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이 김순옥보다 한수 위였다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이번 두 작품을 보니, 임성한 작가가 김순옥 작가보다 한 수 위였다.
아무리 '막장드라마'라도 보편성은 있어야 한다.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이야기, 누군가에게 진짜 들이닥칠 듯한 사건, 나라도 저랬을 것 같은 선택. 그런 보편성이 없다면 그건 드라마가 아니다.
SBS '펜트하우스'는 아쉬웠다. 초반의 열광적 전개가 사그라든 건 김순옥 작가 스스로 최소한의 보편성마저 상실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다룬 방식이 문제였다.
'죽음'이란 실제 우리 삶에서도 그러하듯, 하나의 세상에선 모든 것의 종결을 의미한다. 죽음 앞에선 선과 악이 무력하고, 부와 명예도 죽음으로 소멸하며, 죽음이 갈라놓는 순간 사랑은 무한의 이별이 된다. 그래서 '죽음'이란, 가장 최후의 수단이자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소재인 것이다.
그런데 김순옥 작가는 '죽음'을 남용했다.
유난히 이번 작품에선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온' 캐릭터들이 많았다. '죽음'이 주는 충격과 반전의 효과는 누리되, 정작 인물의 '죽음' 뒤에 따르는 세상의 거대한 변화를 김순옥 작가 본인도 받아들이지 못한 셈이다.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와도 시청자들이 '결국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김빠져 한 건 그런 부작용이었다.
'죽음'이 등장했는데, 인물이 죽지 않았다면 그건 드라마가 아닌 신화(神話)다.
임성한 작가는 절필 선언 후 5년의 공백기 동안 이름만 바꾼 게 아니었다.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을 통해 임성한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줬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크게 보면 불륜이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믿음의 배신'이었다. 세 아내를 중심으로 이들이 그토록 믿었던 남편에게 어떻게 배신 당했고, 그 배반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핵심이었다.
흥미로운 건, 임성한 작가가 시즌1을 통째로 세 아내의 '믿음'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시즌1은 방영 당시 전개의 강도가 전작들에 비해 지나치게 잔잔하다는 평을 들었는데, 임성한 작가는 세간의 평을 뒤로 하고 남편을 향한 세 아내의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 시즌1 내내 차근차근 보여줬다.
시즌2를 위한 설계였다.
시즌1에서 촘촘히 높다랗게 쌓아 올려진 '믿음'은 결국 시즌2에서 '배신'이 드러나는 순간 단숨에 산산조각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배신의 충격은 세 아내뿐 아니라 시즌1을 함께한 시청자들에게도 강렬한 분노로 번졌다.
그 이후 세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곧 시청자들의 마음과 동일시 되었고, 세 아내가 남편들에게 어떤 복수를 하든 시청자들로 하여금 '나라도 저랬을 것', '나라면 더 했을 것'이란 공감을 끌어낸 것이다.
사실 임성한, 김순옥 작가는 한국 드라마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거장들이다.
단지 '막장드라마'라고 치부하기엔 두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의 흡인력은 매번 상상초월이다. 도리어 두 작가를 흉내만 내놓고 재미도 감동도 없는 진짜 '막장드라마'가 수두룩하다.
대중이 임성한, 김순옥 작가란 이름에 걸맞은 작품을 기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두 작가라면 더 완벽한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은가. '펜트하우스'는 결말을,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시즌3를 남기고 있다.
[사진 = TV조선, SBS 제공, 각 드라마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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