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짱한 경륜에 실용 중시..중도확장 안 보이는 '독불보수'
25년 산전수전 겪으며 개인기..돌파력 갖춰
한시적 1가구2주택 제한 등 '이념보다 실용'
독단적 기질 탓 '막말 논란' 꼬리표 붙어
조언할 측근·당내 조직 없는 건 치명타
윤석열·최재형 등 검증국면 득점 기회
정권교체 열망 클수록 '전략적 선택' 변수
홍준표(68) 국민의힘 의원은 색깔이 분명하다. ‘레드’. 10여년 전엔 속옷까지 붉은 색깔로 맞춰 입을 만큼 빨강을 고집했다. 자신의 성 ‘홍’에서 유래한 빨강은 맹렬한 근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보수정당이 지닌 ‘레드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실용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속 시원한 직설 화법과 실용적 태도로 대중의 호감을 샀던 그의 장점은 강경 보수이자 막말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확장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5년 정치인생 동안 쓴맛 단맛 다 본 이 ‘역전의 용사’ 앞에 놓인 기회와 위기는 뭘까.
■ 장점(Strength)
홍 의원은 ‘개인기’가 뛰어난 정치인이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에서 그는 자유한국당 간판을 달고 나와 24.04% 득표율로 2위를 차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자유한국당이 궤멸에 가까운 상태에 놓였던 것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회복력이다. 21대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했던 그가 20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흥행 보증 카드로서 홍 의원의 돌파력이 인정을 받은 덕분이다. 그의 인생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점심 도시락 대신 매일 수돗물로 배를 채울 만큼 집안은 가난했다. 어렵사리 사법시험에 붙어 검사가 된 이후 정권의 권력형 비리와 조폭 범죄 수사로 명성을 얻으며,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200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여의도로 왔지만 한동안 특정 계파에 속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지난해 총선 때는 공천 문제로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14개월을 당 밖에서 떠돌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셈이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대선 후보가 되면 공약을 개발하고, 검증 과정을 거치며 경제·복지, 외교·안보 등 국정의 모든 분야에 관한 비전과 정책을 갖게 된다. 대선을 경험한 홍 의원의 풍부한 식견은 대선 국면에서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홍 의원은 지난 대선 출마 때 이미 검증을 거쳐서 더 꼬투리 잡힐 게 없다는 게 강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실용주의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보수, 진보, 우파, 좌파이기 전에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일꾼이다. 필요하면 좌파 정책이라도 가져와서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2005년에 원정 출산,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한 이중국적 취득을 막는 내용의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 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으로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 안정책으로 ‘일정 기간 1가구 2주택까지 소유 제한'을 제안하기도 했다. 보수정당에서는 보기 힘든 정책들이다. 성 선임기자는 “정책을 이념적 차원에서 고르지 않는 자세는 좋은 면모”라고 평가했다.
눈치 보지 않은 직설 화법도 장점이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나는 언제나 그 싸움을 즐긴다”고 스스로 말했듯, 어떤 물음도 피하지 않으면서 핵심을 콕 찌르는 화법이 그의 매력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으로 지명됐던 김현아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다주택자 논란을 빚자 가장 먼저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정치인의 솔직한 화법은 대중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며 홍 의원에게 고정적 지지층이 형성된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단점(Weakness)
하지만 자수성가한 사람들 특유의 ‘독단적 기질’은 위험할 때가 많다. 수위 조절 없이 뱉어내는 말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시원시원한 화법으로 팬덤은 형성됐지만, 그와 동시에 항상 ‘막말 논란’이 꼬리표로 붙었다. 품격을 갖춰야 할 대통령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지적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이대 계집애들을 싫어한다”(2011년 대학생 타운미팅 중),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아니냐”(2017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해), “여자가 하는 일(설거지)을 남자한테 시키면 안 된다”(2017년 언론 인터뷰),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2018년 노회찬 정의당 의원 사망 때) 등등. 듣는 이가 모욕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의 사례가 숱하게 많다.
