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물건 취급하던 시대 마침표 찍길" [차 한잔 나누며]

유지혜 2021. 8. 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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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박주연 변호사
모든 생명 존중 받는 사회 지향
동물권 소송·복지법 마련 추진
'동물 첫 법적 지위' 개정안 반겨
학대 처벌 수위 강화 계기될 것
여전히 인간만 주인공인 법체계
동물보호 의무 헌법 반영돼야
박주연 PNR 변호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본사에서 동물권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명제가 법 조항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법무부는 지난달 19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해 그동안 법적으로 물건으로 규정돼온 동물에 새로운 법적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People for Non-human Rights·비인간 권리를 위한 사람들)는 이번 민법 개정안을 누구보다 반겼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본사에서 만난 박주연 PNR 변호사(법무법인 방향)는 “물건과 다른 동물의 법적 지위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법 개정”이라면서 “그동안 법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 괴리가 해소되고, 동물 학대 사건에 대한 처벌 수위도 강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PNR는 각자 동물보호활동을 해오던 변호사들이 함께 동물권 관련 활동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2017년 만들어졌다. 현재는 이사인 박 변호사를 비롯해 변호사 14명, 생태학자 1명, 수의과대학 교수 1명, 시민 100여명이 PNR와 함께하고 있다. PNR는 비인간 동물의 권리가 존중되고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동물권 관련 소송, 동물복지 법안·정책 마련을 위한 각종 지원, 동물권·동물법 관련 강연과 집필 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다.

박 변호사가 처음부터 동물법이나 동물권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책의 한 장면은 동물의 권리를 위해 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전혀 관련 없는 집회에서 살아 있는 새끼 돼지 사지에 칼집을 내고, 능지처참하는데 늘어진 돼지 표정이 정말 충격적이라 눈물이 막 났어요. 아무리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현실이라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과연 인간이 이렇게까지 죄 없는 생명에게 고통을 가할 권리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됐죠.”
1·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을 거쳐 동물보호법 위반 유죄가 확정된 ‘개 전기도살’ 사건은 박 변호사가 꼽은 의미 있는 판결이다. 개 농장주가 도축 시설에서 개를 묶어놓고 개의 주둥이에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대 감전시키는 방법이 동물보호법에 규정된 ‘잔인한 행위’라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박 변호사는 “해묵은 논쟁이지만 개 식용·도살 문제가 해결돼야 우리나라가 동물복지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개·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식용으로 거래하거나 도살하는 것을 금지한 동물보호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발의안)이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동물권 관련 소송은 대부분 쉽지 않다. 현행 법체계 자체가 인간 중심적 사고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자연이나 동물이 대리인을 통해서조차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게 그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PNR는 2018년 서식지가 파괴될 위험에 처한 산양 28마리를 대리해 문화재청이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만들 수 있도록 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당시 법원은 “동물은 소송 청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단 이유로 재판을 종결(각하)했다. 박 변호사는 “동물권 관련 소송 결과는 대부분 아쉽지만 이런 재판이 열리고, 많은 사람이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송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와 같은 종(種)이 아니라고 해서 한 생명체에 대한 학대나 방치가 용인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하고 인간다운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요? 동물이 고통을 느끼고 지각능력을 가진 생명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지금은 헌법에 동물 관련 내용이 없어 동물권이 침해된다고 해도 헌법소원조차 내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헌법에 최소한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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