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담화 이어 연락채널 불통.. 남북 다시 경색 국면으로

김범수 2021. 8. 1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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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계속 땐 관계개선 없다' 경고
"규모 어떻든 핵전쟁 예비연습"
통신선 2주만에 차단 불만 표출
주한미군 철수도 다시 꺼내들어
文 임기내 정상회담 거론 무색
한·미를 동시에 겨냥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10일 담화는 연합훈련의 규모 축소로 만족할 수 없고,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하는 연합훈련이 지속되는 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지난달 27일 전격 복원된 이후 14일 만인 이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과 군 통신선 정기통화에 응답하지 않으며 불만 의사를 거듭 전하기도 했다.

◆北 “연습 규모가 어떻든 핵전쟁 예비연습”

이번 담화의 가장 큰 특징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됐음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김 부부장이 2020년 3월 첫 개인 명의 담화를 시작한 이후 ‘위임에 따라’ 담화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대남, 대미 입장 발표는 김 부부장이 도맡아왔다.

이번 연합훈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훈련 규모가 대폭 축소돼 진행된다. 남북 간 통신연락선 연결 등 남북관계가 일정 부분 고려됐다. 그럼에도 김 부부장이 과거보다 더욱 강도를 높여 연합훈련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어떤 형태로든 연합훈련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연습의 규모가 어떠하든,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든 우리에 대한 선제타격을 골자로 하는 전쟁 시연회, 핵전쟁 예비연습이라는 데 이번 합동군사연습의 침략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연합훈련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우며, 결국 훈련의 중단이나 영구 철폐가 그들의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부부장이 이날 2018년 이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주한미군 철수를 다시 꺼내든 점도 눈에 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부부장 담화의 핵심은 한·미 연합훈련을 명분으로 향후 무기 개발 등을 정당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북, 북·미 대화 재개 쉽지 않을 듯… 수위 조절 흔적

김 부부장은 이날 남측을 향해서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현 미 행정부가 떠들어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 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하며 만남 자체에 조건을 걸지 않을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명확한 만남의 조건을 원하는 것이다. 북·미 대화 재개 역시 쉽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날 미국의 반응도 원론적 입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통신연락선 재개 이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정상회담까지 거론됐던 것이 무색하게 남북, 북·미 대화 재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마감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고, 국방부도 군통신선 정기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와 관련해 “남북 통신선 복원은 결국 한국과 미국 당국에 대화 재개를 위한 의지와 진정성을 시험해보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김 부부장 담화가 원색적 비난 수위를 줄인 점을 고려할 때 향후 대화의 여지는 남겼다는 평가도 제기됐다. 차 연구위원은 “훈련 전과 시작 직후 모두 김여정 담화로 비판한 북한의 반응은 예년에 비해 강도가 더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김여정 담화 특유의 독설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오산기지 착륙하는 U-2S 고고도정찰기 한국과 미국 군사당국이 하반기 연합훈련 사전연습에 돌입한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U-2S 고고도정찰기가 착륙하고 있다. 뉴스1
◆北, 한·미 연합훈련 빌미 신무기 시험 가능성

북한이 10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앞세워 한·미 연합훈련을 거듭 비난한 상황에서 남북 연락채널까지 불통되면서 북한이 도발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거론된 국방력 강화 기조의 성과를 점검하고자 북한이 연합훈련을 빌미로 실제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취할 군사적 움직임으로는 신무기 시험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무기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북한은 2019년 10월 SLBM 북극성-3형을 시험발사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극성-4형, 지난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북극성-5형 SLBM을 공개했으나 시험발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각에서 미국을 겨냥한 군사적 조치로 북극성-4·5형 시험발사 단행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다.

반면 미국의 강경 대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SLBM 발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적잖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SLBM은 위력과 파급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준하는 무기로, 실제 발사 시 미국은 경직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이를 감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SLBM 발사는 상당히 고강도의 도발이라 쉽지 않다. 북한이 SLBM 발사단계까지 갈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사일 발사 자료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국제사회의 반발을 줄이면서 한반도 정세를 일정 수준까지 긴장시킬 단거리미사일 도발 가능성도 있다. 초대형방사포,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 ‘북한판 에이태킴스’라 불리는 전술지대지미사일은 한반도 남부 지역을 타격할 능력을 갖췄다. 단거리미사일로 평택, 오산, 대구 등 주한미군 기지를 언제든 공격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과시하면, 미국에 대한 간접적 압박 효과를 거두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강경대응 움직임도 예방할 수 있다.

이외에도 기존 SLBM보다 큰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이나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 시험 등 기존에 공개되지 않은 무기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측이 도발로 간주할 만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은 지난해 6월 김 부부장 담화를 통해 남측 일부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면서 통신연락선을 차단한 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번에도 북한이 김 부부장 담화와 통신연락선 단절을 시작으로 군사적·비군사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도발 수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 정부와 군은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행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9일(현지시간)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한 국내 언론 질의에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 명의로 “우리는 북한의 담화에 논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중국의 연합훈련 반대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말했듯이 우리는 이런 결정들을 한국과 발맞춰 내린다”고 답했다.

김범수, 박수찬, 구윤모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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