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이 납치됐다.. 어이 브라더, 구하러 드루와!
“저는 항상 사람들에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면 60여 명의 스태프가 멋진 밥상을 차려놓아요. 그럼 저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18일 개봉하는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은 첫 장면에서 2005년 배우 황정민의 유명한 청룡영화상 수상 소감을 보여준다. 실제 배우 황정민이 영화 속의 톱스타 황정민을 연기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보여주기 위한 극적 장치다. 영화 속의 황정민은 서울 강남에서 제작 보고회를 마친 뒤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납치된다. 몸값은 5억원. 남은 시간은 불과 15시간. 이 시간까지 정확하게 몸값을 보내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인질’은 시한폭탄이 터지는 시점까지 거두절미하고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쾌감으로 가득한 영화다. 최근 한국 상업 영화의 트렌드처럼 94분의 비교적 짧은 상영 시간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인질극이자 탈출극이라는 장르적 재미에 온전하게 집중할 줄 안다. 최루성 감상이나 사회적 분노 같은 요소를 덕지덕지 붙여서 흥행을 노렸던 예전 한국 영화들과도 대비를 이룬다.
실제 인물이 가상의 상황에 놓였을 때 가장 큰 위험 부담은 관객들이 자칫 이물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인질’은 그동안 스크린에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배우들을 인질범 일당으로 캐스팅하는 방법으로 영리하게 이 함정을 빠져나간다. 18년 차 뮤지컬 배우 김재범과 드라마 ‘알고있지만,’의 배우 이호정까지 악역을 맡은 조연들의 호연(好演)은 황정민의 무게감과 시종일관 호각지세를 이룬다. 5일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배우 황정민이 “영화에서 황정민만 보이는 게 아니다. 인질범과 형사가 모두 잘 보이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라고 자랑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상황이나 전개 방식은 오락적이지만, 납치 장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인질범과 피해자들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중반 설정은 무척 연극적이다. 실제로 출연진은 촬영 3~4주 전부터 작업실에 캐비닛과 소파 등을 설치한 뒤 리허설을 거듭했다. 인질극이자 탈출극인 이 영화의 전범(典範)은 적지 않다. 감독 스스로 밝힌 ‘프렌치 커넥션’(1971년)부터 ‘저수지의 개들’(1992년)과 ‘세븐’(1995년)까지 할리우드 장르물의 직간접적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필감성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군더더기 없이 빠른 전개와 연기자의 시선에서 포착한 시점 숏(shot)의 영리한 활용으로 한껏 속도감을 높인다.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차별점이 있다면 배우 황정민의 존재감일 것이다. “드루와 드루와(들어와 들어와)”와 “브라더” 같은 전작 ‘신세계’의 대사들을 패러디하면서 영화는 자기 언급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간담회에서 황정민은 “저 역시 납치당한 경험은 없으니 연기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면서 “철저하게 황정민으로서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초반의 피해자가 후반부 액션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설정은 배우 황정민이 아니었다면 자칫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쉬웠을 것이다. 배우 한 명이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가는 저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원 톱(one top)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오락성만큼은 올여름 한국 영화 개봉작 중에서도 단연 윗길이다. 역시 황정민(배우)은 황정민(배역)을 연기할 때조차 황정민(연기파)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셀럽 정치의 종말
- ‘엘리트당’ 돼버린 민주당, 노동자·유색인종 결집 실패
- 걸프전 참전 용사 라시비타, 선거운동 진두지휘
- ‘최고 공직=남성’ 200년 역사… 인종보다 강력한 유리천장
- “해거티·폼페이오 등 지한파 인사 적극 활용 트럼프 인식 바꿔놔야”
- 尹 “트럼프가 먼저 北문제 꺼내… 오물풍선 얘기해줬다”
- 시정연설 불참에… “내년엔 꼭 가고 싶다… 야당도 예의 지켜야”
- 尹 “적절한 시기 인사”… 김여사 라인 정리엔 선 그어
- 한동훈 갈등설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아질 것, 중요한 건 초심”
- “북한군 관여 따라 우크라 무기 지원 배제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