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전염병' 돌고있는 나이지리아.."학교가 '납치 지옥'이 됐다"
[경향신문]
나이지리아에선 ‘납치 전염병(kidnap epidemic)’이란 말이 돌고 있다. 전염병의 무대는 다름 아닌 학교다. 현재 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납치된 상태이며, 올해에만 학생 1000명 이상이 납치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치안 부재 속에 학생들을 겨냥한 납치가 활개를 치면서 조혼 관행과 높은 아동 문맹률이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 대부분이 납치 갱단의 주 무대다. 지난달 5일 나이지리아 북부 카두나주의 베델 침례교 고등학교에 무장괴한들이 침입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던 학생 128명가량을 납치했다. 피해 학생 28명은 지난주 납치범들이 요구하는 몸값을 내고 풀려났고, 다른 6명은 도망쳤으며 나머지 87명은 여전히 억류돼 있다.
나이지리아 내 학생 납치 문제는 7년 전부터 문제로 떠올랐다. 2014년 4월 치보크의 한 기숙학교에서 여학생 276명이 무장세력인 보코하람에 납치됐고, 당시 이 사건의 파장으로 ‘#우리 딸들을 돌려줘’라는 해시태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져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무장세력이 학교에 침입해 학생들을 납치하고 몸값을 요구하는 일은 그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무장세력은 지난해 12월11일 나이지리아 북부 카치나주의 중학교에 침입해 3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납치했고, 지난 3월2일에는 나이지리아 서북부 잠파라주에서 300명 이상의 여학생들을 인질로 데려갔다. 이는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학생 납치 주요 사건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며 피해 학생들은 2~3세 영아부터 대학생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있다고 BBC는 전했다.
나이지리아의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가 학생 집단 납치를 ‘수익성 있는 범죄’로 만든 것으로 분석된다. 나이지리아 중부와 북서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납치범들은 가축 사육과 유목 생활에 뿌리를 둔 민족집단인 풀라니족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기후 위기의 영향으로 방목지가 사유지가 되거나 그 규모가 대폭 줄어들면서 이들과 농민들 간의 갈등이 첨예화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풀라니족 젊은층이 납치 범죄에 가담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몸값을 요구하고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북동부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반군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하면서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치명적인 안보 위기로 부상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무기력한 정부도 문제를 키운 원인이다. 정부는 무장세력과의 협상을 거부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교육부 장관은 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무장세력에 재무장 권한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납치범과의 협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납치 사건이 발생한 주정부들도 무장세력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앞서 나이지리아 공군은 지난달 북서부의 잠파라주에서 공군기가 격추됐다고 밝혔다. 이는 해당 지역 내 무장단체의 전투력이 강해졌으며, 일부는 지하디스트와 동맹을 맺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피해자 가족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게 됐다. 단보예 베게는 지난달 베델 침례교 고등학교 학생인 딸 루이즈가 무장세력에 납치되자 납치범이 요구한 몸값을 내기 위해 “집과 땅, 모든 것을 팔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카두나주에 있는 그린필드대학에서 납치된 23명 가운데 한 명인 학생 함자 나시루(25)의 가족 아마드 이드리스는 “납치범들은 석방을 원하면 8억나이라(22억원)를 내라고 요구했다. 한달에 5만나이라(13만8700원)를 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큰 도움 없이 어떻게 그 돈을 찾을 수 있겠나”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나이지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성인 인구의 4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학생 집단 납치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학교 교육 기피로 이어져 이 지역의 조혼 관행과 높은 아동 문맹률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중부와 북부 지역에서 1500개 이상의 학교가 치안 우려로 문을 닫았다. 지역에서 범죄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지난달 베델 침례교 고등학교에서 납치된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고 있는 레베카 불루스는 “나라에 평화가 있어야 교육이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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