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현 재단법인 학봉장학회 이사장 "한·일 관련 보도상 신설.. 바람직한 관계 구축 응원" [세계초대석]

김청중 2021. 8. 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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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현 학봉장학회 이사장
2005년 선친 이기학 선생과 장학회 설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학봉상 시상
국악꿈나무·장애인 등 대상 장학사업도
"한·일 관계에서 미디어 역할 매우 중요해
팩트 기초한 좋은 보도, 관계 개선 길잡이"
"日, 경제서 한국에 뒤지는 상황 적응 못해
일본인의 한국인 차별 감정에 증오 추가
일본서 한국인 살기가 더 힘들어진 측면
국제무대서 日 비판, 공격 받았다고 생각
20·30대가 한·일 주류 되면 상황 바뀔 것"
이연현 재단법인 학봉장학회 이사장이 10일 최근 어려운 한·일 관계와 2015년부터 시상해 온 학봉상에 언론 보도 부문을 신설한 취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한·일 관계에서 미디어 역할이 중요합니다. 감정적 보도가 아닌 팩트와 데이터에 기초한 좋은 보도가 양국 관계 개선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일 관계 언론보도상을 신설한 이연현 재단법인 학봉장학회 이사장이 10일 말했다. 학봉장학회는 2015년부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함께 시상하는 학봉상에 올해 처음으로 언론보도 부문(8월15∼31일 공모, 상금 대상 1000만원·우수상 500만원)을 제정했다. 한·일 관계를 다룬 보도를 대상으로 하는 상이 만들어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학봉상 운영위는 상에 대해 “바람직한 대일 관계 구축을 위해 양국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대한민국의 중차대한 과제”라며 “한·일 관계에 대한 우수한 보도를 선별해 시상함으로써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학봉장학회는 2005년 이 이사장과 선친 학봉 이기학 선생(2012년 작고)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1928년 전남 화순군 청풍면에서 태어난 선친은 11세 때 도일(渡日)한 뒤 고학으로 명문 메이지(明治)대 법학부를 졸업했으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대기업 합격이 취소되자 와코(和光)물산을 창업해 자수성가한 재일동포 1세 사업가다. 고향 화순(和順)과 광주(光州)의 첫 글자를 따 회사 이름을 지을 정도로 애향심이 남달랐던 부친이 30대부터 고향에 틈틈이 하던 기부활동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장학재단을 세웠다. 학봉장학회는 학봉상 시상 외에 유치원생∼대학생, 국악꿈나무, 노들장애인야학생, 비인가 대안학교생, 외국인 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언론보도 부문을 신설한 이유는.

“한·일 관계가 계속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한·일 관계에서 미디어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책 결정에 여론이 영향을 끼치고 여기에 보도의 역할이 크다. 양국관계를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런데 한·일 모두 부정확하고, 잘못되거나 틀린 내용의 보도가 있다. 길잡이라고 할까, 감정적 내용을 배제하고,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의 보도를 응원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취지다.”

―한·일 관계에 좋은 보도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팩트와 데이터에 기초를 둔 보도다. 네거티브한 보도라도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비판적 보도를 하더라도 정확하게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지적하는 앞날을 내다보는 역할의 보도라고 생각한다. 한·일 관계는 복잡한 측면이 있다.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어 하나의 시각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군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당연히 이 문제들의 근본이 되는 일제강점기 문제도 단순히 일본이 나쁘다는 것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를 단순화하지 않는 팩트에 입각한 보도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도 무산되고 한·일 관계가 어렵다.

“과거와 21세기의 혐한(嫌韓)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표면적 차별은 많이 나아졌다. 확실히 내가 자랄 때는 내 나이 또래가 제대로 일본 대기업에 취직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없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이 좋아졌다. 그렇다면 한국,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 감정, 멸시 감정이 개선됐느냐? 좋아졌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더 살기 힘들어진 면이 있다.”

