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적 처사 반드시 대가" 김여정 담화 후 北, 통신선 또 차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계기로 남북 관계를 다시 경색 국면에 빠뜨릴 조짐이 보인다. 한미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10일 북한 당국은 남북 통신연락선을 통한 마감통화(오후 5시)에 응하지 않았다. 이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문을 내고 핵개발을 연상시키는 '절대적인 억제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이날 담화문은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로써 김 총비서의 의중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메시지임이 시사됐다. 한미훈련을 둘러싼 범여권 국회 의원 70여명의 '한미훈련 연기 연판장' 논란 등 정치적 혼선으로 김정은 총비서가 운신의 폭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의 지난 1일자 한미훈련 중단 촉구 담화에 따른 남한 내 정국을 보면서 '남한 흔들기'에 오히려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다.
통일부는 이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마감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와 관련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오후 4시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정기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부터 남측과 북측은 하루 두 차례(오전 9시, 오후 5시)에 걸쳐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해 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 훈련에 반발한 담화를 내놓은 이후인 이날 오전 9시만 해도 정상적인 통화가 이뤄졌지만 8시간 이후 북측의 연락이 갑자기 끊긴 것이다.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미훈련과 관련,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미훈련을 미국의 '적대시 정책' 상징이라고 주장도 펼쳤다.
그간 한미 연합훈련을 둘러싼 논란은 거셌다. 지난 1일 김여정 부부장이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며 훈련 중단을 촉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미 훈련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런 걸 이유로 연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발언한 가운 더불어민주당을 주축으로 74명의 범여권 의원이 한미훈련 연기에 동의한다고 서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 부부장 담화 발표 이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찾아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두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소신 발언'을 하면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서욱 장관에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지시한 것도 다양한 관측을 불러 일으켰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절대적 억제력은 핵을 얘기하는 것인데 핵개발 과정에서 미사일 시험 재개와 같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통신선 복원이 시작된) 27일부터 (북측이) 한 것을 보면 결국은 명분쌓기용이다 생각을 지울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관측이 맞다면 북측이 애초부터 남북 대화에 진정성을 갖지 않았다는 의미로 '오늘 오후 5시' 뿐 아니라 일정 기간 연락을 계속 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교수는 "확실치는 않지만 오늘 담화에 나온 나온 내용이 김정은의 결정이라면 (통신선 운영을 일정 기간) 중단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한미 훈련 중단 요구에 대해) 정부·여당이 일사분란하게 신속히 대응하고 미국도 북한에 '조건을 건 대화는 받을 수 없다' 메시지를 같이 내버렸으면 이만큼 한국을 쉽게 봤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원래 통신선이 정치적,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지만 북한이 자의적으로 통신선을 운영하고 있다고 봐야한다"며 연판장 사태와 관련, "그 정도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듯하게 보여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지며 (한미훈련에 대한 반발을 막는) 효과도 없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이번 담화를 보면 8월까지는 김 총비서의 의향에 따라 도발과 불만 표현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9월 이후 (남북 관계에) 새로운 라운드가 열릴 수도 있다"고 봤다. "북한이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완전히 차단시켜놓으면 대(對)중국 협상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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