경남지사 시절 보여준 ‘포퓰리스트 행보’는 그가 의원 시절 쌓아온 실용주의자 면모를 갉아먹으면서 중도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 걸림돌이 됐다. 2013년 경남도립 진주의료원을 적자를 이유로 폐업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공공의료 공백을 낳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는데도 홍 의원은 “강성 노조 탓” “개가 짖는 소리” 등 거친 언행으로 받아치면서 독단적 행보를 이어갔다. 더욱이 그는 2017년 대선 구도에서 강경 보수의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로써 보수층 결집은 이뤘지만 “구정치인의 낡은 이미지”(한귀영 연구위원)는 강화됐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도로 한국당’을 경계하며 체질 변화를 꾀하는 상황에서 홍 의원이 추구한다는 실용 보수는 강경 보수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중도 확장성이 없는 정책 행보가 지금 국민의힘의 대선 구도에 맞지 않는다”며 “우파 포퓰리스트 이미지”를 약점으로 꼽았다.
‘홍준표의 사람들’이 없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 것인지 보여주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떻게 국정 운영을 하고 정책 방향을 잡아 나갈지 예측이 어렵다. 주변에서 때로는 직언도, 정책적 조언도 해줄 측근이 없다는 건 대통령으로서 약점으로 꼽힌다. 계파 정치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당내 경선에서 조직 기반이 없는 건 치명타로 작용해 불리하다.
몸에 밴 비주류 정서도 세력을 불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남고를 졸업한 그는 ‘명문고(경북고)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학과 검찰에서 내내 주요 그룹에서 배제되며 변방에 머물렀다’고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고한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늘 저격수 역할만 맡다 보니 배척을 당하면 당했지, 주류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영남 출신 보수정당 의원으로서 원내대표, 당대표, 경남지사, 대선 후보 등 화려한 이력을 밟아왔다. 주류가 아니어서 세를 모으지 못했다는 주장이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 기회(Opportunity)
야권 대선주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유리한 조건은 정권교체론에 대한 강한 지지이다. 코로나19 장기화, 부동산 시장 불안과 민생경제 실패 등 실정이 부각될수록 홍 의원에게도 단연 유리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집요하고도 순발력 있는 공격력은 다른 야권 경쟁자들을 따돌리고도 남는다.
하지만 현재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지지율 2~3위를 오가고 있는 홍 의원에게 기회가 돌아오는 확실한 방법은, 당연히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지지율 하락이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당내 경쟁 주자들의 견제도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윤 전 총장에게 비판적인 발언을 자주 내놓았던 홍 의원으로선 자신의 경륜과 비교하며 저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은 최근 맥락에 닿지 않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초보 정치인들의 실수가 누적될수록 노련한 홍 의원에게 기대감이 쏠릴 수 있다. 윤 전 총장을 겨냥해 갈수록 격화되는 여권의 검증과 공세가 홍 의원에게 포인트로 돌아올 수 있다.
■ 위협(Threat)
정권교체론에 대한 강한 지지는 야권 대선주자들에겐 반가운 일이지만, 정권교체 가능성이 클수록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될 만한 인물’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선택을 할 명분도 늘어난다. 전통적 보수층이 자신과 이념 성향이 비슷한 홍 의원이 아니라, 적폐청산의 집행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정권 심판에 상징적 인물로 받아들이며 지지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수정당의 계승자라고 여기는 홍 의원에겐 불리한 구도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악연도 홍 의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준석 대표와 가까운 김종인 전 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맡든 이번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경우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등 30년 가까운 악연을 이어온 홍 의원으로선 반갑지 않은 일이다. 복당하자마자 윤 전 총장에게 날을 세웠다가 이준석 대표로부터 몇차례 경고장을 받는 등 당 지도부와의 관계 악화도 당내 경선에서 홍 의원의 입지를 좁힐 가능성이 있다.
현재 30대 당대표가 들어선 국민의힘에선 세대교체와 중도 확장을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내세웠다. 4년 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우파 정부”를 약속했던 홍 의원은 과연 어떤 깃발을 들고 대선의 링에 오를까. 홍 의원은 이달 중순께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국민의힘 시·도당을 중심으로 민심을 경청하며 전국을 순회할 예정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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