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아트레터]첨단과 자연의 조화 꿈꾼 디자이너 러셀 라이트

조상인 기자 2021. 8.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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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마니토가 디자인센터
마니토가 디자인센터 외관.
[서울경제]

뉴욕 시내에서 북쪽 업스테이트 방면으로 1시간 정도 이동하면 마니토가(Manitoga)라는 디자인센터에 닿는다. 러셀 라이트(Russel Wright·1904~1976)가 건축해 말년의 약 15년간 작업하고 거주했던 공간이다. 미국 모더니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러셀 라이트는 주방 공간이 집의 중심이라는 철학으로 수많은 주방 집기 및 가구들을 디자인했다. 특히 세라믹 재질의 단순하고 실용적인 접시, 찻잔, 주전자 등이 시그니처과 같은 주방집기들이 그의 시그니처이며, 20세기 중반 많은 미국인들이 모더니즘 디자인을 쉽게 받아들이는 데에 기여했다. 기능성을 강조한 의자 및 테이블과 같은 다양한 가구들도 디자인했다.

라이트는 약 9만평의 마니토가 부지를 부인 메리와 함께 지난 1942년에 처음 매입했다. 부인과 일찍 사별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자연친화적인 모더니즘 형식의 스튜디오와 주거 공간을 짓기 시작했다. 마니토가는 1961년에 완공됐다.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던 라이트가 1976년 사망한 후 마니토가는 미국 역사 기념물로 지정받으면서 대중에게 공개됐다. 현재 미국에서 몇 안 되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물 중 하나다.

라이트의 마니토가는 낙수장(Falling Water)으로 잘 알려진 ‘유기적 건축’의 창시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들을 상기시킨다. 낙수장과 마찬가지로 마니토가 또한 건축물이 숲 한가운데 놓여 있기에 외부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긴 산책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가야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현재 이렇게 자연과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모더니즘 형태의 건축물들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개념이었다. 엄격한 좌우 대칭과 불필요한 장식적인 요소들을 제외하고 건축물 주변의 환경과 거주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건축물도 유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이 모더니즘 건축의 개념은 많은 전통적인 건축가들의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에는 현대 건축의 탄생에 크게 공헌했다.

마니토가는 크게 작업실과 침실 용도의 스튜디오 건물(Dragon Rock Studio)과 지인들을 초대해 요리를 하며 식사했던 메인 다이닝 건물(Dragon Rock House)로 나뉜다. 스튜디오는 네모 반듯한 형태로 땅에 반쯤 파묻혀있다. 스튜디오 실내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면 시선이 지면과 동일하게 맞닿는다. 스튜디오의 평평한 지붕 전면에는 잔디가 심어져 있어 실외에서 보면 이끼가 붙은 바위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러셀 라이트가 자신의 건축이 얼마나 자연과 융화될 수 있는지를 추구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니토가의 메인 다이닝룸 내부.

스튜디오 실내를 둘러보면 라이트의 디자인 철학인 실용성과 기능성을 엿볼 수 있다. 최대한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한 꼭 필요한 침대, 의자, 책상 등과 같은 가구와 물품들만 배치돼 있다. 좁은 스튜디오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려고 뚫려 있는 책장을 작업실과 침실 사이에 배치해 공간을 구분했다. 스튜디오에는 1930년대 그를 유명 디자이너로 만들어준 레이지 수잔 커피 테이블과 헤르만 뮐러와 협업한 릴랙스 의자 등 그의 손길이 스민 여러 가구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스튜디오를 나오면 메인 다이닝 건물로 향하는 야외 통로와 연결된다. 건너편 바위 절벽과 폭포가 보이는 사이에 위치한 엄숙한 메인 다이닝 건물은 가히 장관이다. 9m가 넘는 높이를 가진 이 건축물은 전체 옆면이 유리로 마감돼 있다. 스튜디오에 비해 높고 넓은 창문 덕분에 채광이 좋고, 건너편에 보이는 폭포가 한눈에 들어와 탁 트인 시야의 주변 자연환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건물에서는 새로운 산업 재료들과 기존 부지에 있었던 자연 재료들이 조화롭게 사용됐다. 메인 건축의 기반이 되는 암석들은 그대로 살려 두었고, 바닥 지면 대부분이 암석 자체로 되어 있다. 건물 내부 벽 마감은 부분적으로 육각형 모양의 벌집을 그대로 가져와 유리 벽으로 마감했다. 전반적으로 기존 부지에 존재했던 자연 재료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건축물의 내, 외부의 공간 사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고려한 러셀 라이트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마니토가의 스튜디오 내부.

현재 마니토가에서는 러셀 라이트가 거주했던 스튜디오와 메인 다이닝 공간이 대중들에게 공개돼 있고, 지난 2019년부터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의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매년 선정된 시각예술, 음악, 안무 등 여러 장르의 아티스트들의 작업이 마니토가에 전시된다. 지난 5월부터는 라이트가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디자인한 주방 집기 등 200여 점이 메인 다이닝 건물 내부의 디자인 갤러리에서 전시중이다. /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필자 엄태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아트비즈니스 석사를 마친 후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에서 근무했다. 현지 갤러리에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뉴욕이 터전이 되었기에 여전히 그곳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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