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생명 구한 방화복으로 지구 구해요

박다해 입력 2021. 8. 1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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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드]폐방화복 새로 쓰는 119REO
영업이익 일부는 소방관 위해 쓰여
이승우 119REO 대표가 수거한 폐방화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소방관이 입는 방화복의 내구연한은 통상 3년이다. 연한이 다하면 1년에 2번 정도 수거한 뒤 대체로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하지만 3년 연한을 채웠다고 모든 폐방화복이 태워야 마땅한 ‘쓰레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방화복을 입고 출동한 횟수에 따라 손상 정도가 다르다. 설사 잦은 세탁 등으로 방화복 성능을 오롯이 담보할 수 없다고 해도 방화복 원재료인 아라미드란 합성섬유를 활용할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119레오(REO·Rescue Each Other)는 이 ‘여지’를 놓치지 않았다. 이곳은 폐방화복과 소방호스를 활용해 가방과 액세서리를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회사다.

소방관 고마움 알리고 폐기물도 줄이고

7월16일 119REO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서울디자인지원센터 5층에 들어서자 복도 한쪽에 높이 쌓인 상품 상자들이 반긴다. 막 제작 공정을 마치고 사무실에 배달된 상품이다. 사무실 안에는 황토색 계열 특수방화복으로 만든 여러 가방이 늘어서 있다. 작은 크기의 크로스백부터 노트북이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백팩, 클러치백, 슬링백, 핸드백 등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모두 119REO가 직접 수거한 폐방화복으로 제작한 가방이다.

이승우(28) 119REO 대표가 처음부터 업사이클링이나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출발점은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관심이었다. 대학교 재학 중이던 2016년, 사회적기업 창업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미디어에서 소방관이 “장갑을 사서 쓴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자 실제로 그들의 생활이 어떤지 궁금했다. 섭외되는 대로 직접 소방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그 과정에서 현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도 공무상 상해로 인정받기 어려운 소방관의 현실을 알게 됐다.

사회적기업 활동을 하며 소방관을 후원하고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매년 버려지는 방화복을 떠올렸다. 소방관을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존재이자 소방관의 노고와 존재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소재였다.

“업사이클링(Upcycling·새활용) 제품을 본격 제작한 건 2018년이에요. 그사이 소방관 수도, 소방 예산도 커져 매년 나오는 소방쓰레기가 늘었죠. 가방 등을 만들면 소방관의 의미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폐기물을 줄일 수도 있어 시작했어요.”

폐방화복을 수거하는 활로를 트는 건 쉽지 않았다. 가능한 지방자치단체에 연락해 취지를 밝히고 제공 가능 여부를 일일이 물었다. “버려진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공공재’ 성격이 있다보니 잘못된 방향으로 쓰이는 것 아닌가 소방서에서는 우려도 많이 했죠.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119REO는 폐방화복을 사용하되 외부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계약했다.

현재 계약한 소방서는 전국 40여 곳. 지역 소방본부와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수거하는 폐방화복 양이 조금씩 늘었다. 2020년에는 6t 분량을 받아 제품을 만들었다. 2021년에는 폐방화복 10t 이상을 소화할 것으로 본다. 통상 큰 사이즈 백팩 1개를 만들 때 폐방화복 1벌이 모두 들어간다.

“훼손 정도에 따라 3년이 지나도 쓸 만한 방화복은 훈련복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하더라고요. 연한 지난 방화복의 질을 A급, B급으로 나눈다면 저희는 B급에 가까운 폐방화복을 수거해서 되살리고 있죠.”

수거된 폐방화복은 지역자활센터에서 세탁과 분해 과정을 거친 뒤 제작 단계에 돌입한다. 119REO는 현재 인천과 서울 광진구의 지역자활센터 두 곳과 연계해 가방을 제작 중이다. 세탁이나 분해 작업은 일일이 손으로 한다.

“지역자활센터랑 협력을 맺은 이유 중 하나는 전국에서 폐방화복을 수거한 뒤 이를 운반하는 시간과 거리를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물류비용뿐 아니라 탄소배출도 줄이고 싶었거든요.”

소방서에서 직접 수거한 폐방화복으로 제작한 가방. 119REO 제공

‘그을음’ 흔적 가방에 오히려 감동

이 대표는 제작 과정에서 수요를 넘어 제품이 ‘과잉 생산’되지 않도록 유의한다. 소량 생산을 유지해 되도록 재고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최근엔 가방을 만들고 남는 자투리천을 활용해 팔찌나 키링(열쇠고리)을 만드는 등 액세서리류도 제작·판매하기 시작했다.

“재고를 아웃렛 등에서 대폭 할인해 판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환경을 말하는 업사이클링 제품이 기성 제품의 판매 방식을 따라가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잉 생산은) 환경에 해로운데 업사이클링이 마치 면죄부처럼 되는 건 원치 않거든요.”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걸 이 대표는 체감한다. “폐방화복이다보니 그을음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구매하는 분들은 오히려 이런 점에 감동하기도 해요. 소방관이 다른 생명을 살렸던 흔적이니 가치도 되새기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잘 알고 계시죠.”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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