―예전에 일본 시민단체 집회에서 재일동포 여성이 요즘 목숨의 위험을 느낀다고 발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과장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 정도 위기감을 느낀다는 것인가.

“느낀다.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 감정을 형성하는 내용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한국이 식민지였고, 못살고,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아랫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 좋지 않은 예일 수 있지만 마치 과거에 백인이 흑인을 보는 것과 같은 관점이었다. 현재는 거기에 추가된 것이 있다. 증오다.”

―네?

“미움! 이젠 혐한이라기보다는 증한(憎韓)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살기 더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나빠진 부분이다.”

―배경은.

“구조, 즉 경제구조, 국제구조의 지각변동이다. 한국이 일본을 뒤따라오고 어떤 부분은 앞선 부분도 발생했다. 일본 입장에서 중국이 부상하면서 경제 규모에서 두 배 이상 벌어졌고, 한국에도 뒤지고 있다. 가처분소득이나 최저임금, 급여 수준은 실질적으로 뒤집혔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한국은 뒤따라 잡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일본은 뒤떨어지고 있는 자신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다고 미워하나.

“감정적으로 증오심이 북돋아질 때는 본인이 공격받았다고 느낄 때다. 한국이나 한국인에게 공격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일본인이 많아졌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천황 관련 발언이 있었을 때 일본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되는 계기가 되었다. 천황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인을 매우 감정적으로 만든다. 또 박근혜정부 출범 후 반한 감정이 고조된 것은 일본 측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쓰게구치(告口) 외교(고자질 외교)라는 것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이나 국제사회에 가서 일본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일본 입장에서는 공격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네스코에서의 군함도 문제나, 제3국에서의 소녀상 문제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공격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 우익뿐만 아니라 주로 보통사람들이 그 반작용으로 한국에 대한 네거티브한 감정이 고조되어 그 일부가 증오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단순한 차별이 이젠 증오로 악화한 것인가.

“혐한, 반한보다는 증한이어서 겁난다. 광복 이후 계속된 한국의 반일감정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런 경계심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구조 변화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상황이 형성됐다.”

―해결 방법은.

“해결되려면 구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가장 쉬운 것이 인구변동과 세대교체다. 현재 20, 30대가 한·일 주류가 되면 상항이 바뀔 것이다. 문제는 더 좋아질지, 더 나빠질지는 모른다는 점이다. 두 가지 가능성 모두 있다. 그래서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부채질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학봉상 언론보도 부문 신설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금지 조례를 제정하고 있는데 헤이트 스피치(혐오 표현) 상황은.

“심하다. 유튜브 보면 나오지 않나. 그런 거 보면 디프레스되니(우울해지니) 보고 싶지 않다. 법적 대응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헤이트 스피치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한·일 관계의 한 단면, 부정적 단면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모국 정부에 대한 바람은.

“하하하. 부정적인 것을 너무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엔 일제강점하에 있었으니까 일본의 실체를 어느 정도 직접 이해하는 한국인이 많았다. 이젠 그런 세대는 다 떠나가고 있다. 최근 문제는 일본을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다만 젊은 사람들이 여행으로 왕래하면서 깊이는 얕지만 일본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색안경 끼지 않고 좋은 것은 좋게,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그대로 볼 수 있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는 점이 기대 요인이다.”

―실제 청소년 세대는 일본 콤플렉스가 없는 것 같다.

“일본의 한류 붐은 과거에 상상도 못 했다. 거꾸로 그런 일본 젊은이가 어른이 되면 한·일 관계도 바뀌겠지만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고만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서로 직접 교류하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연현 이사장은 ●1958년 일본 도쿄 출생 ●가나가와(神奈川)현 쇼난(湘南)고교 ●서울대 법대 ●㈜대우 입사 ●㈜대우 일본 오사카지사 차장 ●와코(和光)물산 대표 ●학봉(鶴峰)장학회 이사장

대담=김청중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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