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로 디젤·플라스틱 만들어..인류에 꼭 필요한 혁신 이끌것"
이 교수는 올해 한국인 최초로 영국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으로 선임됐다. 미국과 영연방 국적자를 제외하면 세계 3대 아카데미에 외국인 회원으로 동시에 선정된 세계 유일의 과학자다. 그런 그에게 올해 '포니 정' 혁신상이 수여됐다. 포니정 혁신상은 현대자동차 설립자인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애칭인 포니 정에서 따와 2006년 제정됐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사고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과학 연구에 대한 공로로 포니정 혁신상을 받은 것은 이 교수가 처음이다.
▷과학 관련 다른 상을 받을 때는 사전에 알 수 있는 힌트가 있다. 연구와 관련된 자료 제출 요구가 있든가 총장 추천 등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수상이야말로 '깜짝 수상'이었다.
―'시스템 대사공학' 창시자이기도 한데 시스템 대사공학을 설명한다면.
▷박테리아 같은 살아 있는 세포를 디자인해서 그 세포가 우리가 원하는 화학물질과 식품, 약품 등 여러 물질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스템 대사공학이다. 시스템 대사공학을 이해하려면 대사공학을 먼저 알아야 한다. 대사공학은 박테리아 대사 회로나 유전자를 우리가 인위적으로 조작해 인류를 풍요롭게 하거나 환경을 이롭게 하는 물질을 만드는 학문이다. 하지만 세포를 엔지니어링하는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세포 전체를 먼저 이해하면서 세포가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게 최적화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컴퓨터상에 '가상세포'라는 것을 만들어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세포 특징을 파악하고 세포를 디자인한다.
―시스템 대사공학을 통해 만들어낸 물질들은 뭐가 있는지.
▷흔히 알고 있는 것은 바이오연료다. 특히 바이오에탄올은 이미 많이 만들어져 있고 또 사용되고 있다. 에탄올(C2H6O)은 탄소가 두 개짜리라서 에너지 밀도가 다른 연료에 비해 낮다. 그리고 우리가 술을 희석할 수 있는 것처럼 물과 상극인 다른 연료들과 달리 물과 잘 섞인다. 흡수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연료들처럼 파이프 수송에 어려움이 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탄소가 4개짜리인 부탄올이다. 부탄올이 에탄올에 비해 연료로 활용하기 좋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독성도 있다 보니 세포를 통해 뽑아내기가 어렵지만 우리가 시스템 대사공학을 통해 만들었다. 더 나아가 가솔린을 만들어보는 시도를 했고, 이것이 성공해 네이처 논문에 실렸다. 이후에는 디젤도 상당히 높은 수율로 생산에 성공했다.
―석유 외에도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나.
▷생명체를 유기체라고 부르지 않나. 유기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거다. 유기물 주요 구성물질은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이고, 우리가 밥을 먹으면 아미노산이나 단백질 같은 유기물을 몸속에서 생산해낸다. 대사공학도 마찬가지다. 세포 대사활동을 통해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도전해 본 건 금속과 같은 무기물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원래 생명체는 중금속에 취약하기 때문에 중금속을 먹으면 아프고 병에 걸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명체는 금속 이온이 들어왔을 때 체내에서 반응하지 못하게 환원을 시켜 입자로 만들도록 진화를 했다. 이 입자가 바로 초미세입자인 나노 입자다.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세포를 엔지니어링하면 반도체 나노 입자인 퀀텀닷도 만들 수 있다. 재미삼아 우리 학생들과 원소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원소를 훑어보자고 했고 방사성물질과 귀금속을 빼고는 모두 성공했다.
―연금술이 아닌지, 사실상 모든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물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맞는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질문을 한다.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들어야 하는지다. 일례로 빨간색 식용 색소인 '코치닐'은 연지벌레에서 나온다. 오래 사용돼온 상당히 안전한 물질이기는 하지만 벌레에서 나오는 색소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벌레 단백질로 인해 일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대사공학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들어냈다.
