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한낮 폭염 식히는 수동주간복사냉각
한 달 가까이 이어지던 폭염의 기세가 지난주 입추(立秋)를 맞아 한풀 꺾였다. 낮에는 여전히 덥지만 열대야가 사라져 지내기가 한결 낫다. 이렇게 올여름도 가는가 보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걱정이다.
폭염 기간 동안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어 지난 7월 석탄 화력 발전소의 평균 가동률이 90%를 넘었다. 폭염이 절정이던 27일은 전국 화력 발전소 58곳 가운데 설비 공사 중인 한 곳을 뺀 57곳이 가동하기도 했다. 온실가스는 물론 미세먼지까지 내뿜은 석탄 사용이 줄기는커녕 되레 늘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석탄 발전을 퇴출시키고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율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하는데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 환경 파괴가 걱정이다. 현재 기술로는 답이 없고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 출산율 추세라면 2050년 인구가 3000만 명대로 떨어질 거라 걱정이라는데, 에너지 수요 감소라는 측면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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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의 창 영역 내보내
학술지 ‘사이언스’ 8월 6일자에는 이런 우울한 현실에 약간의 위안을 주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수동주간복사냉각(passive daytime radiation cooling) 기술을 적용한 천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 천으로 만든 옷을 입거나 물체에 두르면 주변보다 온도를 몇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수동’은 ‘능동’보다 부정적인 어감을 주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여기서 ‘수동’이란 온도를 낮추기 위해 에너지를 따로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옷을 입거나 천을 걸치기만 하면 알아서 온도가 낮아진다는 말이다.
복사냉각은 들어오는 복사에너지보다 나가는 복사에너지가 많게 해 그 차이만큼 열이 빠져나가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복사(radiation)는 빛 같은 전자기파의 흐름을 뜻한다. 사실 복사냉각은 매일 경험하는 현상이다. 밤이 되면 태양에서 오는 복사에너지는 거의 없고 대기의 기체분자에서만 조금 나온다. 반면 지표에서 이보다 더 많은 복사에너지가 나가므로(주로 적외선 영역) 땅이 식는다. 보통 해 뜰 무렵이 최저 온도인 이유다.
그런데 낮에는 복사냉각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태양에서 들어오는 복사에너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수동주간복사냉각은 이런 조건에서도 외부 에너지를 쓰지 않고 복사만으로 냉각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이게 가능할까.
우주의 온도는 3K(캘빈. 절대온도로 영하 270℃ 내외다)로 우주배경복사라고 불리는 마이크로파를 미약하게 내보내므로 복사에너지로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물론 별에서 오는 가시광선 또는 적외선 영역의 전자기파도 있지만 역시 무시할 수준이다(밤은 캄캄하다). 사실상 우주는 지구에서 일방적으로 복사에너지를 받기만 할 뿐이다.
반면 중심에서 46억 년째 핵융합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태양은 엄청난 복사에너지를 지구로 보내고 있다. 여름 한낮에는 평방미터 당 1000W(와트)에 이른다. 태양에서 지표에 도달하는 전자기파는 파장 0.3~4㎛(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로 자외선과 가시광선, 근적외선 영역이다. 따라서 낮에도 복사냉각효과를 보려면 일단 이 영역의 전자기파를 최대한 흡수하지 않아야 한다. 여름에 흰옷을 입거나 흰 모자를 쓰면 덜 더운 이유다.
