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암의 '고마운 비밀' [기고 - 돌이 된 생명의 역사, 화석]

이승배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 2021. 8. 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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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류 문명의 급속한 발전은 물론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돌을 꼽으라면 단연 석탄과 석회암을 들 수 있다. 둘 모두 생물체가 쌓여서 만들어진 암석인데, 화석연료로 유명한 석탄에 비해 조금 덜 알려진 석회암 이야기를 해본다.

이미 수천년 전부터 인류는 물과 섞어 발라 말리면 고르고 단단하게 굳는 ‘석회’가루를 건축에 사용했다. 석회는 특정한 돌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 얻었는데, 이 암석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석회암(limestone)으로 불렀다는 게 흥미롭다. 상업적으로는 흔히 석회석이라 불리는 석회암은 19세기부터 시멘트의 주원료로서 마천루로 상징되는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은 주인공이다.

석회암은 탄산칼슘이 물속에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이다. 사실 조개나 소라 껍데기, 산호와 해면, 성게나 불가사리 등의 단단한 뼈대와 유공충이나 조류(藻類) 등 수많은 미생물의 골격이 탄산칼슘으로 이뤄졌다. 석회암은 이렇게 생물들의 탄산칼슘 뼈대나 그 부스러기가 모이고 쌓이고 다져져 만들어진 암석인 것이다. 실제로 건축물 내장재로 쓰이는 석회암 판석에서는 다양한 모양의 화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원 삼척·태백·영월·정선과 충북 제천·단양 지역에는 시멘트 공장이 많은데, 이들 지역에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석회암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지역에는 약 5억2000만년 전에서 4억6000만년 전의 고생대 전기 동안 1㎞ 넘게 차곡차곡 쌓인 석회암, 사암, 이암 등 퇴적암 지층들이 널리 분포한다. 물론 이 가운데 석회암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석회암의 형성 과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의 고생대 전기 석회암에서는 다양한 화석들이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바다에 살았던 삼엽충, 완족류(조개사돈), 두족류, 고둥, 조개 등의 껍데기가 있다. 지금의 강원 남부, 충청 북부에 해당하는 땅이 5억년 전쯤에는 바다생물이 살기 좋은 따뜻하고 얕은 바다 밑에 있었다는 뜻이다. 마치 모래, 진흙의 대부분이 산호나 조개 껍데기의 조각과 가루로 이뤄져 있는 지금의 열대 바닷속 풍경처럼 말이다.

한국의 고생대 석회암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연구된 화석은 삼엽충이다. 약 100년의 한국 삼엽충 연구 역사를 통틀어 수백종이 보고됐다. 수십종의 한반도 고유종이 발견됐으며 지금도 새로운 삼엽충이 나오고 있다. 고생대 말에 멸종한 절지동물인 삼엽충은 원시적 생물이라고 오해받지만, 지금의 잠자리나 파리에 견줄 만한 고성능의 겹눈 한 쌍을 가지고 있었다. 삼엽충 뼈대의 성분 역시 탄산칼슘(방해석)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겹눈을 이루는 각각의 렌즈들 또한 복굴절 현상을 일으켜 물체를 두 개로 보이게 하는 방해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삼엽충 스스로가 생화학적으로 정교하게 렌즈를 성장시켜 방해석의 이러한 광학적 단점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수억년 전 삼엽충과 같은 신비로운 생물의 뼈대가 이제는 시멘트로 변신해 집, 학교, 회사, 병원, 교량 등 우리 생활 터전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을 비롯해 전국의 자연사박물관에는 석회암을 이루는 작고도 다양한 화석들이 전시돼 있다.

뜨거운 여름, 시원한 박물관에서 그동안 공룡의 인기에 묻혀 있던(?) ‘탄산칼슘 화석들’에게 고맙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이승배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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