―상용화에서 늘 걸리는 문제는 경제성 아니겠나.
▷이미 일부는 상용화가 됐다. 예를 들면 스판덱스 원료인 '1,4-부탄디올'은 내가 예전에 자문했던 회사에서 공장을 만들어 생산하고 있다. 바이오에탄올도 여러 나라에서 쓰고 있다. 내 제자들이 주축이 돼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2,3-부탄디올 공장을 지었다.
―바이오리파이너리, 세포공장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다만 '원유'라는 시커먼 놈이 워낙 싸기 때문에 아직 전반적으로 바이오 가격경쟁력이 낮다. 지금처럼 쓰면 50여 년 뒤엔 석유는 바닥이 나고, 내 손주의 손주가 태어나면 석유는 사라져 버린다.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미생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바이오연료가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물론이다. 전기차 시대가 오더라도 트럭같이 짐을 나르고 힘을 써야 하는 화물차들은 디젤 같은 액체 연료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선박도 마찬가지다. 선박도 전기로 갈 수는 없다. 꼭 바이오연료를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에너지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가장 환경에 덜 피해를 주는 쪽으로 수렴해 나가야 한다.
―얼마전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 후보물질도 찾아냈는데.
▷신약 개발이 내 연구 분야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3월부터 한국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우리가 대사공학을 할 때 컴퓨터로 효소를 설계한다. 단백질을 디자인해 우리가 원하는 물질과 결합이 잘 이뤄지는지 계속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나와 이 분야를 연구하는 장우대 박사에게 연락을 해서 '우리 환경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지금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리 시뮬레이션 기법을 약물재창출(개발 중이거나 개발된 약물 중에서 코로나19 치료에 활용 가능한 약물을 찾아내는 것)에 활용해보자는 제안이었다. 너무나 고마웠던 게 이 친구가 매일 연구로 밤을 새면서도 선뜻 해보겠다고 하더라. 마침 그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AIST가 함께 만든 코로나 뉴딜사업단이라는 데 신청했더니 선정이 됐다. 그 덕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약물 6218종 중에서 치료 후보물질들을 발견했다.
―이 후보물질이 곧 코로나19 치료제로 활용될 수 있을까.
▷우리가 찾아낸 치료 후보물질 대상으로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세포실험을 거쳐 효과를 확인했지만, 동물시험을 해보니 독성이 강했다. 결론은 효과는 있지만 독성이 강해 치료제로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과정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가상 스크리닝 기술은 위양성이 상당히 높았다. 위양성이라는 게 사실은 효과가 없는데 효과가 있다고 나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스크리닝 전후에 구조 유사도 분석, 상호작용 유사도 분석 등 알고리즘을 개발해 추가했고 이를 통해 위양성을 크게 낮췄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해도 이 기술을 적용해 더 빨리 효과적으로 후보물질을 찾을 수 있다.
―신약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면 언제쯤 나올 것인가.
▷(웃음) 특허를 반쯤은 쓴 상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언제라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연구란 마무리가 될 때까지 결과가 나올지, 안 나올지에 대해 확답할 수 없는데 '언제 나온다'는 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 교수는…
△1964년 서울 출생 △1986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87년 노스웨스턴대 석사 △1991년 노스웨스턴대 박사 △2000년 미국화학회 엘머 게이든상 △2002년 KAIST 생명공학과 교수 △2006년 올해의 과학인상 △2007년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2008년 KAIST 생명기술대학 학장 △2008년 머크 대사공학상 △2010년 미국 공학한림원 외국인 회원 △2012년 미국화학회 마빈 존슨상 △2013년 암젠 생명화학공학상 △2013년 KAIST 연구원장 △2013년 세계과학학술원 펠로 △2015년 제50회 발명의날 홍조근정훈장 △2016년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미래위원회 생명공학위원회 공동의장 △2016년 제임스 베일리상 △2018년 에니상 △2021년 영국 왕립학회 회원 △2021년 찰스 스콧상
[이새봄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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