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세계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쿠키런: 킹덤' 스토리 아티스트에게 물었다 [이유진의 겜it슈]

이유진 기자 2021. 8. 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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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쿠키런: 킹덤’은 용감한 쿠키(가운데)를 중심으로 마녀의 오븐에서 탈출한 쿠키들이 모험을 떠나 왕국을 건설하는 이야기를 담은 캐릭터 수집형 역할수행게임이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게임사 데브시스터즈가 지난 1월 출시한 ‘쿠키런: 킹덤’(쿠킹덤)은 쿠키들과 함께 모험과 전투를 펼치고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캐릭터 수집형 역할수행게임(RPG)이다. ‘쿠키런 포 카카오’(2013), ‘라인 쿠키런’(2014), ‘쿠키런: 오븐브레이크’(2016) 등 전작에서 확대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다. 고대 쿠키 문명과 어둠의 시대를 거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기까지의 방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시리즈 최초로 성우를 기용했고, 이들이 부른 OST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10일 현재 300만회를 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쿠키들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2차 창작물이 넘쳐난다.

쿠킹덤이 대박이 나면서 데브시스터즈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75% 증가한 105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반기엔 미국, 일본, 유럽 시장 진출을 할 예정이다. 잘 키운 게임 IP(지적재산) 하나가 열 게임 부럽지 않은 시대다. 잘 나가는 IP 뒤엔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세계관이 존재한다. 쿠킹덤 세계관은 4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이가연 데브시스터즈 스토리 아티스트에게 그의 직업과 세계관 창작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국문학도, 게임 세계에 빠지다

2017년 데브시스터즈에 입사한 이가연 스토리 아티스트는 ‘쿠키런: 킹덤’ 내 세계관 개발을 담당한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 스토리 아티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매달 업데이트에 필요한 쿠키 설명 문구와 대사, 각종 아이템 네이밍·설명 등 게임 내 텍스트가 필요한 모든 부분을 작업하고 있어요. 크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쿠키런 세계관과 IP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이 직업을 갖게 된 계기는요.

“원래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하기 직전 게임에 빠져서 졸업 논문 주제를 게임으로 정했을 정도였어요. 그 길로 자연스럽게 게임 스토리 아티스트라는 직무를 꿈꾸게 됐죠. 2017년 데브시스터즈에 입사했고, 쿠키런 오븐브레이크 스토리 담당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 게임 스토리가 갖는 차별점은 뭘까요.

“게임 시나리오는 일반 산문, 희곡, 드라마 대본과 분명히 구별되는 점이 있어요. 퀘스트와 함께 시나리오가 전개되기 때문에 각 씬의 처음과 끝을 퀘스트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야 하고요. 다음 퀘스트를 진행하고 싶도록 충분한 동기 부여도 해야 합니다. 특히 쿠키런 시리즈에서는 쿠키들이 사용하는 말투나 문장에서 고유의 귀여운 ‘맛’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단어의 느낌이나 문장의 리듬감을 많이 신경쓰고 있습니다.”

영웅쿠키인 퓨어바닐라 쿠키가 ‘언제나 처음처럼 바삭하기를…“이라는 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 직업으로 인한 습관이 있나요.

“카페에 놀러가면 디저트의 이름이나 종류를 유심히 관찰하게 돼요.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또 습관처럼 일상 생활에서 쓰는 표현들을 쿠키 세계에 맞게 바꿔보기도 합니다. ‘인간적’이라는 말을 변형한 ‘쿠키적’이라는 표현도 그렇게 나오게 됐고요. 축복을 염원하는 기도문이 쿠키 세계에서는 ‘언제나 처음처럼 바삭하기를…’과 같이 표현되는 것도 그 예시입니다. 쿠키 세계에서는 갓 구워졌을 때의 바삭함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과 행복의 척도거든요.”

- 직업 만족도는 어떤가요.

