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칼럼] 무책임한 '공무원 공화국' 만들기

김환기 2021. 8. 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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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11만명 증원, 재정 압박
그리스·아르헨티나 등 답습 우려
선진국 이탈 자충수 둬선 안 돼
관료조직 비효율성 개선 급선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은 달콤하다. 나랏돈을 펑펑 나눠 주니 중독성이 강하다. 한번 맛보면 금단 증상을 이기지 못해 포퓰리즘 정치 지도자를 다시 찾게 된다. 포퓰리즘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국민에게 복지 혜택을, 정치인에겐 권력을 안겨주지만 종국에는 국가재정을 거덜 내고 국민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국민을 단맛으로 유인해 기필코 쓴맛을 보게 하는 게 포퓰리즘의 속성이다.

취임 직후 각료회의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줘라”고 지시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 최저임금을 한 번에 3000%나 인상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가난한 사람을 없애는 정책을 멈추지 않겠다”며 온갖 현금 복지를 남발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김환기 논설위원
포퓰리즘 정치로 국가부도를 부른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주특기인 과잉 복지는 나라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만든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과잉 공무원이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공무원 공화국’의 문을 연 그리스가 대표적인 예다. 30만명이던 공무원이 2010년에 77만명까지 늘었고 한때 공무원 인건비가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기도 했다.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도 오십보백보다. 280만명이던 아르헨티나 공무원을 400만명으로 늘렸다. 베네수엘라 역시 마두로 대통령 치하에서 300만여 명까지 불어났다. 공무원 표심을 잡아 정권을 연장하려는 탐욕과 정치공학의 결과다. 한국이 따라가서는 안 될 실패의 길이다.

하지만 공무원 증원의 망령이 한국에도 어른거려 걱정스럽다. 문재인정부 4년간 11만3350명이 늘었다. 직전 4개 정부에서 증가한 9만6571명보다 많다. 지자체 주민이 줄어도, 학생이 줄어도 공무원은 되레 늘기만 한다. 급기야 지난해 공공부문 인건비(89조5000억원)가 500대 기업 인건비(85조9000억원)를 추월해 우려를 더한다. “관료 조직의 인력과 예산, 하위 조직은 업무량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비대해진다”는 파킨슨 법칙은 한국 사례를 보면 검증된 이론이다.

이런데도 중앙부처들은 최근 2만502명 증원을 요청하며 몸집 불리기에 바쁘다. 문 대통령이 17만명 증원을 공약했으니 이런 호기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금 내는 민간 일자리는 쪼그라드는데,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는 건 정상이 아니다. 세계 각국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취업 준비생의 32%가 ‘공무원 시험족’인 나라에 희망이 있겠나.

정부는 청년 일자리 늘리기와 행정서비스 개선을 공무원 증원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도가 지나치다. 공무원은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데다 60년간 임금과 연금을 지원해야 한다. 평균 연봉(6420만원)도 직장인(3744만원)보다 1.7배 많다. 정부 계획대로 공무원을 늘리면 30년간 1인당 24억원, 419조원의 세금 부담이 생긴다는 연구 결과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정부가 공무원 일자리 1개를 만들면 민간 일자리 1.5개가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공무원 인건비를 확보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둘 것이고 그만큼 민간의 투자와 소비 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증원된 공무원만큼 법 규제가 늘어나 혁신이 지체되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서비스 대상인 인구가 줄어들 게 빤한데 감축해도 시원찮을 공무원을 무턱대고 늘리는 건 무책임하다. 저의가 의심스럽다.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관료조직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정부는 공무원 3만1494명을 줄여 국민 부담을 덜어줬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포퓰리즘 덫에 빠지면 선진국 안착은 불가능하다. 어렵게 올라간 선진국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는 자충수를 둬선 안 된다. 한국의 복지재정 증가와 공무원 증원이 그리스와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를 닮아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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