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정점에서 펼친..마지막 불국사 설경"

전지현 2021. 8. 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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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대가 박대성 개인전 '靜觀自得'
1996년 기적같이 설경 포착
유연하고 포용력 큰 작품펼쳐
내년 미국 순회 전시 앞두고
'불국 설경' 등 70점 선보여
유년 시절 왼손 잃었지만
"불편을 극복하는 노력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다"
한때 이건희 회장 전속화가
"큰 언덕 덕분에 비바람 피해"
박대성 `불국 설경`. [사진 제공 = 가나아트센터]
이 무더위에 설경을 보니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흰 눈이 소복소복 내려앉은 경주 불국사와 소나무들이 이룬 절경이 가로 4.4m에 세로 1.99m 대형 화면 '불국 설경'에 펼쳐져 있었다. 서울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靜觀自得(정관자득·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에서 한국화 대가 박대성(76)의 필력과 화면 크기에 압도됐다.

박 화백은 "마지막으로 불국사 설경을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그렸다"며 "이런 대작을 하기에 힘든 나이가 됐고, 화가 인생 정점에서 최대한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불국사 설경은 1996년 '기적'처럼 처음 그리게 됐다. 불국사에서 1년 머물던 시절에 눈을 기원하며 잠든 다음날 새벽에 극적으로 눈이 와서 스케치북에 담을 수 있었으며, 그 후로 설경을 보지 못했다. 박 화백은 "하늘이 도우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1995년 현대미술을 공부하러 미국 뉴욕에 갔다가 '진정한 현대미술은 한국 고전과 내 안에 있다'고 깨달은 직후 불국사로 향했다.

"중국과 인도를 가봤지만 불국사만큼 아름다운 사찰을 보지 못했어요. 석가모니가 용(龍)등에 올라타고 동해로 가는 형국을 건축으로 풀어낸 명품이죠. 동서로 길게 놓인 석축이 굉장히 직선적이고 모던해요. 이것이 진정한 현대미술이라고 생각해요. 네모난 돌을 연결한 모습이 마치 한국 추상화 거장 김환기 전면 점화 같습니다."

마지막 '불국 설경'이지만 판매용으로 내놨다. 2015년 그의 대표작 830점을 경주 솔거미술관에 기증했기에 더 간직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박 화백은 "죽어서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이번 개인전에 비매품은 없다"고 말했다.

회화 70점을 펼친 이번 전시 수익금은 내년 미국 순회 전시 경비에 보탤 예정이다. 내년 7월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인전을 연 후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메리워싱턴대로 전시가 이어진다.

박 화백은 "코로나19 시국에 미국 순회 전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 부모를 여의고 왼손을 잃은 그가 시련에 무릎 꿇지 않고 이뤄낸 한국 전통 수묵화의 현대화는 경이롭다. 긍정과 노력이 위대한 예술의 밑거름이었다. 그는 "없는 왼손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화가 인생 최대 고비는 오히려 그만의 작품 세계를 찾는 데서 왔다.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문자를 쓰면서 답을 얻었지만 아직 더 찾고 있다고 한다. "한자는 그림에서 글씨가 나온 상형문자예요. 매일 2시간 서예를 하면 운필(運筆) 내공이 생기고, 글씨 조형미를 그림에 활용할 수 있죠. 우리 민족의 독특한 조형의식을 더 표현하고 싶어요."

물줄기가 곧고 강한 그림 '백두폭포'와 '구룡폭포'를 보면 대쪽 같은 성품 같지만, 물고기 시선으로 세상을 본 작품 '금수강산'에선 유연한 사고가 엿보인다. 지난 3월 솔거미술관에서 그의 전시작을 훼손한 어린이를 너그럽게 용서했을 정도로 포용력이 크다. 박 화백은 "그 아이 때문에 전시가 널리 알려졌으니 내게는 봉황"이라고 말했다.

수도(修道) 자세로 그림을 그려온 그의 작품 3점이 최근 전남도립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1980년대 초 4년간 이 회장에게 월급을 받는 전속 화가로 일하면서 그분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 봤을 때 나한테 '존경한다'고 하시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강도도 1~2% 들어가면 존경한다'고 답하시더군요. 큰 사람 큰 언덕 덕분에 비바람을 피하고 잘살아왔죠." 전시는 23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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