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일상 회복의 조건을 말하다
일상으로의 회복은 피해자들의 한결 같은 바람
꼭 필요한 건 경제적 지원·가해자 처벌·안전한 청중
“제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저는 당당하고 싶습니다. 긴 시련의 시간을 잘 이겨내고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는 지난 3월17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2차 피해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사실을 드러내는 건 가해자로 인해 정지된 일상을 다시 이어나가기 위해서다.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서 누리던 소소한 일들을 다시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안희정 성폭력 ‘피해 생존자’ 김지은씨는 지난해 출간한 책 <김지은입니다>에 이렇게 썼다. ‘일상으로의 회복’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이 공론에 부쳐지고 1년여가 지났다. <한겨레>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 3명을 심층 인터뷰해 ‘회복을 향해 다가갔던 시간’에 관해 물었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피해자가 낸 용기와 그 과정을 조명하고자 했다. 일상 회복을 지연시켰던 타인의 말, 반대로 치유를 앞당겼던 말, 다른 피해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물었다. 인터뷰는 개별적으로 진행했는데, 세 사람 이야기는 상당 부분 포개어졌다. 겹쳐진 말들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여전히 적대적인 사회가 만들어낸 가해의 교집합이자 피해자 회복을 돕는 치유의 합집합이다.
①친족 성폭력 피해자 명아 “경제적 안정, 그 자체가 치유입니다”
“제가 한번 안아드려도 될까요? 만일 제가 당신 엄마였으면, 당장 이혼하고 지켜줬을 거예요.”
처음 만난 여자가 나를 안아주었다. 6년 전 그날을 떠올릴 때면 명아(42·활동명)씨 눈에 눈물이 고인다. 성폭력 피해자 집단상담 자리였다. 역시 성폭력 피해자였던 그 여성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다가와 명아씨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어렸을 때 받지 못했던 보호잖아요. 누군가는 나를 지켜줬을 거야 싶으니까 숨이 좀 쉬어졌어요.”
명아씨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 범행은 8살 때 있었고, 가해자인 아버지와는 14살이 돼서야 떨어져 살았다. 가해자 행동이 범죄였다는 건 고교 시절 친구의 성관계 경험담을 듣고 알게 됐다. 스무살, 용기를 내 고모에게 피해사실을 말했다. “그건 아빠가 이뻐해준 거야.” 그 뒤로 입을 닫았다. 무거운 비밀을 품고 어찌어찌 살았다.
잊고 살려 했으나 성폭력 피해는 일상을 짓눌렀다. “나는 피해자인데, 왜 내 삶이 부서져야 하느냐고요.” 분노와 억울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자살예방상담전화를 붙잡고 겨우 넘기는 밤이 늘어갔다. 무너짐이 겨우 멈췄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권유로 피해자 보호시설인 ‘열림터’에 들어간 뒤였다. “그곳에서 10대 친족 성폭력 피해자 친구들과 함께 살았어요. ‘나는 약과다’ 싶을 만큼 진짜 심각한 피해자도 많았어요.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다’라는 게 실감 났어요.”
주거가 안정되고, 삼시 세끼를 챙겨 먹었다. 성폭력상담소 지원으로 심리치료도 받았다.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내일 죽고, 오늘은 일단 자자’로 바뀌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진행하는 자조 모임도 꾸준히 나갔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족한테도 피해사실을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자조 모임에서는 말할 수 있으니까 너무 속 시원한 거예요. 거기 사람들은 절대로 공격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안전한 공간에서 말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엄청난 치유였어요.” 독립도 했다. 처음 가져보는 안전한 공간에 마음이 놓였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되어 의료비와 생활비 일부를 지원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하게 아프면 입원해서 쉬잖아요. 그런데 가족 안에서 성폭력을 당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상은커녕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나요? ‘일해서 먹고살아야지’ ‘정신 차려라’ ‘약해빠졌다’며 피해자를 사회로 내모는 경우가 많아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생계 때문에 일하면 결국 회복이 늦춰지는 거거든요. 저에게는 회복의 시간을 벌어준 게 기초생활수급비라는 경제적 지원이었어요.”
‘엄마가 되고 싶다’던 꿈은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나 자신을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명아씨는 자신이 치유보다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았다. 회복의 신호는 그렇게 왔다.
명아씨는 이달부터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듣고 있다. 매달 한번씩 광화문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1인시위도 참가하고, 이 시위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성피당당’에 영상도 올린다. 아직도 친족 성폭력을 ‘근친상간’이라 표현하는 언론에 항의 메일을 보낸다.
“피해자에게 ‘극복해라’ ‘성장해라’ 하지 마세요. 경제적 안정과 혼자 있을 공간만 주면 자연스레 겪은 사건이 이해되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꽃도 보이고 바람도 느껴질 거예요.”
