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수민씨의 꿈은 커피매스터..삼성이 놓은 디딤돌
스물두살 박수민씨(가명)에게 2018년 꽃샘추위는 유난히 매서웠다. 미혼모의 지적장애아로 태어나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수민씨에게 시설 보호 기간 종료와 함께 찾아온 홀로서기는 또다른 시련이었다. 양육시설의 추천으로 취직한 커피전문점 월급에서 원룸 월세 40만원과 생활비를 빼면 남는 게 많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힘겨울 때 수민씨의 손을 잡아준 곳은 '삼성 희망디딤돌센터'였다. '삼성 희망디딤돌센터'는 보호종료 청소년에게 최대 2년 동안 1인 1실의 주거공간을 제공해 독립 생활을 지원하는 삼성그룹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센터에서는 요리, 청소, 정리수납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사항을 알려주고 취업정보·진로상담·인턴기회도 제공한다.
수민씨는 집 문제가 안정되면서 최근 사내 커피매스터(검은 앞치마) 시험에 합격했다. 커피매스터는 커피의 역사, 재배와 수확, 윤리적 유통 등 커피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함께 바리스타로서의 기술과 테이스팅 능력을 갖춘 전문가에게 주는 자격증이다. 수민씨가 3년 전 주방 보조, 테이블 정리 같은 단순 업무로 일을 시작하면서 내내 꿈꿨던 목표다.
수민씨에게는 최근 또다른 꿈이 생겼다. 나중에 아파트에 살게 되면 보육원에서 친동생처럼 지낸 동생을 데려와 같이 살 생각이다. 수민씨는 "삼성 희망디딤돌센터 덕에 이런 꿈을 꾸게 됐다"며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수민씨처럼 만 18세가 돼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을 떠나는 이른바 보호종료아동들은 시설 퇴소 이후 경제난에 직면한다. 매년 보호시설을 퇴소하는 약 2500명의 청소년이 홀로서기를 하면서 쥐는 돈은 자립 정착금 500만원과 3년간 월 30만원씩 나오는 수당이 전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종료된 자립 1년차 1031명 가운데 613명(59.5%)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10명 중 6명이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존해 생활하는 셈이다. 2016년 퇴소해 자립한 지 5년이 지난 보호종료아동도 16.9%는 여전히 '탈수급'하지 못했다.
수민씨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된 삼성 희망디딤돌센터는 삼성전자가 임직원들의 기금을 바탕으로 세운 보호종료아동 지원시설이다. 2013년 '삼성 신경영' 선언 20주년 당시 임직원들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생 의지를 존중해 특별격려금의 10%를 기부하고 직접 아이디어를 내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2019년 회사 지원금 250억원을 추가로 내놨다.
삼성전자는 10일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전북 전주시에 7번째 삼성 희망디딤돌센터를 개소했다. 올 들어서만 광주·창원·아산센터(이상 6월), 진주센터(7월) 등 전주센터까지 5개 센터가 신설됐다.
전북 전주시 덕진동에 개소한 전북센터는 오피스텔 건물에 입주해 실제 자립한 것 같은 환경을 갖췄다. 병원·약국·피트니스센터 등 편의 시설도 있다. 연인원 340여명의 청소년들이 센터 내 22개의 독립된 주거공간에서 자립 체험과 각종 교육에 참여할 예정이다. 운영은 굿네이버스 전북본부가 맡는다.
전문가들은 양육시설에서 보호종료되는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강조한다. 보호종료 청소년들은 민법상 성인 기준인 만 19세보다 어려 휴대폰을 개통하거나 병원에 입원하기도 쉽지 않다. 홀로 경제·주거·진로 문제 등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지만 지원과 보호체계가 부족하다보니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보호종료 시점을 만 18세에서 만 24세로 연장하고 자립지원 전담기관을 17개 시도로 늘리는 등 자립준비 청소년 지원 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삼성전자의 장기자립 지원이 이뤄지면서 센터를 거쳐 자립에 성공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유민재씨(21·가명)는 2018년 3월 희망디딤돌 강원센터에 입주해 2년 동안 지내면서 세무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모은 저축으로 목표했던 3000만원보다 더 많은 돈을 마련했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은 이날 전북센터 개소식에서 "임직원들의 마음이 모아진 새로운 희망의 디딤돌이 하나 더 놓여지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며 "자립준비 청소년들의 든든한 희망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와 함께 응원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경기, 전남, 경북에 3개 센터를 추가 개소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에 총 10개의 센터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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