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블랙 호크 다운' 팬.. '모가디슈' CG 최소화"
“첫째 아들이 전쟁 중에 군대 가 있는데, 둘째 아들이 입영통지서를 받은 엄마와 같은 심정이라고 할까요.”
강혜정(51) 외유내강 대표는 쓴웃음을 짓곤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여름 대목이 무색해서다. ‘모가디슈’(감독 류승완)가 9일까지 178만 명을 모으며 선전하고 있으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영화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지만 “시장이 움직이지 않고 뭔가 굳어있는 느낌”이라서다.
강 대표는 ‘모가디슈’가 고투하는 와중에 또 다른 영화 ‘인질’을 18일 선보인다. 외유내강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영화계를 대표해 여름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셈. 코로나19로 관객 동원은 성에 안 찬다고 하지만 두 영화에 대한 평가까지 야박할 수는 없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제작자로 떠오른 강 대표를 9일 오후 서울 암사동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나 영화 안팎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류 감독 내부검열 엄격히 하며 5편 제작 포기
‘모가디슈’는 류승완(강 대표의 남편이다) 감독의 최신작이라 큰 주목을 받았다. 제작까지 난관이 많았다. 류 감독의 전작 ‘군함도’(2017)가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리며 내상이 깊었다. 자연스레 “내부검열을 많이 하게 됐고, 기획했던 영화 5편의 제작을 잇달아 포기했다”. 우연한 기회에 “이런 시나리오는 어떠냐는 제의가 들어오면서” ‘모가디슈’와 인연을 맺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한 외교관이 합심해 사지를 탈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였다. 강 대표와 류 감독이 ‘베테랑’(2015) 이후 한때 관심을 뒀던 이야기였다. 김용화(‘국가대표’, ‘신과함께’ 등) 감독이 이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해 포기했던 내용이다. 강 대표는 “류 감독이 (소말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블랙 호크 다운’ 팬이고 소말리아에 관심이 많아 바로 영화화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모가디슈’는 모든 장면을 모로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에서 촬영했다. ‘베를린’(2013) 제작 경험이 밑돌이 됐다. ‘베를린’ 제작 때는 “화보 촬영했던 사람들과 연결되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으나 ‘모가디슈’는 달랐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촬영을 많이 하는 곳이라 전문 현지 프로듀서가 적지 않았다. “가장 일 잘하고, 가장 일 많고, 가장 비싼” 프로듀서와 손을 잡았다. 소말리아와 모로코는 인종이 달라 흑인 배우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오디션으로 뽑았다. 단역과 엑스트라는 “모로코에 있는 흑인을 다 모았다 할 만큼 최대한 구하려고 애를 썼다.”
모로코 4개월 머물며 난관 넘고 넘어
촬영 기간은 4개월. 해외 로케는 매사 예측 불가였다. “차량이 괜찮다 싶으면 사람이 문제이고, 사람이 다 준비돼 있으면 차량이 말썽을 부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촬영 전 제작비 송금 역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영화 촬영을 빌미로 돈을 해외로 빼돌리는 경우가 있어서였다. 송금 문제를 해결하느라 2개월을 보냈다. “돈을 못 보내면 촬영이 무산될 수 있으니 아찔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의료 상황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에사우이라는 못에 찔려도 제대로 치료할 만한 의료기관이 없었다. 대도시 마라케시까지 비포장도로를 차로 4시간 이상 달려야 의료 지원이 가능했다.
에사우이라 이곳저곳을 30년 전 소말리아로 바꾸는 데 “스태프들이 영혼과 뼈를 갈아 넣어야 했다”. 주소말리아 한국대사관 참사관 강대진(조인성)이 영국 기자를 만나는 시장처럼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세트를 지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영화의 절정인 차량 추격 장면을 찍기 위해 활용된 도로 길이만 2㎞ 남짓. 밤 중 화재가 발생하는 장면은 모두 실제 불을 내서 촬영했다. 강 대표는 “컴퓨터그래픽(CG)을 최소화하자는 게 류 감독의 연출 원칙”이라며 “비행기 이륙 장면, 거리의 개, 멀리 보이는 건물 정도만 CG이고 나머지는 실제”라고 밝혔다.
외유내강은 류 감독과 강 대표의 성을 따서 이름 지었다. 류 감독 영화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다시피 하던 영화사였으나 최근 3, 4년 사이 활동 폭이 달라졌다. “류 감독의 취향이 차기작이 되고, 회사 포트폴리오가 되던” 모습은 ‘군함도’를 거치며 사라졌다. 강 대표는 “류 감독이 ‘군함도’ 이후 여러 영화 제작을 추진하다 중단하면서 회사 프로듀서들이 똘똘 뭉쳤고 신인 감독을 절박하게 찾게 됐다”고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다 보니” 2019년에만 ‘사바하’와 ‘엑시트’ ‘시동’ 3편을 선보였다. ‘엑시트’가 관객 942만 명을 모으는 등 3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강 대표는 “류 감독이 없어도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군함도’는 아픈 손가락이지만 여러 가지로 좋은 약이 됐다”고 말했다.
"류승완 넘어서자"... 다양한 영화 제작 박차
‘인질’ 역시 외유내강이 ‘류승완 프로덕션’에서 탈피하기 위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제작비는 57억 원. 한국 상업영화치고는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갔지만, 제작비가 영화 완성도의 전부가 아님을 새삼 일깨워 줬다. 영화배우 황정민(황정민)이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다. 94분에 이야기를 압축해 금세 터질 듯한 긴장감을 전한다. ‘모가디슈’와 마찬가지로 최영환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았다. 강 대표는 “신인 필감성 감독은 배우 연기에 집중하도록 하고 베테랑 스태프가 기술적인 면을 뒷받침하는 식으로 진용을 짰다”고 말했다. ‘인질’에도 차량 추격 장면이 등장하는데, 짧으면서도 강렬하다. 높은 난도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완성했다.
강 대표는 내부 경쟁력이 강한 영화사 외유내강을 꿈꾸고 있다. 그는 “구성원들에게 선발전이 국제대회보다 더 치열한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을 예로 들며 말할 때가 많다”고 했다. 강 대표는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처럼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하듯 영화 한 편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영화사”가 목표라고도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관객들이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요즘 더욱 필요한 덕목”이라고 덧붙였다. 여성 제작자로서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다. 그는 “‘엑시트’ 제작할 때 여주인공 의주(윤아)가 넘어지거나 ‘먼저 가’ 이런 대사를 하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이상근 감독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했다”며 “류 감독이 촬영 중인 ‘밀수’는 여자들이 주도하는 여자 영화라 기대가 더 크다”고 말했다.
강 대표에게 류 감독은 여전히 ‘살아있는 교과서’다. “류 감독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작자로서 깨치는 게 많다”고 말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내가 왜 이 영화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그렇게 자주 오래 던지는 감독이 없어요. 영화를 만들 때마다 발버둥을 치듯 최선을 다합니다. 볼 때마다 나는 한참 멀었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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