②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ㄱ씨 “가해자가 ‘성폭력 공장’ 되는 걸 막아야죠”
“사건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사건 이후 ‘뉴노멀’을 찾는 것이 진짜 회복 아닐까요?”
ㄱ씨는 지난해 1월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다. 가해자는 사장의 아들이었다. 피해사실을 사장에게 알렸다. 이틀 뒤 사장은 직원들이 다 모인 아침 조회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ㄱ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피해자인 자신이 고소당한 것도 기가 차는데, 이 사실을 직원들 앞에서 발표하는 사장의 2차 가해에 ㄱ씨는 몸이 덜덜 떨렸다.
ㄱ씨는 두차례 성폭력 당한 친구 곁에서 사건 해결을 도운 적이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기에 법과 제도, 젠더 폭력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이다. 그런 그도 자책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날 왜 짧은 치마를 입었을까. 내가 왜 가해자의 건너편이 아닌 옆에 서서 질문을 했을까. 피해자의 잘못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저 역시도 ‘아닌데?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시궁창에 빠지더라고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ㄱ씨는 가해자도 안 받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고소인으로 바글바글한 경찰서 경제팀에서 조사를 받았어요.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직장 선배가요! 제 허벅지를!’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요. 아무리 명예훼손 사건이어도 그 대상이 성폭력 피해자라면 분리된 공간에서 조사해주는 세심함이 없는 게 아쉬웠어요.”
ㄱ씨는 사건이 있은 뒤 넉달 동안 퇴사하지 않고 버텼다. 그사이 일터는 문을 닫았다. 동료들은 회사의 다른 지사로 발령이 났는데 ㄱ씨만 고용 승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해고였다.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하려고 고용노동부 한 지방지청에 찾아갔지만 진정서를 받아주지 않았다. 물리적 접촉이 없었고, 사업주가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처를 했다는 이유였다. 사건 이후 사장은 아들에게 재택근무를 시켰는데, 그게 ‘분리’였다. 홀로 대응하는 데 한계를 느낀 ㄱ씨는 서울여성노동자회를 찾았다. 그곳에는 ‘법률동행 서비스’가 있었다.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 진정을 접수할 때 노무사 동행을 지원한다. “함께 간 노무사가 진정을 접수하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쓴 조서를 인쇄해 달라더니, 빠진 혐의를 일일이 손으로 다 써주더라고요. 너무 든든했어요.”
해고당한 ㄱ씨는 집부터 옮겼다. 입사지원서에 써낸 터라 사장과 가해자가 ㄱ씨 주소를 알고 있는 게 못내 찝찝했다. 이사를 하고, ㄱ씨가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우니 안도감이 몰려왔다. 퇴사하며 받은 실업급여로는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100시간을 들었다. “성폭력이 어떤 구조에서 발생하는지 낱낱이 들었어요. 사실상 ‘내 잘못 아니다’라는 얘기를 100시간 들었다고 봐도 될 정도였어요.”
ㄱ씨는 과감하게 진로를 틀었다. 그는 한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다. 한동안 자책감에 못 입었던 치마도 다시 꺼내 입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이 회복의 첫날인 것 같다고 했다.
ㄱ씨는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해 사업주에게 신고했고,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후엔 무고죄로 역고소했다.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국회 문까지 두드렸다. 거의 모든 국가기관에 피해를 호소한 셈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단언컨대 가해자는 한 사람에게만 그런 게 아니에요. 수없이 가해를 반복하다가 나를 만난 것일 뿐. 가해자가 ‘성폭력 공장’이 되는 건 막아야죠.”
ㄱ씨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회복을 위해서는 △가해자·피해자 분리 △사건 조사 △가해자 징계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사한 폭력을 경험한 다른 피해자에게는 ①경찰에 신고하고 ②고용평등상담실(민간단체 운영 상담실)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가해자는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해야 기록을 남길 수 있죠. 앞선 사람이 그어준 빨간 줄이 뒤에 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싶은 분들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쨌든 당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니까요.”
요즘 ㄱ씨는 유튜브와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한다. 줌바를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바꾼 진로도 퍽 마음에 든다고 했다. “국가 예산으로 피해자 지원을 할 수 있어 좋아요. 국가가 성폭력에 책임을 느끼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③출판계 성폭력 피해자 ㄴ씨 “마이크, 무대, 청중이 필요합니다”
“일상 회복이요? 저한테 과연 회복하고 싶었던 일상이랄 게 있었나 싶어요. 사건 전이나 후나 성폭력에서 안전하지 않은 사회잖아요.”
