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인질', 황정민이 직접 차린 스릴 맛집 쫄깃 밥상
아이즈 ize 글 권구현(칼럼니스트) 2021. 8. 10. 10:39
아이즈 ize 글 권구현(칼럼니스트)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거든요.“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2005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의 소감. 지금엔 밥상, 또는 숟가락 소감이라 불리는 이 소감문을 남긴 배우 황정민이 어느날 납치를 당했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 제작 외유내강)의 이야기다.
‘부당거래’, ‘히말라야’, ‘베테랑’, ‘신세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영화의 앞부분을 빠르게 훑고 가는 황정민의 필모그래피는 관객들이 왜 이 작품과 마주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를 요약한다. 연기력과 흥행 파워를 모두 갖춘 배우 바로 황정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속 주인공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황정민이다.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그렇게 영화는 현실과 스크린 속 세계관을 뒤섞기 시작한다.
인질범들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냐며 황정민을 겁박하는 순간 관객들 또한 상황 파악을 시작하며 실재하는 배우 황정민과 영화 속 배우 황정민이 펼쳐내는 상황극에 몰입한다. 편의를 위해 우리 현실 속의 배우 황정민은 황정민A로, 영화 ‘인질’ 속의 캐릭터 황정민은 황정민B로, 그리고 두 인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황정민으로 서술한다.
사실 이 두 인물에 대한 설명이 누구의 이야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여 혼란스러울 필요도, 굳이 구분 지어 인지할 필요도 없다. 황정민 A와 황정민 B가 뒤죽박죽 섞여 나갈 때 오히려 영화의 재미는 배가 된다. 이번에 차려진 밥상은 여러 재료를 하나에 모아 잘 버무린 비빔밥인 셈이다.
이후 영화는 황정민B의 눈물 겨운 탈출기로 전개된다. 그 안엔 두뇌 싸움도 있고, 몸 싸움도 있으며, 총기도 등장하고 나아가 카체이싱까지 펼쳐진다. 허나 이 모든 요소는 스릴러 영화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그럴싸한 장치들. 영화는 결국 한정된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의 대사들로 상황을 그려내고 스릴을 야기한다.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황정민A는 자신의 배우 인생을 고스란히 황정민B에 투영한다. 실제로 필모그래피를 재현하기도 한다. ‘납치를 당해보니 그곳에 나의 팬이 있었습니다’라는 웃지 못할 설정은 상당한 웃음 타율을 자랑한다. 납치를 당했는데 거기서 자신의 유행어를 보여줘야 한다니. 연예인이라면 겪어봤을 비슷한 딜레마들이 극중 여러 곳에 녹아 있는데, 이는 치열하게 전개되는 작품 안에 유머 코드로 스며들어 숨구멍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황정민A가 황정민B를 연기하면 되는 일이니 다른 연기보다 수월할 수 있었겠으나 반대로 몹시도 어려웠을 일이다. 단적으로 타인이 보는 나와 나만이 알고 있는 나를 뒤섞는 작업이다. A와 B는 같은 인물처럼 느껴져야 하면서도, ‘실제는 다른 인물’이라는 여지도 꼭 필요했다. A와 B의 혼재라는 영화적 약속이 깨질 때 영화 ‘인질’은 생명을 잃는 구조다. 이러한 간극을 조율하는 건 오롯하게 황정민 A의 몫. 우리의 혹은 영화 속 톱스타 황정민은 그 어려운 일을 능히 해낸다. 영화 ‘인질’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완벽하게 기능을 다한다. 숟가락을 얹는 것이 아닌, 임금님 수라상 클래스의 밥상을 차려냈다.
극 중 상당 시간이 폐쇄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만큼 그 안에 머무는 배우들의 하모니가 중요한 영화다. 황정민이 차려놓는 밥상을 제대로 떠먹을 줄 아는 배우가 필요했다. 3000 명의 오디션 끝에 캐스팅했다는 연기자들은 ‘이태원 클라쓰’로 익숙한 류경수를 제외하면 다소 낯선 배우들. 허나 18년차 뮤지컬 내공을 자랑하는 김재범을 비롯,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눈도장을 찍었던 이유미까지 자신의 역량을 훌륭히 피워낸다.
덧붙여 현실과 극을 오가는데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역할은 황정민 외에 하나가 더 존재한다. 바로 극의 서사다. 태생이 ‘세이빙 미스터 우’의 리메이크로 시작한 이 영화는 커다란 틀만 유지한 채 한국의 이야기로 새로이 덧칠했다. 원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인질’의 경우 여러모로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빠뜨렸던 ‘지존파 사건’을 연상케 한다. 조직의 구성을 비롯해 범죄의 전개까지 많은 지점이 닮아있으니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분명한 건 영화 ‘인질’은 수작이다. 특히 여름 시장 텐트폴 영화치고는 그리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서사와 연기 등 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를 잘 조합해 재미를 전달한다는 것에 의미가 깊다. 다만 앞으로도 ‘인질’이 좋은 영화로 남기 위해서는 황정민A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황정민B는 실로 정의로운 인물,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과 함께 억류된 인질을 걱정하며 그를 먼저 살리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갖춰진 인성에 더해 머리도 똑똑하고, 달변이며, 싸움마저도 잘한다. 영화 ‘인질’의 생명은 결국 리얼리티. 황정민A는 앞으로 황정민B처럼 좋은 배우로, 나아가 멋진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숙제를 받았다. 황정민은 그렇게 영화 ‘인질’에 제대로 붙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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