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훈련 시작한 날, 남쪽과 통화 거부한 북

이제훈 2021. 8. 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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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통신선 복구 2주만에 연락 두절
단절 장기화 이어질지는 미지수
김여정 "남조선 배신 처사 유감"
"위임 따라 발표" 김정은 뜻 강조
한국과 미국 양국 군이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 사전연습을 시작하고,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이를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한 10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남과 북의 군초소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미 군 당국의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의 사전연습이 시작된 10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담화를 발표한 뒤, 남북 직통연락선의 오후 ‘마감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북은 담화 내용을 일반에도 공개한 것으로 확인돼 경우에 따라선 ‘궐기·규탄 집회’는 물론 ‘직통연락선의 재단절’ 등 강경한 대남 대응이 이뤄질 수도 있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날 오전 8시2분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발표한 ‘담화’에서 이번 훈련은 “우리 국가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며 우리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조선반도의 정세를 보다 위태롭게 만드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한 뒤,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 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반기 한반도 정세를 가를 ‘분수령’이라 여겨져 온 한-미 연합군사연습은 사전연습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이 10~13일, 본훈련인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21-2 CCPT)은 16~26일 진행된다.

이 담화가 나온 뒤 북은 오후에 이뤄지는 군통신선을 포함한 남북 직통연락선 ‘마감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직통연락선 개시·마감 통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 소통을 토대로 ‘단절’ 413일 만인 지난달 27일 통신선이 복구된 뒤 처음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쪽이 오후 마감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관련한 북쪽의 별도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로선 ‘마감 통화’에 북쪽이 응하지 않은 ‘기술적 불통’ 상황이고, 이를 넘어선 ‘직통연락선 단절 장기화’ 여부는 판단하기 이르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한·미 양국을 모두 겨냥했지만, 분량과 초점 모두에서 비판의 화살을 미국 쪽에 돌렸다. 훈련이 연기·취소되지 않고 규모를 대폭 줄여 진행되게 된 데에 한국보다 미국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으리라는 판단이 깔린 듯하다. 김 부부장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떠들어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우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이미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 철회”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라며, “앞으로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밝힌 대미 노선을 재확인한 셈이다. 김 부부장은 담화 말미에 “나는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고 밝혀, 이번 담화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의중을 담은 것이자 “북한 당국의 정리된 방침”(통일부 당국자)임을 강조했다.

이에 비해 대남 비판은 분량과 표현 양쪽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절제’됐다. “배신적인 처사”의 주체를 복수형인 “남조선 당국자들”이라고 적어,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서 소통’으로 남북 직통연락선 복원에 합의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비판하는 외양은 피했다. 이는 김 부부장이 지난 3월30일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라며 “후안무치” “철면피” 따위 감정 섞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한 사실과 대비된다.

김 부부장 담화는 애초 대외용 매체인 <중통>으로만 발표되고 이날치 <노동신문>에는 실리지 않았고, 발표 한 시간 뒤에 이뤄진 직통연락선 ‘개시 통화’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오후에 들어서면서였다. 김 부부장의 담화가 일반 인민도 볼 수 있는 <조선중앙텔레비전>과 <조선중앙방송>(라디오방송)으로도 보도된데 이어, 군통신선을 포함한 남북 직통연락선의 ‘마감 통화’가 불발됐다. 북의 후속 ‘행동’ 여부가 우려된다.

북의 앞으로 대응과 관련해 담화에서 가장 눈길을 잡아 끄는 대목은 “우리를 반대하는 어떤 군사적 행동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국가방위력과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을 강화해나가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미국이 끝내 제재 완화와 한-미 연합훈련 중지 등 ‘적대시 정책 철회’와 관련한 우호적 실행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 전략적 군사행동으로 장기 교착 국면의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다만, 당장 ‘행동’에 나서겠다는 분위기는 풍기지 않았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방사포 등 저강도 군사 행동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김 부부장은 또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 연합훈련의 뿌리를 주한미군에서 찾고는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 무력과 전쟁 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1월 당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열거한 “첨단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 중지에 더해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한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북한의 향후 대응 등을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일 김여정 담화를 통해 공개한 훈련에 반대한다는) 북쪽의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힌 것으로 본다”며 “예단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나가고자 한다”는 ‘정부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도 “사안이 중차대한 만큼 서훈 안보실장이 문 대통령한테 직접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북한의 특이 움직임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길윤형 이완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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