그러나 실제 햇빛의 열에너지 절반은 눈에 안 보이는 근적외선 영역이 차지하므로 이 부분까지 효과적으로 차단해야 햇빛으로 인해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햇빛을 완전히 차단하더라도 이 자체만으로 냉각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햇빛 영역의 전자기파를 차단할 뿐 아니라 그보다 긴 파장인 중적외선, 특히 8~13㎛ 영역의 전자기파를 많이 내보내는 물질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파장 8~13㎛의 적외선은 대기가 흡수하지 않는 영역으로 ‘대기의 창(atmospheric window)’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지표에서 복사되는 이 영역의 적외선은 대기를 통과해 저 멀리 우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태양이나 대기, 우주에서 들어오는 이 영역의 전자기파는 거의 없으므로 에너지의 관점에서는 늘 밑지는 장사다. 햇빛은 막고 중적외선은 내보내는 물질은 낮에도 열을 빼앗기므로 주변보다 온도가 낮다. 바로 수동주간복사냉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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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공간이 빛 산란시켜
2000년대 들어 수동주간복사냉각을 효과적으로 하는 물질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돼 성공하기도 했지만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물질을 만들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물질이 만들어지면서 머지않아 실생활에서 쓰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지난 2018년 ‘사이언스’에 실린 다공성 고분자 막이 그런 예다. 컬럼비아대 응용물리・응용수학과 난팡 유 교수팀이 주도한 미국 공동연구팀은 P(VdF-HFP)라는 고분자에 주목했다. 탄화수소 골격에 불소원자가 포함된 P(VdF-HFP)는 CF3, CF2, CF, C-C, CH2, CH 화합결합의 양자화된 진동에너지 차이로 중적외선 영역의 전자기파를 다량 방출할 수 있다.
그런데 햇빛 영역의 전자기파는 투과시킨다는 게 문제다. 투명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P(VdF-HFP)로 지붕이나 벽을 코팅해 중적외선을 우주로 내보내더라도 그보다 열 배는 되는 햇빛의 복사에너지가 그대로 들어오므로 의미가 없다.
연구자들은 고분자를 아세톤과 물로 된 용매에 녹인 용액을 말려 다공성 고분자 막으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묵을 굳힐 때처럼 투명한 용액을 평평한 용기에 부으면 먼저 휘발성이 큰 아세톤이 증발한다. 그 결과 용해도가 떨어져 고분자와 물이 분리되며 미세한 물방울이 생기고 고분자는 굳는다. 지름 2~10㎛인 마이크로 물방울 주위에 지름 0.2㎛ 내외인 나노 물방울 여러 개가 있는 형상이다. 물이 다 증발하면 빈 공간이 있는 다공성 고분자 막이 된다. 일종의 고체 거품인 셈이다.
다공성 고분자는 두께 300㎛만 돼도 햇빛의 96%를 차단할 수 있다. 다공성 구조가 들어오는 빛을 산란시켜 내보내기 때문이다. 큰 구멍은 긴 파장의 빛을, 작은 구멍은 짧은 파장의 빛을 효과적으로 산란시킨다. 다공성 고분자가 불투명한 흰색으로 보이는 이유다. 고분자가 아세톤과 물에 녹아 있는 용액 상태를 페인트처럼 표면에 칠하거나 스프레이하면 아세톤과 물이 차례로 증발하며 다공성 구조를 지닌 고분자 막이 형성되므로 사용이 간편하다.
연구자들은 애리조나주의 피닉스(고온 건조)와 뉴욕시(온화한 날씨), 방글라데시의 치타공(고온 다습)에서 다공성 고분자 막의 수동주간복사냉각 효과를 비교했다. 그 결과 피닉스에서는 주변보다 6℃나 낮았고 그리 덥지 않은 뉴욕에서도 5℃나 낮았다. 습도가 높아 대기에서 중적외선의 상당 부분이 흡수되고 다시 방출돼 지표로 되돌아오는 치타공에서도 주변보다 3℃가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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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빈 삼각기둥 털
놀랍게도 자연계에 이미 이와 비슷한 원리로 수동주간복사냉각을 실현한 사례가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사는 사하라은개미는 정말 은으로 만든 것처럼 은색 광택이 난다. 한낮에 사막 표면은 60~70℃까지 올라갈 때도 있지만 녀석들은 체온을 48~51℃로 유지한다. 참고로 이들이 견딜 수 있는 체온의 한계는 53.6℃다. 사하라은개미는 사막의 불볕더위에 죽은 절지동물을 먹고 산다. 다른 동물들보다 체온을 몇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덕분에 이런 생태적 지위를 갖게 된 셈이다.
