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는 한겨레] '변질'에 대하여 / 정환봉

정환봉 2021. 8. 1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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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는 한겨레]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가 결정된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심사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땐 대개 설렌다. 이번 도쿄올림픽이 그랬다. ‘메달을 따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말하는 목소리보다 최선을 다한 선수를 향한 박수 소리가 컸다. 선수들의 자세도 달랐다. 높이뛰기 결승에 진출해 4위를 기록한 우상혁 선수는 ‘금메달 높이’였던 2m37㎝를 실패한 뒤 가장 먼저 “괜찮아”라고 소리쳤다. 여자 태권도 67㎏ 이상급 결승에 오른 이다빈 선수는 경기에서 진 뒤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는 대신 승자인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 선수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37년 만에 가장 적은 금메달 개수를 기록했지만, 실적을 나무라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고 있었다. 어느 대선 주자의 가족이 명절 때마다 모여 애국가 부르는 것이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관심을 끌 수 있을진 몰라도 미담으로 소비되기 어려운 시대다. 국위선양을 위해 우상혁, 이다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혁, 이다빈의 총합이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평한 인아영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혁명이 아닌 이상 변화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것과의 공존이라고 믿는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양궁 종목에서 5개 중 4개의 금메달을 휩쓴 것에 열광하면서 우상혁의 4등에 가슴 뛰는 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어쩌면 다른 종목 선수들이 ‘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궁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길게 돌아온 것은 한겨레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업무 중 하나는 회사에 접수된 독자들의 항의를 살피고 필요한 조처를 하는 일이다. 가장 자주 접하는 의견은 ‘한겨레가 변질됐다’는 것이다. 독자의 목소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1988년,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열망과 함께 태어난 한겨레는 올해로 창간 33돌을 맞았다. 긴 시간 많은 것이 변했다.

1980년대 군홧발로 상징되던 ‘보이는 악’은 민주화 이후 시스템으로 숨어들었다. 노동권을 억압하고 성차별을 하고 소수자의 입을 막는 것은 대개 장벽 너머 거악이 아닌 우리 곁에 스며든 악들이었다. 악을 목격해온 장소가 다르기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바꾸어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에도 과거와 차이가 생겼다. 그런 차이가 너무 만연해 오랫동안 무감각했던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고발하고,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아이티(IT) 기업의 초과노동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겨레는 변화하고 있다.

다만 이런 변화가 변질은 아니라고 믿는다. 법무부는 지난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했다. 이날 입사 4년차와 7년차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경제 내세워 재벌총수 특혜…복역률 기준 완화, 이재용 맞춤’이었다. 최근 법무부가 가석방 심사 기준을 형 집행률의 60% 수준으로 완화한 것이 이 부회장을 위한 ‘맞춤’이 아니었냐는 지적이다. 같은 날 기자 경력 20년이 훌쩍 넘은 논설위원이 쓴 사설의 제목은 ‘이재용 가석방, 촛불을 들었던 손이 부끄러워진다’였다. ‘법 위에 군림하는 경제권력’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두 글이 주목하는 부분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독자들께 한겨레의 여전한 마음을 조금만 더 믿어달라 당부드린다. 한겨레 역시 독자 여러분의 쓴소리를 항상 스스로를 다시 살피는 계기로 삼겠다.

정환봉 소통데스크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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