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에 눈물 흘렸지만..마지막에 가장 빛난 '식빵언니'[Tokyo 2020]

도쿄 | 김은진 기자 2021. 8. 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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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자배구 김연경,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패배로 올림픽 마쳐
“국가대표로 뛴 마지막 경기” 선언…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금”

김연경이 8일 도쿄 고토시 아리아케아리나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뒷줄 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단이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세르비아와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해 4위를 확정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라바리니 감독에게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을 대비한 재계약을 제안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연경(33·왼쪽 사진)은 맨 마지막으로 믹스트존으로 나왔다. 한바탕 뭔가를 쏟아낸듯,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늘 똑 부러지게 말하고 잘 웃고 씩씩하게 인터뷰하던 ‘식빵언니’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 아쉬움에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며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김연경이 인생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마쳤다. 김연경은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을 끝으로 “마지막”을 선언했다. 열일곱 살에 막내로 태극마크를 단 뒤 맏언니가 되기까지 달려온 지난 16년의 끝에서 김연경은 “조심스럽지만 오늘 경기가 국가대표로 뛴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각오로 도쿄에 온 김연경은 국가대표까지 마지막이라는 완전한 끝을 선언했다.

김연경은 고교생이던 2005년 태극마크를 단 뒤 16년 동안 한국 여자배구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12 런던 올림픽 4강 신화에 이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8강,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한국을 4강까지 올려놓고 물러난다. 마지막 경기이기에 더 잘 뛰고 싶었으나 일방적으로 졌다.

김연경의 꿈은 올림픽 메달이었다.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김연경은 마지막 대회에 메달 결정전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했다. 이날 세르비아에 0-3(18-25 15-25 15-25)으로 완패해 메달을 걸지 못한 여자배구 팀은 언니의 마지막 경기에 이기지 못한 아쉬움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동생들에게 “웃으라”며 박수를 쳤지만 사실은 언니도 눈물을 훔쳤다.

김연경은 “고생한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어서 눈물이 좀 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잘한 부분이 많으니 웃을 자격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조차도 여기까지 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기쁘고 경기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언제나 든든한 ‘언니’였다. 경기가 몰리더라도 김연경의 천둥 같은 파이팅 소리 한 번에 동생들은 웃으며 다시 뭉치곤 했다. 이번에 김연경과 함께 역시 마지막 올림픽에 나선 1년 후배 양효진(32)은 “열아홉 살에 처음 대표팀에 들어왔을 때는 여자배구 대표팀이 주목받지도 못했고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지 못했다. 그때 겨우 스무 살이던 연경 언니가 항상 ‘대표팀이 더 개선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국제대회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고 스스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결국 지금 우리가 좋은 환경을 누리고 있다”며 “내게는 없는 강한 성격과 정신력을 가진 언니한테 많이 의지했다.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이제 앞으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에는 파이팅 넘치는 ‘식빵언니’가 없다. 언니 없이 동생들이 헤쳐 가야 한다. 김연경은 “후배들이 모두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이번 올림픽을 통해 자기가 해야 될 일들을 다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좀 더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여자배구를 잘 이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광의 순간도, 좌절의 순간도 많았지만 김연경은 지금까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했다. 큰 생각 없이 갔던 런던에서 4강 신화를 이뤘고 욕심을 내봤던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8강에 멈췄던 김연경의 국가대표 여정은 도쿄에서 다시 4강까지 올라간 채 막을 내렸다.

도쿄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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