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떠난 자리에 다시 꿈틀거리는 '화약고'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시사저널=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미국이 과감하게 20년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철군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후폭풍으로 탈레반 세력이 아프간 정부군을 위협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전쟁 억제가 유지되던 '화약고' 중동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의 명령으로 이미 아프간 주둔 미군의 90% 철군이 이뤄진 가운데, 8월말까지는 완전히 철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01년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9·11 테러에 대한 복수로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잡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무엇을 얻었을까.
2011년 5월,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고 평화를 유지했으니 표면적인 미국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성과에 비해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우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과 병력이 소모됐다. 대략 2조 달러가 전쟁 비용으로 들어갔다고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않을뿐더러, 부패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부를 대신해 탈레반과 전쟁을 해본들 아프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고, 끝도 알 수 없는 늪에 빠져들 뿐이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우리는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며, 아프간 사람들의 국가 운영과 미래는 아프간 국민의 몫이자 책임이다"고 책임을 회피하며 서둘러 허둥지둥 발을 빼기에 이르렀다.
이란·이라크의 反美 벨트 확장될 가능성 커
이에 따른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접한 중동 지역 내 파장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대치 관계에 있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반미 세력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반사이득을 얻었다. 이는 과거 이라크전(戰) 사례를 반추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란과 대치 관계에 있던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인 국가였지만, 소수 수니파인 후세인의 집권이 시아파의 영향력 팽창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2002년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고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하자 이라크에서는 군부나 정부 모두 시아파가 득세하게 됐다. 이번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이란과 이라크는 시아파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해 반미 시아파 벨트 세력이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과 충돌할 수 있어 그렇지 않아도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는 화약고인 중동에서 분쟁 위험은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아프간의 미군 철군에 가장 당황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 고위 지도급 인사들과 만나 극진한 대접을 하며 아프간을 재탈환하고 있는 탈레반 달래기에 나섰다. 더불어 중국은 아프간 내 자국민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과 함께 평화유지군 파병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이 이토록 아프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국의 핵심 이익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군과 나토군이 빠져나간 무주공산에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속셈이다. 아프간을 '접수'하면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이며 친(親)중국 성향인 이란과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서방의 해상봉쇄 작전에서 안전한 나라가 된다는 계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카스피해 횡단 대교를 건설해 러시아를 거칠 필요가 없는 실크로드 무역루트를 개척하는 지정학적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꿈꿔왔던 서방과 하나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무역로 개척이라는 '중국(夢)' 실현을 의미한다.
중국이 그리는 야심과 희망찬 청사진 이면에는 두려움도 있다. 아프간 내부 혼란이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출발한다. 위협을 줄이기 위해 사전에 아프간을 선제적으로 접수하겠다는 계획이다.
탈레반과 국제 수니파의 지원을 받는 신장·위구르 독립운동단체인 ETIM은 본부를 아프가니스탄에 두고 있다. 아프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이 둔화되고 있었던 ETIM이 미군 철군 후에는 본격적으로 중국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현재로서는 ETIM이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붕괴시키는 시도로 정면 대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전략은 송유관 파괴다.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중국 신장에 이르는 송유관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할 가능성이 유력한데, 중국은 아프간에 파병해 이와 같은 ETIM의 투쟁을 사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美 관심, 중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옮겨가
문제는 중국이 국제안보지원군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다. 무엇보다 국제적 승인을 얻을 수 없을 전망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하는 것조차 현재로서는 미국과의 갈등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 유일한 가능성은 아프간에서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파병을 요청하는 경우다. 그러나 미군 철군 이후 아프간의 대부분을 장악한 탈레반 측에서는 "모든 외세의 철군"을 요구하고 있어 중국 정부에 파병을 요청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중국이 섣불리 군대를 보냈다가는 이슬람 세력과의 끝없는 전쟁의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터키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미국은 중앙아시아에 미군 기지를 두고 아프가니스탄을 관리하겠다는 계획인데, 기존에 미군 기지를 제공했던 우즈베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이 유력한 후보지가 될 수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고, 일대일로가 군사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 더구나 러시아는 식민통치를 했던 나라이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미국과의 협력을 이 나라들도 은근히 원하고 있다. 미국은 'C5+1 협의체'를 만들어 미·중, 미·러 갈등에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끌어들여 협력 파트너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라는 '당근'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과 같은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협의체인 '투르크 평의회(Turkic Council)'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대러·대중 전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터키는 그동안 끊임없이 유엔에 중국의 신장·위구르인 탄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같은 투르크족인 위구르 문제에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올해 3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터키를 공식 방문했을 때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는 시민들의 위구르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터키 정부는 위구르 탄압에 대한 항의 의사를 직접 왕이 부장에게 전달한 바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시켰을 뿐인데, 그 파장은 국제 질서 전체를 흔들고 있다. 미국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전쟁의 수렁 속에 누가 다시 빠져들게 될지 국제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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