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의 밤, 야구의 햄릿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경향신문]
2020 도쿄 올림픽 야구의 마지막은 잘 짜인 비극을 닮았다. 비극의 플롯은 대개 비슷하다. 외부 조건에 흔들리는 주인공의 마음은 갈등에 휘말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벼랑 끝 상황에서 벌어지는 파국. 햄릿의 명 대사.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표팀은 ‘햄릿’이었다.
대표팀은 처음부터 선발이 문제였다. 4경기를 할 수도, 7경기를 할 수도 있는 ‘경우의 수’ 앞에서 ‘양쪽’을 다 고려했다. 선발 숫자를 늘려서, 스윙맨으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 계산은 사실 시작부터 틀렸다. 2시즌째 선발로 뛰는 최원준은 수시로 몸을 푸는 상황에 익숙할 수 없었다. 만약을 염두에 두고 ‘혹시’를 생각했고, 만약과 혹시들이 이리저리 섞이며 ‘역시’로 바뀌었다. 경기 수가 늘어나면서 비극의 조건은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졌다.
두 번의 준결승전에서 아껴뒀던 선발 김민우는 0.1이닝 동안 4실점했다. 가뜩이나 투수가 없는 상황에서 선발 투수의 0.1이닝은 나머지 8.2이닝의 무게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7~9회를 막아야 할 필승조 불펜 투수 고우석이 2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비극의 조건이 완성됐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쓰러지고 말 운명이었다.
타선이 점수를 뽑은 건, 마침 빗속이었다. 안타가 나왔지만 볼넷과 폭투가 더해졌다. 언제나 비극은 파국에 앞서 희망을 보인다. 행운이 따르는 듯한 경기 흐름 속에서 딱 1점차 역전에 머물렀다. 경기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한 방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존과 갑자기 바뀐 공인구의 반발력 등으로 만들어진 ‘저득점 환경’의 야구 스타일이 국제무대에서 단숨에 바뀔 리 없었다.
6회부터 조상우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계였다. 벤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만약’과 ‘혹시’에 기대를 걸었다. 조상우는 ‘혹시’에 해당했고, 8회 오승환은 ‘역시’였다.
오승환이 5점을 주고 무너졌다. 2루타와 홈런을 연달아 맞았다. 역설적이게도, 비극의 극적 요소로는 더할 나위 없는 연출이었다. 한국 야구의 한 세대를 상징하는 1982년생 오승환이, 리그의 모든 문제와 약점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비극적 장치 앞에서,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무너졌다. 7일, 요코하마 야구장의 밤, 돌부처가 무너졌고, 달이 졌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한국 야구의 자부심이었다. 그 훈장을 만들었던 두 주인공이, 극적이게도 비극의 클라이맥스 무대에 섰다.
사실, 13년 동안 지켜 온 건 자부심이 아니라 꿈이었다. 두 번의 WBC에서 이미 확인했지만 그 사이 한 번의 프리미어12의 우연한 승리 때문에 애써 눈감고 있던 현실이었다. 그 꿈이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깨졌다. 한·일전 고우석의 베이스 커버 실수가 ‘희극’에 가까웠다면, 돌부처 오승환의 패배는 분명한 ‘비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에 대해 ‘연민과 공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타르시스는 공감을 통한 지적 정화로 이어진다. 어중간한 패배였다면 또다시 꿈에서 깨지 못했다. 비극을 통한 정화는 재생의 의지와 기회를 가져온다. 8월23일은 야구의날이다. 다시 한번 햄릿.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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