지난 2015년 역시 컬럼비아대 난팡 유 교수팀이 주도한 미국과 스위스 공동연구팀은 사하라은개미의 표면을 덮고 있는 미세한 털이 단순한 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 머리카락처럼 속이 찬 원기둥 형태가 아니라 속이 빈 삼각기둥이었다. 참고로 개미 털은 지름이 2㎛로 사람 머리카락의 40분의 1 수준이다. 그 결과 햇빛이 들어오면 기둥 안 공간에서 산란돼 몸 표면에 도달하지 못하고 다시 빠져나간다. 앞서 고분자의 구멍과 같은 기능이다. 그리고 큐티클로 이뤄진 털에서 중적외선이 방출돼 복사냉각이 일어난다.
연구자들은 털이 온전한 개미와 털을 뽑은 개미로 복사냉각 효과를 비교했다. 그 결과 털이 있는 쪽의 표면온도가 3~4℃ 낮았다. 보통 털은 보온을 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하라은개미에서는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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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보다 한결 시원
지난 주 ‘사이언스’에 실린 수동주간복사냉각 물질은 이와는 전혀 다른 구조다. 화중과기대 우한국립광전자공학연구소 타오구앙밍 교수팀이 주축이 된 중국 공동연구팀은 섬유로 뽑을 수 있는 복사냉각 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천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복사냉각의 핵심인 중적외선을 내보내는 물질은 널리 쓰이는 고분자인 PLA로 C=O, CH3, CH, C-O, C-C 등의 중적외선에 해당하는 진동에너지 차이를 지닌 화합결합이 많다. 다만 햇빛은 통과시키므로 이 자체로는 쓸모가 없다. 그렇다고 앞서 P(VdF-HFP)처럼 다공성 구조를 만들면 섬유로 뽑을 수가 없다.
연구자들은 이산화티탄 나노입자를 분산시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백설기 안에 콩이나 건포도가 박혀있는 것처럼 PLA 섬유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이산화티탄 나노입자가 곳곳에 박혀있다. 햇빛이 섬유를 지나갈 때 나노입자에 막혀 산란한다. 앞서 빈 공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섬유 지름을 30㎛로 하고 섬유가 굴곡이 있게 직조해 천을 만들면 중적외선을 더 많이 내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처럼 원자 수준보다 큰 규모의 구조를 통해 평범하게 만든 천보다 뛰어난 기능을 갖게 됐으므로 이를 ‘메타천(metafabric)’이라고 부른다.
연구자들은 이산화티탄 나노입자가 분산된 PLA 섬유로 두께 500㎛인 천을 짠 뒤 한쪽 면을 PTEE라는 또 다른 고분자로 코팅했다(50㎛ 두께). PTEE는 햇빛의 자외선을 차단하고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있어 천이 젖지 않게 한다. 물론 PTEE가 코팅된 쪽이 대기 방향이다.
연구자들은 세로 절반은 면으로, 나머지는 메타천으로 셔츠를 만들어 메타천의 복사냉각 효과를 알아봤다. 햇볕이 강한 한낮에 키메라 셔츠를 입고 화상카메라로 온도 변화를 측정한 결과 면이 덮인 쪽은 34.4℃인 반면 메타천은 31℃로 3.4℃ 낮았다.
한편 모형 자동차에 메타천 커버를 씌우고 볕이 내리쬐는 상태에서 90분을 둔 뒤 자동차 실내 온도를 측정한 결과 커버를 씌우지 않을 때와 기존 커버를 씌웠을 때보다 각각 30℃, 27℃나 더 낮았다. 차창이 닫혀 대류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햇빛의 복사에너지가 들어오면 온도가 급상승하기 마련이지만(노상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서 경험하듯이) 메타천을 씌우면 복사냉각으로 이런 현상을 차단할 수 있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에어컨을 쓸 수가 없는 축사나 양계장에서 많은 가축이 희생됐다. 건물 지붕이나 벽에 복사냉각 페인트를 칠하거나 메타천을 씌우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메타천은 물론 2018년 논문에 소개된 복사냉각 페인트도 아직 상용화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LED나 배터리 기술이 그랬듯이 어느 선을 넘어서는 순간 제품이 나오기 시작하지 않을까. 이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2년 9월부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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