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종목은 올림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쿄#2021]

도쿄|이용균 기자 2021. 8. 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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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지난 30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kg 이상급 16강전에서 하라사와 히사요기(일본)에 패한 김민종이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무도관, ‘부도칸’으로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잘 꾸며진 기타노마루 공원 길을 지나면, 팔각지붕에 금색 머리를 얹은 건물이 커다란 나무 사이에 앉아 있었다. ‘일본 유도의 성지’라고 불린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유도 종목 경기장으로 지어졌다. 정치인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 “세계에 자랑하는 무술의 명예를 도쿄 중앙에 건설하여 무도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도가에게 ‘부도칸’에서 경기를 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영예다. ‘미녀 유도선수’로 알려진 우크라이나의 다리아 빌로디드는 결승 진출 실패 뒤 크게 아쉬워했지만 동메달을 딴 다음 “유도가들의 꿈인 부도칸의 다다미 경기장에서 뛸 수 있어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유도가의 진심이 느껴졌다. 유도 대표팀의 안창림과 조구함 모두 “부도칸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유도의 성지에서 일본 라이벌을 꺾겠다는 각오였다.

1987년 일본 무도 협회는 ‘무도 헌장’을 만들었다. 제1조 목적은 ‘무술 무예에 의한 심신 단련을 통해 인격을 닦고 식견을 높여 유능한 인물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무도란,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격을 닦는 수단이고, 이를 통해 유능한 인물을 육성하는 것이다. ‘부도칸’은 이를 위한 성지다. 일본은 이번 대회 유도에 걸린 금메달 15개 중 9개를 쓸어갔다.

그런데, 유도는 정말 올림픽에 적합한 종목일까. 유도 뿐만 아니라 태권도, 레슬링, 복싱, 가라테 등 맨몸 격투 종목은 정말 올림픽에 적합할까.

올림픽 스포츠는 점점 더 TV 중계에 최적화되고 있다. 판정시비를 없애기 위해 점수제를 도입했고, 비디오 판독이 시행된다. 무술 혹은 격투기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스포츠로서의 격투기는 승패가 ‘점수’로 환산된다. 유도와 태권도, 복싱 모두 ‘무도’가 담긴 기술이 아니라 점수를 따기 위한 기술이 유리하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공격 보다는 수비가 우선된다. 실력이 팽팽할수록 연장전이 펼쳐졌고, 스포츠로서의 재미가 되려 줄었다. 팬들이 언제 환호하고 언제 박수를 쳐야 할 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서핑과 스케이트 보드, 스포츠 클라이밍이 정식 종목이 됐다. 모두 ‘익스트림 스포츠’다. ‘물’ 또는 ‘높이’가 주는 공포감을 바탕으로 아찔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손에 땀이 난다. 서채현의 리드 종목 거침없는 등반은 보는 내내 감탄과 조마조마함을 모두 느끼게 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이들 세 종목에 ‘브레이킹’ 종목이 더해진다. 브레이킹 댄스의 화려한 기술은 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짜릿함과 UFC가 날것 그대로의 ‘싸움’을 보여주는 시대, 태권도, 유도, 레슬링, 복싱 등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부도칸이 상징하는 ‘무도’는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유도와 태권도는 과연 스케이트 보드 보다, 스포츠 클라이밍 보다 ‘인격’을 더 많이 높여줄 수 있을까. 기타노마루 공원에는 매미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지금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도쿄|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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