건우가 촬영하면서 어디 부딪히거나 다칠까 봐 걱정되고, 제가 어떻게든 지켜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제가 와이어에 매달려 있고 건우와 제 몸에도 와이어가 연결돼 있어서 안전 장비가 구비돼 있는 거였지만, 현장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촬영하다 보면 스르르 긴장이 풀려서 힘이 빠지기도 하는데, 위험하니까 ‘아빠 꼭 껴안아!’ 이렇게 야단도 치기도 했어요. 진짜 내 새끼처럼 느껴졌죠.”
대규모 영화를 이끄는 주연의 어깨는 무겁다. 그러나 김성균은 ‘싱크홀’은 어떤 한 명이 주인공이라기보다 각자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팀워크가 중요한 영화라고 여겼다. 그 덕분에 주연이라는 부담은 덜고, 차승원과 이광수, 김혜준에게 기대고 의지했다.
“김지훈 감독님이 이끌고, 차승원 선배님이 보듬어 주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분위기였어요. 팀워크가 중요한 작품이라 촬영 시작 전에 단체 체조를 했는데, 처음에는 차승원 선배님이 만수 캐릭터처럼 ‘이런 걸 왜 하는 거야?’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는 제일 열심히 하셨죠. 급기야 나중에는 체조할 때가 되면 우리한테 빨리 오라고 하면서 리드하시더라고요.”(웃음)
“덕분에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차승원, 이광수 모두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고,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배우들이라 그들이 활약을 많이 했죠. 저는 그들의 ‘받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욕받이가 아닌 코믹받이 느낌이요. 워낙 이광수와 차승원 선배님이 통통 튀게 잘해주셔서 제가 수혜를 입었어요. 김혜준은 우리가 짓궂게 약 올리고 식사할 때마다 ‘국밥 먹자’고 하는 식이었는데 그 틈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어요. 동생이라고 뒤로 빼지도 않고 강인하게 모든 걸 소화했고요.”
‘싱크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고 스펙터클하게 만든 대규모 프로덕션이다. 약 5개월에 걸쳐 실제 동네 같은 지상 공간 세트를 만들고, 싱크홀 속에 떨어진 건물의 흔들림을 전달하기 위해 짐벌 세트 위에 빌라 세트를 지었다. 또 물이 차오르는 장면 촬영을 위해 아쿠아 스튜디오에 빌라 옥상까지 포함된 수조 세트를 만들었다. 여기에 시각 특수 효과(VFX)로 디테일을 살렸다.
“촬영하면서 마을 하나를 구현해 놓은 세트와 재난 상황을 구현한 세트들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잘 준비해 놓은 공간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을 만큼 크고 디테일하고 멋진 공간이었거든요. ‘내가 이런 데서 연기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자부심이 많이 생겼죠.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할 때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웬만한 부분은 다 세트로 구현돼 온전히 세트에 묻어갈 수 있었어요.”
재난 영화답게 온몸을 던지는 액션 연기는 가장 힘들었던 일이었다. 한겨울에 아쿠아 스튜디오의 차가운 물속에서 연기를 하거나, 아역 배우의 안위를 걱정하며 탈출신을 찍는 것은 잊지 못할 일이다. 수십 편의 영화의 드라마를 경험한 김성균에게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자, 어려웠던 작업으로 남았다.
“‘싱크홀’은 제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영화로 남을 것 같아요. 뭔가 하나의 고난의 과정을 통달하게 된 것 같아요. 특수 임무를 완수한 것 같은 느낌이죠. 내가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사실 김건우도 아무렇지 않게 촬영에 임해서 제가 엄살을 부릴 수 없기도 했어요.”(웃음)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영화계가 힘든 시기에 개봉하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촬영을 마쳐 이런 상황이 닥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몇 차례 연기한 끝에 개봉 시기를 정하게 된 것이라 여러 감정이 든다.
“영화가 뒤풀이를 할 때쯤부터 ‘코로나19’라는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커질 줄 상상도 못했어요. 우리는 당연히 안전한 시국인 상황에서 여름에 개봉할 줄 알았죠. 한편으로는 이렇게 개봉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감사해 하고 있어요. 아직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들이 있는 와중에 개봉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우들의 앙상블과 각 인물들이 서로 힘을 합쳐 헤쳐나가는 희망적인 모습이 매력인 영화이자,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함을 줄 수 있는 오락 영화이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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