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김연경에게 강요한 ‘文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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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북한 선수 정성옥은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고 불러주시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했다. 이 아부 덕분인지 우승 상금 5만달러를 당에 헌납하지 않아도 됐다.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계순희가 세계유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을 땐 어머니까지 나서서 “순희는 우리 장군님 뜻대로만 했기 때문에 이겼다”고 했다.
▶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1980년대 프로 복싱 챔피언에 오른 한 선수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각하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챔피언 되거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면 대통령 축전을 받던 시절이긴 했지만 ‘대통령에게 감사’는 생뚱맞았다. 그런데도 1차 방어에 성공하자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권이 바뀐 뒤에야 이유를 털어놓았다.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는데 윗분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도쿄 올림픽 4강에 오른 우리 배구 선수단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배구연맹 관계자가 김연경 선수에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하라”고 했다. 김연경 선수가 감사하다고 했는데도 “기회가 왔다”며 추가 답변을 요구했다. 김 선수가 당황해하며 “했잖아요. 지금” 했지만 “한 번 더”라며 재차 강요했다. 그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의 항의가 배구협회에 쏟아졌다. 인터넷 댓글 창도 벌집 쑤신 듯 들끓었다.
▶ ‘인터뷰 봤는데 기가 막히네요’ ‘화딱지 나서 정말’ ‘배구협회장 나와서 정식으로 사과하세요’. 댓글 창에 달린 제목들이다. 한 네티즌은 “진짜 보는 내내 질문과 태도가 너무 처참해서 제가 다 선수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역대 최악 성적을 낸 올림픽에 대한 아쉬움을 여자 배구 선전으로 달랬던 국민들이 폭발한 것이다. 도대체 대통령이 도와준 게 뭐가 있다고 고생한 선수에게 감사를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진보 논객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대통령은 청와대 거주 기간 내내 온종일 아부의 폭포수를 맞는다”고 썼다. 하긴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올리면서 “달빛이 대통령 성정을 닮았다”고 하자 청와대 대변인에 발탁되는 세상이다. 이런 정권의 행태가 올림픽 영웅들까지 아부에 동원하려는 꼴불견 행태를 빚은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80년대 복싱 챔피언이 벨트 차고 외쳤던 ‘대통령께 감사’라는 구호를 자칭 민주화 정권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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