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테 스포츠, '최고의 경쟁'에서 배운다 [최의창 교수 기고]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겸 서울대 스포츠진흥원장 2021. 8. 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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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겸 서울대 스포츠진흥원장

타들어 가는 날씨와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로 집콕과 방캉스로 금쪽같은 휴가를 때웠다. 도쿄올림픽 시청이 그나마 유일한 낙이다. 한국 팀의 본격적 대전으로 일희일비하면서 무더위와 코로나를 잠시나마 잊고 있었다. 다 큰 청년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나는 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인생의 큰 교훈 몇 가지를 제대로 배웠다.

국민 대부분은 지난 두어 해 동안 우리 정치판에서 펼쳐지는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 경쟁과 승부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다. 정치인들의 내로남불과 지식인들의 곡학아세가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을 관전하면서 국민 대부분은 고개를 젓다 못해 아예 외면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물어뜯어 쓰러트리는 방식이 정치적 경쟁의 주요 전술임을 적나라하게 목도했다.

모든 경쟁은 나쁜 것인가. ‘경쟁’이란 것이 본래적으로 얼마나 백해무익한지 교육전문가 알피 콘은 ‘경쟁에 반대한다’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경쟁에 찬성한다. 물론, 진정한 경쟁에 한해서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서의 최고의 경쟁으로부터 큰 배움을 얻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멋진 승리와 아름다운 패배로부터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나의 참모습에 대해서 새로운 가르침을 얻는다.

도쿄올림픽에서 펼쳐진 진정한 승부의 모습에서 경쟁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있다. 여자 태권도 65Kg 초과급 이다빈 선수가 결승전에서 패했음에도 세르비아 선수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남자양궁 단체전에서 각각 금, 은, 동 메달을 차지한 한국, 대만, 일본 세 나라 선수들 9명이 친한 친구들처럼 셀카를 찍었다. 페어플레이와 정정당당함이라는 경쟁의 원래 특징을 확인토록 해주었다.

올림픽 경기가 있어서 우리는 경쟁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 경쟁 자체가 본래부터 나쁜 것이 아니라, 지나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전개될 때 나쁜 모습으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이런 경쟁은 ‘악경쟁’(惡競爭) 또는 ‘역경쟁’(逆競爭)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경쟁을 뜻하는 영어단어 ‘competition’의 어원은 ‘com-petere’이다. ‘함께’(com) ‘애쓰다’(petere)는 뜻이다.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같이 최선을 다하는 행위가 경쟁의 본질이다.

고대 올림픽 경기대회를 시작한 그리스인들이 올림픽에서 추구하던 이상적 가치는 ‘아레테’(arete)다. ‘뛰어남’(excellence)과 ‘훌륭함’(virtue)을 모두 담고 있는 단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과 인격적으로 훌륭한 것이 하나임을 나타낸다. 올림픽 우승자는 바로 이 아레테의 화신으로서 인정받았고 그래서 추앙되었다. 패자 또한 뛰어남과 훌륭함을 성취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한 이들로서 존중받았다. 승자와 패자는 적수(敵手)가 아니라 모두 아레테 스포츠의 성취를 위하여 공동의 노력을 경주한 동지(同志)들이다. 선수들은 최고의 스포츠를 찾아서 같은 길 위를 걷는 친구, 즉 도반(道伴)이다.

이 점에는 나는 올림픽 경기를 ‘최고의 경쟁’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 세계 최상 수준의 경기력을 지닌 국가대표들의 맞대결이 펼쳐진다는 의미에서 최고의 경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이라는 인간의 행위가 최선의 멋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드러난다는 뜻에서 최고의 경쟁이다. 전자는 뛰어남으로서의 최고고, 후자는 훌륭함으로서의 최고다. 이러한 아레테 스포츠, 즉 최고의 경쟁에서 무엇인가를 배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뭐라도 배우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패배다.

내가 특히 이번에 배우는 것은 겸손함이다. 당연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지니고, 올림픽 대회에서 이미 여러 번 메달을 따거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을 지닌 선수들이 초반이나 중반에 의외의 패배와 탈락을 목격하면서 자명한 진리를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승리는 영속하지 않고 승자는 영원하지 않다. 나는 평범한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나의 진정한 대적은 밖으로는 상대 선수이며, 안으로는 자기 자신임을 깨닫도록 만든다. 이것이 최고의 경쟁이 나에게 주는 새로운 가르침이요, 깨달음이다.

최고의 경쟁은 궁극적으로 선수 자신으로 하여금 밖의 대적과 안의 대적을 모두 맞닥트리도록 해준다. 상대 선수와의 바깥 대결의 과정이 정정당당하게 진행될 때, 선수 자신의 안쪽 대결은 온전하게 완성된다. 뛰어남과 훌륭함이 멋지게 하나로 합쳐지며 경쟁의 최고 모습이 성취되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 특히 한국 정치와 교육에서 배울 경쟁의 참된 본보기로서 손색이 없다. 권력쟁취와 일등탈취만을 위한 경쟁 속에서 페어플레이는 말라죽고 말뿐이다.

아레테 스포츠의 추구라는 올림픽의 이상은 3천 년 전 아테네에서나 2021년 도쿄에서나 한 치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이상의 성취는 함께 애씀을 통해서, 즉 ‘최고의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런 경쟁에는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이다. 올림픽 경기가 아레테 스포츠를 향하여 함께 노력하는 최고의 경쟁으로 빛나는, 싸움터가 아닌, 배움터가 됐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겸 서울대 스포츠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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