“게임 자체가 아기자기하고 재치가 있어 귀여운 걸 잔뜩 볼 수 있는 점이 우선 좋습니다. 유저분들에게 계속해서 재미있는 놀거리를 만들어드려야 한다는 점에선 치열한 고민과 도전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한데요. 미지의 세계로 즐거움을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러한 인간 본질에 가장 가까운 ‘재미’라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4년의 개발, 쿠키왕국의 탄생

‘쿠키런: 킹덤’ 제작진이 게임 속 세계관 지도인 ‘어썸브레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사진. 데브시스터즈 제공
‘어썸브레드’는 대륙 전체가 거대한 쿠키의 형태를 띄고 있다. ‘쿠키런: 킹덤’ 뿐만 아니라 전작에 등장하는 지역도 묘사돼 있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 전작에 비해 세계관이 더 확장됐어요.

“이전에는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마녀의 오븐을 탈출해 도망가는 쿠키들의 이야기만 있었습니다. 탈출하는 쿠키들이 점점 많아지다보니 이들은 어디를 향해 달리는 것일까 궁금해졌어요. 먹히는 운명을 거부하고 뛰쳐나온만큼, 추구하는 자유나 이상향이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마녀의 손길이 더이상 닿지 않는,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찾아 달리는 게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기존의 쿠키런 시리즈에서 몇몇 왕국을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최소 두 개 이상의 왕국이 있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했어요. 더불어 왕국이라는 소재와 연관이 깊은 ’건국 영웅들’에 대한 설정도 생겨났고, 이렇게 해서 퓨어바닐라 쿠키 등을 대표로 하는 고대 영웅 쿠키 스토리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 세계관을 담은 역사서만 300쪽이 넘는다고요.

“팀에서는 ‘바이블’이라고 부르는데요. 그 명칭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쿠키의 탄생, 역사, 왕국, 왕국의 식생, 동물과 식물들, 문화, 예술 등 정말 많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설정을 총망라하게 된 계기는 저희 개발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어요. 기본적으로 RPG 장르는 아주 넓은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큰 규모의 세계를 다루기 위해 작업자들이 먼저 몰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저희들도 바이블을 만들면서 쿠키가 누구인지, 쿠키 세계는 어떻게 생겼는지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었어요. 작업이 끝나고 비로소 저희가 어떤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인 팀인지 확실히 깨달았어요.”

바이블(역사서) 한 페이지. 바닐라 왕국의 자연환경에 대한 설명이 쓰여졌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쿠키들이 먹고 사는 음식에 대한 설명도 바이블에 상세히 담겼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 바이블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세인트릴리 쿠키를 만들 때가 기억에 남아요. 백합을 재료로 만든 쿠키인데 알고보니 백합에 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반전의 요소에 힘입어 악당 우두머리인 어둠마녀 쿠키의 과거 모습이 세인트릴리 쿠키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어요. 세인트릴리 쿠키는 마녀들의 연회에 숨어들었다가 그곳에서 마녀가 쿠키를 먹는 장면을 봐요. 이후 분노와 증오에 가득 찬 어둠마녀 쿠키로 재탄생하게 되죠. 여러가지 설정이 정말 빠르게 만들어졌어요. 회의에서 나오는 의견들이 전부 기발하고 재미있어서 박수를 치며 신나게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에게 남은 과제는 딱 하나, 마지막 반전을 위해 세인트릴리 쿠키가 어둠마녀 쿠키와 동일 쿠키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었는데요. 세인트릴리 쿠키가 덜 수상하게 보이게끔 표정을 몇 번이나 순화시켰습니다. 원래는 훨씬 수상한 얼굴이었어요.(웃음)”

쿠키가 만들어진 이유를 찾고 있던 세인트릴리 쿠키는 마녀가 쿠키를 먹는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세인트릴리 쿠키는 이후 ‘흑화’해 악당 우두머리인 어둠마녀 쿠키로 재탄생한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 성우들 인기도 대단해요. 캐스팅과 디렉팅에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은요.

