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최고 스타는 바일스..용기 있는 기권으로 선수인권 향상"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윤호우 논설위원 2021. 8. 10. 21: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정신의학 개척한 한덕현 교수

[경향신문]

한덕현 중앙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병원 진료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려고 하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리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한덕현 교수는 중앙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후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유명한 스포츠 심리학자인 레너드 자이콥스키에게 스포츠 심리학을 배웠다. 프로야구팀 현대 유니콘스에서 시작해 삼성 라이온스, LG 트윈스, KT 위즈 등에서 심리주치의로 활동했다. 현재 FC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앙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로 소아청소년 정신의학, 인터넷중독, 게임 과몰입 등이 전문 분야다. 저서로는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스포츠 마인드 트레이닝> 등이 있다.

지난 8일 막을 내린 도쿄 올림픽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마냥 금메달에만 환호한 것이 아니었다. 선전한 4위 선수에게도 갈채가 쏟아졌다. 심리적 부담 때문에 경기를 뛰지 않았던 미국의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선수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공론화하는 장이 됐다. 스포츠 정신의학을 처음 한국에 도입한 한덕현 중앙대 의대 교수(51)는 “사람들은 선수들을 슈퍼맨으로 생각하고 때론 비난하지만 선수들은 운동하는 영역에서만 슈퍼맨이지 모든 인격이 완비된 슈퍼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숨 막힐 듯한 경쟁의 중압감을 이겨내고 경기를 즐긴 Z세대 선수의 당찬 모습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 교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선전한 선수들은 모두 신진이었다”며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한 것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프로야구팀에서 오랫동안 심리주치의로 활동한 한 교수를 지난 7일 중앙대병원에서 만났다.

- 이번 올림픽에서 야구 경기에 큰 관심을 가졌을 법하다.

“지금 한국 프로야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투고타저다. 이번 올림픽에서 이의리 선수 같은 투수 등의 세대교체를 작정한 것인데 잘됐다. 타자는 세대교체가 되지도 않았고, 기존 타자들에게서도 적시타가 터지지 않았다. 패인이 거기에 있다. 하지만 실패가 아니다. 한국 야구가 갖고 있는 숙제를 확인한 것이다.”

- 지난 번(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야구팀은 부담이 많았다.

“금메달을 딸 때는 이례적으로 쿠바를 깼다. 현재 한국 순위가 4위인데, 목표가 금메달이라고 압박을 주니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다. 평소 실력대로 해도 될까말까인데 심리적 위축을 받게 되면 평소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

- Z세대 젊은 선수들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 수영의 황선우, 양궁의 김제덕·안산, 탁구의 신유빈, 체조의 신재환·여서정, 높이뛰기의 우상혁 등 젊은 선수들은 인터뷰에서도 톡톡 튀는 발언을 해 관심을 모았다.

“이들 세대의 장점이자 단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못하는 당당함이 있다. 기성세대는 밖에서 자극을 받으면 안에서 가공된 것을 내보낸다. 가공되는 것은 자기를 보호하는 면이 많다. 이 말이 나가서 나한테 피해가 오지 않을까 하는 경험을 통해 왜곡하는 것이다. 이들 세대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예전에는 기성세대가 (젊은 선수에게) 야단을 쳤다. 어느 틈엔가 이런 교육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라고 한다.”

- 프로야구에서 이런 젊은 선수들을 만나보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나.

“젊은 선수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하다. 자기는 어떤 타자다, 어떤 투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잘 안되는 팀일수록 ‘그래서는 안 통해’라며 프로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정체성을 깨 버린다. 그런데 잘되는 팀은 그 캐릭터를 그대로 놔둔다.”

선수들은 운동 영역서만 슈퍼맨
인격이 완비된 슈퍼맨이 아니다
응원 넘어 과도한 비난 자제해야
Z세대 선수들의 장점이자 단점은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
그 당당함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져

- 도쿄 올림픽에서 선전한 젊은 선수들이 다음 경기에서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체조 도마에서 금메달을 딴 신재환 선수에 대해 선배인 양학선 선수가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이번 대회가 신 선수한테 가장 쉬울 것이다. 연습한 대로 그대로 뛰고 몇 등 나오는지 보자고 하는 이 상태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다. 이번에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모두 신진 선수이다. 기대 종목은 양궁 빼고 다 무너졌다. 심지어 양궁 안에서도 안산이나 김제덕처럼 신인이 등장했다.”

