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급 세터가 필요하다 [김세훈의 스포츠IN]

김세훈 기자 2021. 8. 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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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김연경이 브라질과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4강전에서 스파이크를 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는 투수 놀음,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고 한다. 투수가 훌륭할수록, 세터가 출중할수록 이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투수와 세터는 몸값이 비싸다. 미국프로풋볼(NFL)에서는 쿼터백 연봉이 가장 높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가드 연봉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많다. 축구에서 중앙 미드필더 연봉이 다른 포지션 선수들에 비해 높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투수, 세터, 쿼터백, 중앙 미드필더, 가드가 가진 공통점이 무엇일까. 다른 포지션보다 공을 소유하고 터치하는 시간과 횟수가 가장 많다. 이들의 패스, 투구, 토스 하나에 결정적인 찬스가 생긴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경기 도중 가장 많이 볼을 간직하는 동시에, 승패를 결정짓는 사령관이자 플레이메이커다.

배구 세터 이야기를 해보겠다. 주 임무는 공격수에게 볼을 토스하는 것이다. 토스가 얼마나 정확하냐, 빠르냐가 득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블로커를 완전히 속이는 토스는 득점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터가 가져야 할 능력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물론 토스 능력이다. 좋지 않은 리시브, 디그를 좋은 토스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언더 토스, 오버 토스, 원 핸드 토스, 백 토스 등 다양한 토스를 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토스를 높게, 공격수 키에 맞춰 올려주는 것만으로 토스 능력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최상급 토스는 어떤 것일까. 그건 한마디로 말해 블로커를 완벽히 따돌리는 토스다. 토스가 아무리 높고 공격수 앞에 정확하게 올려준다고 해도 상대 블로커 2, 3명이 가로막는다면 공격 성공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상대 블로커를 완벽하게 따돌리면서도 낮고 빠르게, 거기에 공격수 취향과 플레이 스타일에 맞게 올려주는 토스는 만점짜리다. 우리 공격이 상대적으로 약할수록, 우리 공격이 한두 명에게 집중될수록, 상대 팀이 장신일수록 출중한 세터를 보유하지 않고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세터도 물론 키가 클수록 좋다. 키가 크면 높은 위치에서 토스를 낮고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킹에도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키보다 중요한 것은 스피드다. 발도 빠르고 동작도 빠르며 손도 날래야 한다. 키가 크면 상대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터들은 대체로 팀 내에서 중간 키 정도인 경우가 많다.

다소 전문적인 영역이지만, 세터는 오른눈이 주시안(主視眼·Dominant eye)이면서도 왼손잡이가 유리하다. 세터들은 토스할 때 네트를 오른쪽에 두고 한다. 레프트 공격 위치를 정면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왼손잡이에 비해 오른손잡이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리고 오른손잡이들은 라이트보다는 레프트 공격을 할 때 시야와 스파이크 각이 넓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네트를 자기 오른쪽에 둬야 하는 세터로서는 오른눈이 좋아야하는 게 거의 절대 조건이다. 오른눈으로 상대 블로커 위치, 코트에서 빈 곳을 순간적으로 살피면서 토스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상첨화인 능력이 하나 더 있다. 그게 바로 왼손 스파이크 능력이다. 왼손 스파이크가 가능한 세터는 2단 공격을 할 유리하다. 토스하는 척하면서 몸을 별로 돌리지 않고 스파이크로 바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왼손 스파이크를 때리지 못하는 세터가 순간적으로 2단 공격을 하려면 몸을 거의 90도까지 돌려야만 오른손으로 스파이크를 때릴 수 있다. 공격 타이밍이 늦고 동작이 커서 상대에게 읽히기 쉬운 건 당연하다. 이런 세터가 할 수 있는 순간적인 2단 공격은 밀어넣기 정도다.

한국여자배구 선수들이 도쿄올림픽 동메달결정전에서 세르비아 공격을 블로킹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구 마니아들은 경기를 관전할 때 중앙에서 하지 않는다. 양쪽 끝에서, 축구로 비유하면 골대 뒤에서 본다. 이유는 세터가 상대 블로커를 따돌리면서 토스하는 걸 똑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터가 블로킹을 따돌리면서 공격수에게 토스하고 그 토스를 공격수가 빈 곳에 꽂아 넣는 그림은 배구에서 최고 백미다.

우리나라 여자배구는 도쿄올림픽에서 4위에 올랐다. 4위는 예상 밖으로 아주 좋은 성적이다. 우리는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3·4위전에서 세르비아에 패했다. 두 팀 모두 우리보다 키가 컸고 기술도 좋았으며 세터도 뛰어났다. 한국은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공격 루트도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그걸 극복하고 상대를 이기려면 끈질긴 수비, 뛰어난 조직력과 함께 훌륭한 세터가 있어야 한다. 출중한 세터는 수준 높은 배구를 하기 위한 절대 조건이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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