“쿠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은 처음이라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모두가 상상하는 목소리 중에서도 최적의 목소리를 찾아내서, 기존의 캐릭터성을 증폭시키고 쿠키를 더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좋은 목소리와 훌륭한 연기 실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 정말 많아서 캐스팅은 수월히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담당 성우분들께는 최대한 자세하면서도 어렵지 않고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끔 캐릭터를 설명드렸는데요.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쿠키가 귀엽다며 호감을 갖고 연기해 주셔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쿠키문명의 대부흥기를 이끌던 5명의 고대 영웅 쿠키들. 데브시스터즈 제공


- 8년 넘게 세계관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요.

“항상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슬로건이 있습니다. ‘모든 쿠키는 사랑스러운 존재다’가 바로 그것인데요. 아무리 악역을 맡은 쿠키라도 이해되는 구석이 있거나 동정하게 되기도 하고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각각의 사연이 있거든요. 이 복잡하고도 다양한 면을 가진 쿠키들을 만들기 위해 저희 내부에서도 정말 다양한 분들과 논의를 거칩니다. 다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작업자분들과도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색다른 시선이 개입될 때도 있고, 이는 결국 더욱 풍부한 세계관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쿠키런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앞을 보고 계속 달려나가는 쿠키들처럼 한계가 없는, 일종의 개방성이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마찬가지로 아이디어에 한계를 두지 않고 모두 존중하며 의견을 주고 받는 점이 쿠키런의 원동력이자 생명력이 됐던 것 같습니다.”

■쿠키, 게임 넘어 엔터로 질주하다

퓨어바닐라 쿠키(왼쪽)와 민트초코 쿠키를 의인화 시킨 ‘쿠키런: 킹덤’ 팬아트. 쿠킹덤 공식 트위터 캡쳐


- 2차 창작물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퀄리티의 팬아트를 그려주시는 분도 계시고, 배우고 싶은 열망과 특유의 센스를 발휘해 글이나 만화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전부 찾아가서 표현을 하진 못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해 하고 있고 실제로 팬이 되기도 한답니다. 그분들의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더 재밌고 공감할 수 있고, 창작하고 싶은 욕구가 불타오르는 그런 스토리를 제공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초맛 쿠키는 사신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 데브시스터즈제공


- 혹시 자신만의 애착 쿠키가 있나요.

“모두 다 소중하고 귀여운 쿠키들이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더 애정을 느끼는 캐릭터는 감초맛 쿠키입니다. 전형적인 악당에, 생긴 건 사신처럼 생겼는데, 속으로는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스트레스는 일기에 푸는 소시민적인 캐릭터죠.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하루하루 살고 있는 모습이 우리 회사원들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이가연 스토리 아티스트는 “각자의 개성과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쿠키들은 인간을 작게 투영시킨 존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데브시스터즈 제공


- 스토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쿠키 세계에선 쿠키를 먹는 존재가 인간이고, 곧 인간은 쿠키의 적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개성과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쿠키들은 사실 인간을 작게 투영시킨 존재이기도 합니다. 쿠키는 누가봐도 강한 존재는 아닙니다. 덜 구우면 물러지고, 많이 구우면 타버리고, 떨어지면 부서지고, 물에 닿으면 눅눅해지고. 쿠키가 살아가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하지만 이런 쿠키들도 다들 자신만의 믿음과 꿈과 욕구를 좇아 살고 있어요. 용감한 쿠키는 자유를 찾아 달리고, 마법사맛 쿠키는 마법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하고, 칠리맛 쿠키는 횡재를 노리고, 블랙레이즌맛 쿠키는 자기 마을을 지키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맛과 색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쿠키들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들을 대변하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달려나가고 모험하는 이들의 모습이 때로는 웃음이, 때로는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쿠키도 하는데, 너도 할 수 있어’라고요.”

-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한국 외에 미국, 일본 등 더 많은 국가에서 보다 적극적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고요. 많은 분들이 애정을 보내주신 덕분에 게임이라는 플랫폼을 넘어 더욱 접근성이 좋은 수단으로 찾아갈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쿠키 자체가 신나고 재밌는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븐을 탈출해 왕국에 정착한 쿠키들의 모험이 앞으로 어떻게 더 펼쳐질지 많이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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