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만 태아들이 사라진다..딸이라는 이유로

곽노필 2021. 8. 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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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선호 강한 12개국 10년 예측 결과
성 선택에 의한 낙태, 줄곤 있지만 여전
뿌리깊은 남아 선호에 의한 출생 성비 불균형은 정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픽사베이

보통 출생시의 자연적인 남녀 성비는 105:100(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 정도로 본다. 물론 각 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실제 출생 성비는 큰 차이가 난다. 출생 성비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가부장 사회의 뿌리깊은 남아 선호 경향이다. 그러나 출생 성비의 불균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건 태아 성감별 기술이 등장한 1970년대 이후였다. 남아 선호 문화가 성감별 기술과 어우러져 성별 선택에 의한 낙태가 성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아 선호 성향이 매우 강했던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이후 불균형이 뚜렷해진 한국의 출생 성비는 1990년 115명(여아 100명당 남아 수)까지 치솟았다. 첫째아기의 출생 성비는 108.5인 반면 셋째아기의 출생 성비는 189.5나 됐다. 성별을 가려 낳았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성별 우선순위를 가리는 세상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구호는 아들을 원하는 부모들에겐 성 선택 출산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을 법도 하다. 극심한 성비 인플레는 저출산 추세와 함께 약화되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서야 자연 성비 수준을 회복했다.

세계에서 남아 선호 경향이 가장 강한 나라로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베트남, 대만, 홍콩, 알바니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몬테네그로, 튀니지 12개국이 꼽힌다.

레온틴 알케마 미국 매사추세츠애머스트대 교수(공중보건학)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진이 2019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 12개국에서 1970년대 이후 성별 선택에 의한 낙태로 2300만~4600만명의 여아가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각 지역의 출생 성비 예측 시나리오. BMJ글로벌헬스

2030년 이후에는 불균형 해소될 듯

성 평등 이슈가 전면에 부상하고 저출산이 세계적 흐름이 된 지금은 사정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알케마 교수팀이 204개국 32억6천만명의 출생 기록을 토대로 최근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BMJ 글로벌 헬스’에 발표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정도는 약해졌지만 성별 선택에 의한 출생 성비 왜곡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들 12개국에서 2030년까지 470만명의 여아가 성 선택 낙태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진은 다만 2030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에는 성비 불균형이 거의 해소될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탄자니아 등 다른 17개국에서 출생 성비 불균형이 개선되지 않으면 2100년까지 낙태되는 여아 수가 2200만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은데다 남아 선호 관습이 여전해 성비 불균형이 심해질 위험이 있는 나라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3분의 1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경고했다.

중국, 인도, 한국 등의 출생 성비 추이(여아 100명당 남아 수). 월드인데이터

한국, 2007년 출생 성비 인플레 졸업

성비 인플레는 상승, 안정, 하락의 세 단계를 거친다. 20세기 후반 성비 인플레가 심했던 12개국은 지금 세 단계 중 어느 단계에 있을까?

연구진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을 시작으로 홍콩(2013), 조지아(2020) 3개국은 이미 성비 인플레 세 단계를 모두 졸업했다. 중국과 인도, 베트남,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5개국은 두번째인 안정 단계에 있으며,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대만 튀니지 4개국은 최종 하락 단계에 있다.

연구진은 성 선택 낙태의 95%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도 2030년대에는 성비 균형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최대 인구국인 중국과 인도는 현재 남자가 여자보다 7000만명 더 많다. 중국이 3400만명, 인도가 3700만명 남초 상태다.

성비 불균형 위험이 높은 17개국은 저출산 추세와 함께 21세기 후반에 성비 균형을 찾을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진은 “출생 성비 불균형이 장기화하면 여성 부족으로 인한 남성들의 결혼 압박감이 심해지고, 이에 따른 사회 문제가 악화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의 안정과 지속가능한 발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성별 편견을 퇴치하는 직간접적 조처와 성평등 보장을 위한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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