- 마음껏 하는 게 중요한가.

“젊은 세대가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게 좋은 성적을 가져왔다.”

- 어떻게 해야 더 성장할 수 있나.

“금메달을 딴 선수든 4위를 한 선수든 과정 속에 있다고 봐야 한다. 4위를 했는데 ‘앞으로 4위 이하로 떨어져는 안 돼’라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4위를 했는데 근육량과 순발력이 부족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다음 경기에서는 4위를 하든 10위를 하든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 흔히 “경기를 즐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성적에 집착하다 보면 마냥 즐길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유명 선수들은 ‘어떻게 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리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역도 선수가 125㎏을 들겠다는 자기 목표를 갖고 있으면 그것을 달성하는 것만으로 좋다. 금메달은 중요하지 않다. 125㎏을 드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내가 연습을 통해 갈고닦아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보여주면 그게 즐거운 거다. 금메달을 따는 것은 내가 즐거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즐거운 거다. 다른 사람이 즐거운 게 나에게 전이해서 내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대신 느끼는 것일 뿐이다.”

- 올림픽 경기라는 중압감에다 국가대표라는 자리까지 더해져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프로야구 2군에서 1군에 올라온 선수는 10명 중 9명이 처음에는 잘 못한다. 1군에 와서 잘해야지 하면 성적이 좋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네가 잘하니까 1군에 올라온 거냐, 아니면 잘하려고 1군에 올라온 거냐’고 물어본다. ‘잘해서 온 거다’라고 답한다. 그 모습만 보여주라고 한다. 똑같다. 금메달을 꼭 따야 한다는 것은 협회가 잘못한 거다. ‘너는 잘하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와’ ‘너는 잘하니까 금메달을 따는 것이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잘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 올림픽에서 인상 깊은 선수가 있나.

“탁수 신유빈 선수와 경기한 58세의 니시아리안 선수(룩셈부르크)는 감동적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미국 체조선수 바일스다.”

- 바일스는 “(출전을 포기한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해 오히려 찬사를 받았다.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 올해 도쿄 올림픽까지 스포츠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성적지상주의에서 인권주의로 변모했다. 올림픽 역사에서 큰 흐름인 것 같다. 2018년 동계올림픽의 최고 스타는 금메달을 많이 딴 선수가 아니라 컬링 경기에서 ‘영미’를 외친 김은정 선수였다. 영미가 잘해서 스포츠를 끌고 간 것이 아니라 관중이 개성 있고 열심히 한 경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쿄 올림픽의 최고 스타는 바일스라고 생각한다. 바일스가 부담이 돼 경기를 못한다고 했는데 옛날 같으면 ‘새가슴’이라 비판하고 무시했다. 그런데 관중이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고백했는데 너 정말 용기 있다’며 인간다운 선수라고 인정해줬다. 운동선수의 인권을 크게 향상시켰다. 인위적으로 인권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이 사례처럼 관중이나 스포츠 팬들이 사회를 끌고가야 한다.”

- 응원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과도한 비난이나 댓글 등으로 선수들이 위축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경기나 선수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스포츠 쪽에 댓글을 못 달게 한 건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스포츠의 근원에는 공격성이 있다. 생각했던 대로 안 되면 그 공격성이 원하는 성적을 못 거둔 선수들에게 향한다. 그런 댓글들이 선수들에게 상처를 준다. 이들은 스무 살 청년에 불과하다. 무슨 사회 경험이 있고 방어기제가 있나. 그런 공격성을 다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 사람들은 선수들을 슈퍼맨으로 생각한다. (비난을) 다 막아낼 것으로 생각한다. 운동하는 영역에서만 슈퍼맨이지 모든 인격이 완비된 슈퍼맨은 아니다.”

기쁨과 슬픔 그대로 반응해야 정상
멘털 약한 선수라 할 것이 아니라
집중력 약한 선수라 불러야 맞아

-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국가대표이고, 그래서 멘털이 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멘털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멘털이 도대체 뭐냐고 묻게 된다. 욕을 들어도 아무 감정을 못 느끼고, 칭찬을 해도 겸손하고, 승리해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하지 않으면 그것은 심리적으로 정상이 아니다. 감정과 자극에 반응해야 정상이다.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해야 정상이다. 멘털, 그건 신이 갖고 있는 정신 상태이다. 멘털이 약한 운동선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집중력이 약한 선수, 감정의 기복이 큰 선수라고 불러야 맞다고 생각한다.”

