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는 좋아하게 될 거야

한겨레 2021. 8. 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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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와 명강사는 서울에 많다.

그러나 이곳에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서, 알음알음 찾은 소중한 필라테스 선생님을 매주 만나러 간다.

선생님을 찾는 중요한 기준은 다이어트보다 재활, 그리고 근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 여자들이 계속해서 운동 선생으로 살고, 운동 제자로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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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서한나 l 보슈(BOSHU) 공동대표· <사랑의 은어> 저자

명의와 명강사는 서울에 많다. 그러나 이곳에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서, 알음알음 찾은 소중한 필라테스 선생님을 매주 만나러 간다. 선생님을 찾는 중요한 기준은 다이어트보다 재활, 그리고 근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의 체육관에 나를 밀어넣고 싶었다. 선생님은 재활과 근육뿐 아니라 배구와 역도에 빠져 있었고, 배구 8강전을 보기 위해 오전반 수업 시간을 조정했는데, 마침 오전반 학생도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둘은 사이좋게 경기를 보고 돌아와 체육관에서 만났다.

배구 봤냐는 말로 시작해 우리도 잘하자 하며 시작한 운동은, 지난주보다 강도가 높았다. 선생님은 명품 옷을 사는 대신 명품 음식을 먹으라고 강조했고, 나는 옷장의 비싼 옷가지와 소스뿐인 냉장고를 떠올렸다. 싼 음식 찾지 말고, 무조건 좋은 것 먹어요. 선생님은 이 자세를 하면 어느 부위 살이 빠진다고 하지 않고, 근육을 잘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할 때 자기 힘을 약간 초과하게 해야 해요. 그러면 미세하게 근육이 파열되는데, 우리 몸은 그걸 복원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근육이 붙어요. 전보다 강하게.”

처음부터 운동과 친했던 건 아니다. 체육이 시간표에 끼여 있던 초등학생 때, 합기도장에 다니는 여자애는 “조폭 마누라”, 이어달리기 마지막 주자인 여자애는 “악바리”로 놀림을 당하는 틈에 나는 그 시간이 부담스러웠고, 차라리 어디 아픈 사람으로 50분을 보내는 게 편하다는 걸 알았다. 조금 아픈가 싶으면 확실히 아픈 증거를 찾았다. 공 하나 던져주고 여학생은 피구, 남학생은 축구 하라고 호각을 불면 교실에서 졸던 애들도 살아났지만 운동하는 여학생에 대한 시선은 자유 시간에도 여전했다. 내 꼴이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게 되는 시간에는 불꽃이 튀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 놓인 사람은 점심 먹는 시간 아껴 농구공 튀기고 티셔츠 끌어 올려 땀 닦는 남자애들이 운동장을 활보하는 동안, 허벌라이프를 물에 타 먹으며 복도 끝에서 다이어트 줄넘기를 하기가 쉽다. 소리치고 날뛰며 발산하는 대신 팔뚝과 허벅지 굵기를 재고 거울에 몸을 비춰 보는 것이다.

여자애에게 스포츠를 권하지 않는 환경에서도 몇몇은 태권도장에 다녔다.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길에서 본 도복 허리춤의 검은 띠가 멋져 보여 충동적으로 등록했다. 시키는 것 겨우 따라가는 애였지만 언니를 사귀면서 재미가 붙었다. 우리는 쉬는 날에도 문을 열어달라고 하며 걸핏하면 거기서 놀았다. 주말이면 친선경기를 보러 다녔다. 나는 도장을 그만두고도 언니와 만나 중학교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했다. 언니와는 서서히 연락이 끊겼고, 우리가 친했던 걸 아는 사람도 이제는 없다. 언니도 배구를 봤을까?

언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 주변 여자들은 배구를 봤다. 활약하는 여자 선수들을 보고 운동을 시작하게 됐고, 하던 걸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선수들을 멋있게 여기면서 그 멋을 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듯하다. 어제 배구 봤냐고 물어보는 여자들이 다른 데 안 가고 동네에 있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나랑 수영하고 배드민턴 치고 케틀벨 들면서 운동 후의 근육통이 얼마나 가는지 재어보고, 보람도 느끼고 싶다.

우리 동네 여자들이 계속해서 운동 선생으로 살고, 운동 제자로 살면 좋겠다. ‘4킬로’ 들다 ‘6킬로’ 들 때의 오기와 짜증을 즐긴다면, 기골이 장대하거나 작아도 단단한 여자를 멋있다고 여기며 정신력과 체력을 닮아가면 좋겠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여자애들이 하교 후에 악쓰고 땀 내면서 팀플레이를 한다면, 그들이 스포츠와 함께 늙어간다면 좋겠다. 어제 허벅지 운동을 해서 계단을 걸을 때마다 다리가 몸보다 먼저 튕겨 나가는 듯한데, 이 근육통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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