ㄴ씨는 2014년 출판업계 선배이자 함께 속해 있던 단체 회원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그에게 이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단체 회원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었어요. 회원 중 한명이 행인의 다리를 찍은 사진을 유머랍시고 올린 적도 있어요. 그런 분위기가 있을 때면 저 혼자 항의하며 위기감을 느꼈어요. ‘탄광 속 카나리아’가 된 느낌이었죠.”
카나리아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그는 목격자가 아니라 당사자였다. ㄴ씨는 가해자에게 한자리에서 세차례 강제추행을 당했다. 이 말은 피해자가 경고했는데도 가해행위가 이어졌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ㄴ씨는 경찰에 고소하는 대신 공동체에 경보를 울렸다. 그 인터넷 카페에 가해자 정보 없이 피해사실을 공유했고 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가해자에게는 성폭력 예방 교육 12시간 이수를 권고했다. 법적 처벌이나 징계보다 훨씬 가벼운 조처였지만 가해자는 이 약속마저 번복했다. 생업도 중단 없이 이어갔다. “가해자의 일상은 단 한번도 깨진 적이 없어요.”
ㄴ씨 일상은 달랐다. “사건보다 더 힘든 2차 가해 등을 겪으며 무덤에서 좀비가 줄줄이 나오는 것처럼, 그날의 사건 하나가 그동안 살면서 겪은 젠더 폭력 트라우마를 다 불러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책을 만들기는커녕, 책 한줄 읽지를 못했다. “이 사건을 직격탄으로 해서 확실한 경력단절을 겪었어요.” ㄴ씨는 뒤늦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 발생 뒤 3년이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경찰에 뒤늦은 고소 이유를 이렇게 적어 냈다. “나같이 각자 혼자 끙끙대며 고민하던 사람들이 몇년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고 진실을 증언하는 것을 봤습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결국 결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풀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 잊고 살려고 애썼지만 안 되던 노력을 접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합니다.”
다행히 법은 ㄴ씨의 손을 들어줬다. 가해자는 벌금형을 받았고, 손해배상도 해야 했다. 그 돈을 보태 ㄴ씨는 여성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여성학을 배워 뭘 해보겠다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살아 있을 때 뭐라도 하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갔어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내면을 탐색했고, 여성폭력상담원 활동도 했어요. 이 모든 것이 제가 겪은 사건을 객관화·구조화하는 데에 도움이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ㄴ씨는 자신이 겪은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을 보행자와 트럭의 충돌이라고 묘사했다. “그날 제 신체를 침범했던 가해자의 손이 거대한 가부장제 구조처럼 느껴졌어요. 행인을 친 트럭은 ‘어쩌다 한번 실수’라 할 수 있겠지만, 그 말이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설명할 수는 없겠죠. 그 단체의 또 다른 회원은 제게 ‘너무 세게 (대응)하지 말라’고도 했는데, 같은 이유로 그것도 말이 안 되고요.”
책 한줄 읽기 어려웠는데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 싶을 만큼 ㄴ씨는 회복되었다고 했다. 그에게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꼽아달라고 했다. “진상규명이나 가해자 처벌 못지않게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주도권 회복이 중요해요. 또 피해자 입장에서 안전한 마이크, 무대, 지지하는 청중이 필요합니다. 피해자를 못 나서게, 입 다물게 하는 건 사회의 적대적 분위기니까요.”
조력자의 존재 역시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조력자는 피해자 곁에서 사건 해결을 도와주는 존재다. 조력자가 피해자의 공간을 넓혀준다고 그는 말했다. “해결 과정에서 제가 위축될 때마다 조력자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단호한 대처로 중심을 잡아줬어요.”
ㄴ씨는 외주 편집 일과 여성주의 상담 공부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숨죽인 피해자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냐고 ㄴ씨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숨죽인 피해자에게 말고, 숨 쉬는 동시대인으로서 말하고 싶어요. 성폭력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정부보다 10년 당겨…“탄소중립” 팔걷은 천주교
- ‘사망설’ 알카에다 수장의 61분 메시지 “미국, 산산조각나 철수”
- 790g 초미숙아, 그게 끝 아니었지만…엄마 위로하듯 “미안해”
- 공공임대보다 만족도 높은데…‘사회주택 지우기’ 나선 오세훈
- 북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1500㎞ 표적 명중”
- [궁금증톡] 당근마켓, 돈 어떻게 벌지? 수수료도 없는데
- 화이자 1차 접종 20대 남성, 닷새 뒤 숨진 채 발견
- 밖에서 불어온 ‘수소 열풍’, 기회인가 거품인가
- ‘제보자’ 조성은 “‘손준성 검사 전달’ 입증할 자료 대검·공수처에 냈다”
- (영상) 드라마 D.P. 속 탈영병, 실제 군대에서 어떤 처벌 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