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용차로 출퇴근.. 도로에 넘치는 '오버스펙' 차들

연선옥 기자 2021. 8.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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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고마력 차량, 주행 위험 크고 환경에도 부정적

대기업에 다니는 과장급 김모씨는 최근 BMW ‘M550i’를 구매했다. 차는 주로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주말에 가끔 가족여행을 가는 정도지만, 여유 자금이 생겨 패밀리카로는 물론 주행의 즐거움도 충족해 줄 수 있는 모델을 찾다 보니 준대형 고성능차를 선택하게 됐다.

1억원이 넘는 이 모델의 파워트레인은 경주용차에 가깝다. V8 4.4ℓ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530마력, 최대토크 76.5kg.m의 성능을 낸다. 최고 속도는 250㎞/h이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3.8초에 불과하다. 고성능을 내는 탓에 배기량은 같은 크기의 BMW 5시리즈 세단의 두 배 수준인 4395㏄에 이른다.

BMW 'M550i' x드라이브 엔진룸 모습./BMW 제공

최근 ‘레이스 마니아’들을 타깃으로 출시되던 고성능차 판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일반 모델에 고성능 엔진을 얹고 부품을 개선해 주행성능을 높인 고성능차는 보통 최고출력 300마력 이상, 최고속도 250㎞가 넘는 차량을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전문 드라이버나 일부 마니아층을 위한 모델로 여겨졌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제한속도 50㎞인 서울 시내 도로에 최고출력이 300마력을 훌쩍 넘는 고성능 차량이 쏟아지고 있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자동차의 주행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지표다. 엔진의 힘으로 크랭크축을 얼마나 돌릴 수 있는지(회전력)를 표시하는 토크는 차의 힘, 즉 속도를 높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결정하기 때문에 주행의 재미를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차의 최고속도를 결정하는 출력은 고속도로에서조차 최대치의 절반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주행에서 300마력 이상은 ‘오버스펙(Over Spec)’으로 본다. 300마력(馬力)이란 말 그대로 ‘말 300마리’가 끄는 힘을 낸다는 의미인데, 고마력에 차의 공차중량(무게)까지 낮추면 최고속도는 더 올라간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차량 'AMG GLB 35'의 내부 모습./벤츠 제공

시내 도로를 달리는 오버스펙 차량의 상당수는 독일 3사의 고성능 브랜드 AMG(벤츠), M(BMW), RS(아우디)인데, 전문 슈퍼카 브랜드 포르셰와 페라리, 람보르기니 모델도 적지 않다.

벤츠 AMG의 경우 올해 상반기(1~6월) 판매량은 3636대로, 지난해 상반기(2073대)보다 75.4% 증가했다. 전체 벤츠 판매량 중 AMG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5.8%에서 올해 상반기 8.5%로 높아졌다. BMW M도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BMW 전체 판매량이 42.6% 늘어나는 사이, M 판매량은 85.9% 증가했다.

디젤게이트 사태 이후 고성능 모델 판매를 중단했던 아우디는 올해 2월, 610마력의 미드십 스포츠카 ‘R8′을 시작으로 400~500마력의 RS 모델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슈퍼카 브랜드 포르셰는 올해 1~7월 6064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14.7% 증가했다.

수입차 브랜드가 고성능 시장을 넓히면서 국내 브랜드의 마력 경쟁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현대차 ‘그랜저’의 경우 2010년형 최고출력은 트림별로 179~259마력이었지만, 2021년형은 198~290마력으로 높아졌다. 쌍용차 SUV ‘렉스턴’ 역시 2010년 사륜구동 모델의 최고출력은 172마력이었지만, 올해 출시된 신형은 202마력으로 높아졌다.

특히 현대차(005380)는 고성능 브랜드 N을 출범하면서 수입 브랜드가 주도하는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나섰다. 중형 세단 ‘쏘나타’ 2.0 가솔린 모델의 최고출력이 160마력인데, ‘쏘나타 N’은 290마력으로 끌어올렸다.

포르셰

하지만 무조건 마력이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주행성능이 높은 차일수록 정교한 주행 기술이 필요하다. 스포츠카의 경우 가속페달에 발만 올려도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차량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구동력제어장치(TCS)를 장착하는 게 일반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TCS는 차내 컴퓨터가 엔진의 출력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고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로, 험난한 오프로드를 지나거나 서킷에서 레이스를 할 땐 TCS를 끈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서킷이 아니라 일반 도로에서 필요한 주행 성능은 200마력 정도면 충분하고, 일반인 대부분은 마력비(1마력이 부담하는 무게)가 4㎏ 아래로 떨어지면 운전하기 어려워한다”며 “공도를 달리는 고마력 차량들은 지나치게 성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엔진 기술이 진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고스펙 차량일수록 연비가 떨어지기 때문에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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