- 스포츠 정신의학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인데 세계적으로는 있다. 201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관으로 스포츠 정신의학자 20명이 모여 나흘 동안 토론했다. ‘올림픽 선수와 프로 엘리트 선수들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라는 게 주제였다.”

- 직접 현장에서 스포츠 정신의학의 효과를 본 사례가 있나.

“2군에서는 거포였는데 오랫동안 무명으로 지낸 선수가 있다. 1군에서 안 터졌다. 계속 자기가 해야 할 정체성을 확인시켜줬다. 너는 뭘 잘하고 뭘 못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이 선수가 나중에 유명한 선수가 됐다.”

- 스포츠 선수가 아니더라도 대학 강의 등에서 Z세대를 만날 것 같다. Z세대는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어떤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나.

“이들은 무엇이든 근거를 찾는다. 이 세대는 정보기술(IT)을 통해 10초 안에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상벌이 명확하다. 기성세대는 (당장은) 명확하지 않더라도 미래에는 잘될 거다, 도덕적으로 맞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들한테는 안 통한다. 두 번째로 즉각적인 보상이나 피드백이 주어져야 한다. 10년 뒤는 안 된다. 이 두 개를 축으로 해서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가 진행된다. 단, 이들 세대의 최고 단점은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 병원에서 게임 과몰입 치료를 하고 있는데, 게임 중독을 우려하는 부모가 많다.

“나는 게임 과몰입이라고 한다. 게임 중독이 과연 있을까 생각한다. 게임은 잘못된 것의 한 부분인데 눈에 띌 뿐이다. 10년 넘게 게임 과몰입센터를 운영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그냥 ‘게임하지 마’라고 하는 건 근본적 문제를 보지 못하고 아이를 방치하는 것인데, 그걸 게임 중독으로 몰아붙이면 또 한 번의 방치가 이뤄진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줬다면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 문제는 ‘요만큼’이고 다른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다. 실제로 그렇게 치료했을 때 좋아진다.”

-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며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도 우려된다.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

“니체의 인간정신발달론을 보면 세 가지 단계가 있다. 낙타-사자-어린아이의 단계다. ‘낙타한테 왜 사막을 지나가야 하니’라고 물어보면 ‘몰라, 등에 짐이 있으니까, 그리고 사막이 있으니까, 나는 낙타니까 걸어가는 거다’라고 답한다. 아주 단순한 거다. 코로나의 시기는 낙타의 시기다. 왜 자가격리해야 하나, 왜 마스크를 써야 되나.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다. 없는 갈등을 만들어내고 고민하기보다는 단순하게 가는 게 한 방법일 것 같다.”



3대째 ‘의사와 운동’
프로야구팀 심리주치의로 활동


한덕현 교수는 3대째 ‘의사와 운동’이란 핏줄을 이어가고 있다. 조부는 해방 전 이북에서 스케이팅 선수였고, 남쪽으로 내려와 의사자격증을 땄다.

부친은 유도 4단이었고, 현직 정신의학 전문의다. 한 교수도 초등학생 시절 테니스 선수였다. 하지만 초등부 테니스 선수가 드문 시절이라 흥미를 잃어 운동선수의 길을 접었다. 그럼에도 운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의대에 입학한 뒤 아마추어 야구에 빠져들었다. 공중보건의 시절 현대 유니콘스 야구팀의 김용일 코치(현 LG 트윈스 코치)와 인연이 닿은 걸 계기로 미개척 분야인 스포츠 정신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깊이 배우기 위해 2004년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의 심리주치의를 찾아가기도 했다. e메일로 연락한 후 무작정 찾아가 3시간 만에 만날 만큼 열성적이었다. 이후 정식으로 공부할 기회가 왔다. 미국 보건복지국 펠로십 프로그램에 선발돼 하버드대 의대 뇌과학연구소에서 ‘게임의 뇌에 대한 작용과 부작용’을 연구할 때였다. 한 스포츠 심리 포럼에 참여했다가 보스턴대 레너드 자이콥스키의 이름을 들었다. 몇 달에 걸쳐 메일을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하자 직접 자이콥스키를 찾아갔다. 눈이 내리던 날 보스턴대 교정에서 자이콥스키를 기다려 겨우 만났다. 이후 낮에는 하버드대에서, 밤에는 보스턴대에서 공부했다. 자이콥스키에게 배운 스포츠 심리학이 한국에서 스포츠 정신의학을 개척하는 데 든든한 자산이 됐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