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프리즘] 자가격리 유감

김광수 2021. 8. 1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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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김광수 ㅣ 영남데스크

지난 4월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형준 부산시장의 첫번째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나흘 뒤 부산시 역학조사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간담회 참석자 가운데 확진자가 나왔으니 열흘 동안 자가격리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날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이동경로 등을 취재하다가 막상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얘기를 듣게 돼 당황스러웠다. 자가격리는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날로부터 14일 동안 해야 하는데 나흘 뒤에야 자가격리를 통보받은 것에 의문도 일었지만, 기간이 나흘 단축된 것에 내심 안도가 됐다. 내 마음은 공동체 안전과 자가격리에 따른 불편함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자가격리 기준이 궁금해서 부산시 역학조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확진자와 2m 이내이고 20분 이상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분들”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확진자와 2m 이상 떨어져 있었다. 더구나 나와 비슷한 거리에 있었던 박 시장과 부산시 간부들은 자가격리를 면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40여명 가운데 왜 10여명만 자가격리를 당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자가격리를 당한 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기준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공정한지 묻고 싶다.

방역당국의 매뉴얼을 보면, 역학조사관이 자가격리를 확정하면 기초단체(시·군·구)에서 자가격리자를 관리하는 담당자를 지정한다. 담당자는 자가격리자에게 자가격리통지서와 함께 물품을 전달하고 자가격리 장소 이탈을 24시간 감시하는 앱을 휴대전화에 깔도록 안내하고 이를 확인한다. 물론 이런 절차는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자가격리 중에 확진 판정을 받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이런 매뉴얼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산시 역학조사관으로부터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 사흘째까지 구청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자가격리자들이 거리를 활보해도 누가 알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자가격리를 통보했던 부산시청 역학조사관에게 전화해 “자가격리자를 이렇게 관리해도 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나흘 뒤에야 자가격리통지서와 물품을 받았다. 엎드려 절받기였다.

자가격리를 통보받고 고3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알렸다. 혹시 양성 판정이 나기라도 하면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학생들에 끼칠 피해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아이의 등교 중지를 요구했다. 자가격리를 당한 가족이 있으면 학생의 등교를 금지하는 교육부 매뉴얼이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사실 학부모나 학생이 자가격리를 당한 가족이 있다고 먼저 알리지 않으면 학교는 모른다. 자치단체에서 자가격리를 통보할 때 학생이 있는지 물어서 교육청에 통보하면 되지만, 자치단체는 확진된 학생만 통보해주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날마다 등교하기 전에 체크하는 휴대전화 앱에 자가격리를 당한 가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항목이 있지만 학생들은 무조건 ‘아니요’라고 답하고 넘어간다. 귀차니즘 때문이다. 게다가 대다수 학부모는 자가격리를 당한 가족이 있으면 학생의 등교를 금지하는 교육부 매뉴얼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나의 오지랖 때문에 아이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배우지 않은 시험 범위를 혼자 공부하고 중간고사를 쳐야 했다. 영어 듣기시험은 응시하라는 연락도 못 받았는데 5점 감점 처리됐다. 아이에게 미운털이 박힐까 봐 학교에 항의도 못 하고 냉가슴만 앓았다.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사히 자가격리를 마친 뒤엔 ‘괜히 학교에 알려서…’라며 후회가 되기도 했다.

수시로 주요 부처 장차관 등이 참석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열린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방역 컨트롤타워에서 결정한 사항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는지부터 살펴보기 바란다. 장기간 불편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묵묵히 실천하는 국민은 자치단체와 교육현장에 내려보낸 기본지침부터 잘 실행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 정부를 믿고 따르는 국민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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